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한 감정과 일본 미디어의 고민
[글로벌 리포트│일본] 이홍천 게이오대학 교수
이홍천 게이오대학 교수 webmaster@journalist.or.kr | 입력
2013.03.20 15: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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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홍천 게이오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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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한시위를 보도할 것인가 말 것인가. 한일관계와 저널리즘 사이에서 일본 언론들이 고민에 빠져 있다. 2011년 8월 혐한류 시위에서 시작된 반한시위가 2년이나 이어지고 있고 지난해 8월 이명박 전 대통령의 독도방문을 계기로 시위 장소가 한류의 중심지인 도쿄 신주쿠의 코리아타운까지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류 중심지에서 매달 벌어지는 반한시위를 무시하기도 힘들고 그렇다고 보도하자니 이들의 주장을 대변하는 결과가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일본하고)잘 지내자고요. 거절합니다’, ‘조선인 위안부는 거짓말, 일본인에 대한 중대한 인권침해다’, ‘(대마도)불상(佛象) 탈환, 타케시마 탈환’, ‘조선인은 범죄민족’, ‘한류추방, K-POP 분쇄’, ‘재일 조선인은 군대로 보내자’, ‘조선인은 전부 죽이자’. 지난 3월17일 오후 2시30분 일본의 한류 일번지로 유명한 도쿄 신주쿠의 신오쿠보 코리아타운에 울려 퍼진 반한시위 ‘불량 (조)선인 추방 캠페인’의 구호들이다. 2월에 열린 반한시위에 비해 구호는 톤다운됐지만 배타적이고 인종차별적인 내용은 사라지지 않았다. 시위대는 코리아타운 근처에 위치한 오구보 공원을 출발, 일장기와 플래카드를 들고 구호를 외치면서 한류 중심가를 2시간에 걸쳐 가두행진을 했다. 출발점인 오구보공원은 지난해 10월 한일교류를 위한 축제 한마당이 열린 공간이기도 하다. 오구보 반한시위 주최자는 ‘재일 조선인 특권을 반대하는 회(재특회)’. 올해 8월이면 반한시위는 만 2년을 채우게 된다.
재특회는 2월9일부터 11일까지의 구정연휴와 17일에도 오구보 코리아타운에서는 반한시위를 열었다. 특히 17일 시위에서는 ‘한국인은 죽어라, (한국인을)죽여라’, ‘착한 조선인도 나쁜 조선인도 모두 죽이자’는 식의 과격한 구호가 쏟아져 나왔고, 시위대는 한류를 즐기려는 자국민에 대해서도 욕설을 쏟아 붓기도 했다. 그렇다고 한류팬들이 반한시위를 손놓고 바라만 보고 있지는 않았다. 2월17일부터 소수이지만 한류팬들이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해서, 3월 17일 시위 때는 반한시위 반대운동이 인터넷을 통해서 이뤄지기 시작했다. 한류팬들은 ‘사이좋게 지내자’, ‘인종주의자는 일본인의 수치’라는 플래카드를 들고 시위대를 따라서 보도로 움직였다.
이렇듯 재특회의 반한시위가 조직적이고 장기적으로 벌어지고 있는데도 일본 언론에서는 관련 뉴스를 찾아보기 힘들다. 아사히를 제외하면 마이니치와 같은 진보성향의 언론은 물론이고 요미우리, 산케이 같은 보수성향의 매체들조차도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지난 17일 열린 반한시위는 야후 뉴스에서 단 한건도 검색되지 않았다. 오구보+시위라는 키워드를 넣으면 9건의 뉴스가 검색된다. 물론 17일자 뉴스는 없고 그중 3건은 한국 뉴스를 일본어로 번역한 것이다. 일본의 주류 언론 중에는 아사히, 마이니치가 한 건씩 다루었을 뿐이다. 방송보도도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일본 언론이 반한시위를 의도적으로 무시한다고 무작정 질책할 수도 없는 데는 나름의 사정이 있다. 재특회가 타인종 멸시, 배타적인 타민족 차별을 전면에 내세워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반한시위를 보도하게 되면 재특회의 주장을 소개하지 않을 수 없고 결과적으로 이들의 주장이 일본 사회에 알려지고 퍼지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재특회도 언론을 이용한 선전효과를 노리고 시위를 멈추지 않고 있다. 물론 사회감시라는 저널리즘의 원칙에 비춰보면 일본 언론들의 고의적 무시는 충분히 비판받아 마땅하다. 언론은 사회감시 기능을 통해서 국민들에게 경각심을 일깨우고 지속적인 보도를 통해서 위험한 사고에 대한 면역력을 키우는 위험성을 체득하게 하는 교육적 기능도 동시에 수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특정 인종이나 종교에 대한 모욕적인 언사는 ‘증오 표현과 모욕죄’에 해당되는 규제대상이지만 대상이 ‘조선인’, ‘한국인’으로 추상화되면 인종차별을 선동한다고 보기 힘들다며 일본 정부는 법적규제에 신중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일본국민에게 전쟁을 선동한 경험을 가진 일본언론으로서는 반한시위가 자칫 불순한 여론의 움직임에 불을 붙이는 것은 아닌가하는 불안감도 커지고 있다. 재특회가 인터넷을 통한 선전활동도 적극적으로 펼치고 있어, 일본 언론이 언제까지 팔짱만 끼고 있기는 힘들것이다. 반한시위는 일본의 저널리즘에 무거운 숙제를 던져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