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부 눈에만 세상이 아름답게 보이나요

[이슈 인사이드 | 노동] 김지환 경향신문 정책사회부 기자

김지환 경향신문 정책사회부 기자

국민의힘이든 더불어민주당이든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을 말한다. 윤석열 대통령도 지난해에 이어 올해 신년사에서도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을 ‘노동개혁’ 과제로 꼽았다. 대기업·공공부문·정규직 부문과 중소기업·비정규직 부문 간 임금·복지, 고용안정 격차가 크게 벌어졌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접근법은 제각각이다. 윤석열 정부는 이중구조 개선 방법 중 하나로 ‘원·하청 상생’을 강조하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이중구조 개선을 위한 상생모델을 조선·석유화학·자동차 업계로 확산시켰다고 설명한다. 이 상생모델은 “법적 강제나 재정투입만으로는 이중구조 해결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원·하청이 자율적으로 상생·연대해 해법을 마련하고, 정부는 이행을 지원하는 새 패러다임”이라는 것이다.


지난해 2월 원·하청 상생협약이 체결된 조선업 생산현장은 협약 이후 이중구조가 개선됐을까. 경향신문이 지난해 여름 경남 거제에서 만난 하청 노동자 A씨는 이렇게 말했다. “더 나빠졌죠. 이중구조가 아니라 삼중구조가 되고 있어요.” 원·하청 간 격차가 줄기는커녕 물량팀·아웃소싱 등 재하도급 고용만 더 늘었다는 이야기다. 하청업체 살림살이도 크게 나아지진 않았다. 지난해 11월25일 울산 HD현대중공업 하청업체 대표 B씨가 울산 전하동의 한 원룸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그는 원청이 기성금(도급비)을 충분히 주지 않아 인건비 지급이 쉽지 않다고 주변에 토로한 것으로 전해졌다.


노동부가 꾸린 상생임금위원회는 원청이 하청 노동자의 복리후생·직업훈련을 지원하는 조치 등은 불법파견 징표로 보지 않도록 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원청이 하청업체를 지원하고 싶어도 불법파견으로 판정될까봐 소극적 태도를 보이는 것을 해결해 ‘착한 원청’의 상생협력을 유도한다는 취지다. 하지만 노동계에선 “원청의 복리후생 지원 등을 불법파견 징표에서 빼면 되레 원청이 불법파견을 쉽게 활용하도록 돕는 셈”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노동부의 원·하청 상생은 새벽배송 종사자 건강보호에도 등장했다. 이정식 노동부 장관은 지난달 11일 경기 김포시 소재 컬리 물류센터에서 컬리넥스트마일·쿠팡CLS·SSG닷컴·CJ대한통운·오아시스 등 새벽배송 5대 업체와 간담회를 열고 “(원청이) 상생 차원에서 새벽배송 종사자 건강·안전에 책임있는 역할을 해달라”고 말했다. 이는 ‘법적 규제가 필요하다’는 국가인권위원회 권고와 배치된다. 인권위는 지난해 10월 노동부에 “야간노동 종사자 건강권 보호를 위해 근로기준법이나 산업안전보건법에 1주 혹은 1개월 등 일정한 단위기간 동안 허용될 수 있는 야간노동의 한도·요건에 관한 기준·원칙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권고했다.


원·하청 상생모델은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을 위한 본질적 대책이 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착한 원청’의 선의에 기대는 원·하청 상생협약이 ‘아름다운 동화 속 이야기’라는 건 조선업 사례만 봐도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도 노동부는 원·하청 상생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다. 하청 노동자가 ‘진짜 사장’과 교섭해 제 권리를 얻을 수 있도록 한 정공법(노란봉투법)은 외면한 채 말이다. 이쯤에서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다. 노동부 눈에만 세상이 아름답게 보이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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