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갔다올게'라는 흔한 말

[언론 다시보기] 계희수 충북민주언론시민연합 활동가

계희수 충북민주언론시민연합 활동가

‘별은 알고 있다’(권오연 감독)라는 다큐멘터리 영화의 공동체 상영회를 준비하고 있다. 이 다큐는 10.29이태원참사시민대책회의가 만든 영화다. 이태원 참사를 잊지 않기 위해 영화 제작진과 유족들은 전국을 돌며 상영회에 참석하고 있다. 청주에서는 오송참사시민대책위가 19일에 공동체 상영회를 열었다. 나는 오송대책위 소속으로 관객과의 대화 사회를 맡아 미리 영화를 보고 함께 나눌 이야기를 정리했다. 여러 행사를 진행해왔지만 이번에는 참 쉽지 않다.


2022년 10월29일, 서울 이태원 한복판에서 159명이 세상을 떠났다. 가까운 사람에게 ‘갔다올게’라는 말을 남기고 밖을 나선 사람들은 그 말을 지키지 못했다. 어떻게 그런 대규모 압사가 가능했던 건지 여전히 믿기지 않는다. 1년이 훌쩍 넘었건만 적절한 사과와 책임을 지는 주체는 없다. 159개의 삶과 연결된 수많은 이들이 지금껏 이태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참사 직후 정부는 빠르게 광장에 얼굴과 이름 없는 분향소를 세웠다. 정부는 유가족들이 한 데 모이는 것도 철저히 차단했다. 정부 책임자와 정치인들은 혐오를 부추기고 언론은 그들의 말을 그대로 퍼 날랐다. 미디어는 흉기가 되어 발화를 멈추지 않았다. ‘할로윈에 생각 없이 놀러나간 애들’이라는 혐오적 시선은 참사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귀한 생명조차 떠나보냈다.


지난 7월 청주에는 14명의 목숨을 앗아간 오송 지하차도 참사가 있었다. 궁평2지하차도 747버스에는 내 동네 후배도 타고 있었다. 카카오톡 배경화면이 가족사진이던 그는 결국 버스에서 나오지 못했다. 우리가 나눈 마지막 메시지는 ‘비 피해 없이 조심하자’는 안부 인사였다.


오송지하차도 참사는 이태원 참사와 꼭 닮았다. 경찰의 신고 무시, 정부 기관 사이에 서로 저글링 하듯 책임을 떠넘기며 아무런 책임도 지원도 하지 않는 것, 미리 예방할 수 없었다는 변명까지. 일상을 살아가는 유족들은 투사가 되어 경찰서, 검찰청 앞에서 시위를 하고 기자회견을 하고 아스팔트를 기며 한 번만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간곡히 호소한다.


생각해보니 그 앞에는 세월호 참사가 있었다. 이태원 참사로 세상을 떠난 故 유연주씨의 언니, 유정씨는 본인이 고등학생 때 세월호 참사가 있었다고 했다. 얼굴도 모르는 많은 친구들을 떠나보내며 마음 아팠는데, 이번에는 동생을 이태원에서 잃었다. 그녀는 자신이 ‘운 좋게 살아남아 있다’고 말했다. 내 주변 수많은 사람들이 747 버스를 탄다. 나 또한 운 좋게 살아남아 지금 이 칼럼을 쓰고 있다.


정말 그렇다. 배 안에서, 길 한복판에서, 차 안에서 평범하게 일상을 보내던 사람들이 한꺼번에 별이 되었다. ‘갔다올게’라는 말을 지키는 일이 이토록 힘든 건 줄은 몰랐다. 막을 수 있던 죽음에 대해 책임 당국으로부터 적절한 사과와 대우를 받는 일이 이렇게 험난한 일인 줄도 몰랐다. 지금 오송참사에는 이태원 참사 유족들이, 이태원 참사에는 세월호 참사 유족들이 서로서로 연대하며 힘을 보탠다. 이들이 모여 있는 모습을 볼 때마다 나는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어 그저 조용히 곁을 지킨다.


이 글은 기자협회보에 내가 쓰는 마지막 칼럼이다. 새해에는 모두 안전하길 바란다는 부질없는 문장으로 끝맺고 싶지는 않다. 기자님들께 당부하고 싶은 말을 남기려 한다. 정부의 무책임한 말 한마디, 온라인에 올라오는 혐오의 글을 ‘객관적’으로 ‘전달’한다는 의도만으로 기사를 쓰지 말아주시길 바란다. 그 모든 것들이 재료가 되어 혐오의 말로 빚어지고 있다. 오늘도 현장에서 애쓰는 기자님들께 전하는 마지막 부탁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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