'괴물은 누구게' 놀이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언론 다시보기] 권순택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처장

권순택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처장

“저는 어리석은 사람이었습니다!” 영화 ‘괴물’(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을 본 한 지인의 첫 마디는 이랬다. 다수의 영화 평론가는 감독과 작가가 이 영화를 3부로 기획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고 말한다. 1부와 2부에서 괴물을 찾는 데에 몰두하던 관객들(괴물이 바뀌는 경험을 하기도)이 3부를 통해 ‘자신의 편견(선입견·고정관념)이 문제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만드는 영리한 구성이라는 얘기다. ‘괴물’은 이를 통해 ‘나’ 또한 여러 관계와 놓인 상황에 따라 누군가에게 괴물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 사회가 쉽게 내뱉는 ‘보편성’이라는 이름의 전형적인 시각이 누군가에게는 폭력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꼬집는다.


영화 ‘괴물’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함은 아니다. 이 영화가 던지는 메시지가 마약 투약 혐의로 수사를 받다 사망한 배우 이선균씨를 둘러싼 논란 그리고 한국 사회에 꼭 필요한 목소리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해 10월, 이선균씨가 마약 투약 혐의로 내사를 받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 사안은 이선균씨가 수사 결과에 따라 그에 상응하는 처벌을 받으면 될 문제였다. 그 후 이선균씨에 대한 간이 시약 검사 그리고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정밀검사 결과가 ‘음성’으로 나오자 잠시 그런 생각을 했었다. ‘(당장은 어렵다고 하더라도) 그가 다시 연기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상황은 그 방향으로 흐르지 못했다. ‘룸살롱 종업원의 집에서 마약을 투약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온갖 추문과 비난이 이선균씨를 향했다. 범죄혐의와 크게 상관없는 녹취파일이 당사자 의사와는 무관하게 공개됐다. ‘공영방송이 유튜브와 다를 게 뭔가’라는 자조가 쏟아졌다. 한국 사회는 그렇게 한 명의 배우를 잃었다.


이 이야기를 시작한 이유는 이선균씨의 사망 전후로 180도 달라진 한국 사회를 보며 느낀 ‘환멸’ 때문이다. 이선균씨의 사망과 함께 여론은 또 다른 재판을 시작했다. ‘경찰이 죽였네’, ‘언론이 죽였네’ 등의 말들이 그렇다. 모든 판단이 너무 쉽다.


이선균씨가 자신의 피의사실이 공표되고 범죄 혐의와 상관없는 녹취파일이 공개되면서 심적 부담이 컸다는 점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런 점에서 지난 12일 봉준호 감독을 비롯한 문화예술인들이 기자회견을 통해 촉구한 ‘수사 과정에 대한 진상규명’과 ‘언론의 자성 노력 및 보도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 기사 삭제’, ‘문화예술인 인권 보호를 위한 법제도 개선’에 대해 진지하게 사회적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이날 기자회견 이후, KBS는 문제로 지목된 자사의 보도에 대해 ‘(혐의) 관련 주장의 신빙성을 뒷받침하는 내용’이라며 복지부동의 태도를 보였다. 궁금하다. 설령 KBS의 주장대로 ‘신빙성을 뒷받침한다’고 하더라도 꼭 음성파일을 그대로 노출하는 방법밖에 없었던 것일까. 아니다. KBS가 이제라도 저널리즘 기준에 맞춰 다시 평가하고, 후속 조치에 나서주길 바란다.


이와 함께 ‘언론이 죽였다’는 식의 몰이 또한 중단돼야 한다. 이것은 이선균씨 사건에서 언론이 보였던 무분별한 피의사실 공표와 녹취파일 및 유서 공개 등에 대해 사과하고 재발방지책을 만드는 것과는 다른 문제다. 고인의 사망 원인을 ‘언론보도’에서 찾는 이들은 그 논거로 ‘인권보도준칙’, ‘마약류 사건 보도권고기준’, ‘자살보도 권고기준3.0’ 등을 제시한다. 해당 가이드라인을 천천히 읽어보면, 언론이 무엇을 얼마나 잘못했는지 여실히 알 수 있다. 하지만 언론을 향하는 들끓는 여론 속에 주목받지 못하는 조항이 있다. ‘자실보도 권고기준3.0’의 5가지 원칙 중 하나인 “자살 동기를 단순화한 보도는 매우 위험합니다”가 그것이다. 자살은 복합적인 요인들로 유발되기 때문에 원인을 특정하는 건 위험하다는 얘기다. 다시 묻자. 이선균씨는 왜 극단적 선택을 했을까. 경찰 때문인가? 언론 때문인가? 아니다. 그 답을 우리는 알지 못한다.


한국 사회에서 영화 ‘괴물’이 대작들이 개봉한 가운데서도 조용한 흥행을 이어가는 이유는 우리 사회에 필요한 메시지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너무 쉽게 ‘괴물’만을 쫓는 한국 사회의 부끄러운 민낯을 보여주는 건 아닐까. 이제 ‘괴물은 누구게?’ 놀이에서 빠져나와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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