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분이 3년 같았던 4월16일 아침

[시선집중 이사람]세월호 침몰 첫 보도한 YTN 광주지국 김범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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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YTN 광주지국 김범환 기자  
 
“동생, 큰일 났네. 진도에서 500명이 탄 여객선이 조난당해서 침몰하고 있다네. 인천에서 제주도 가는 배라는데 수학여행 학생들도 많이 타고 있다고 해서 걱정이네. 한 번 알아보소.”

4월16일 오전 9시13분. 운명의 전화 한 통을 받은 건 그때였다. 인연이 있는 육상경찰 간부와의 통화에서였다. 평소처럼 농담을 건네며 안부를 묻는데, 그가 대뜸 정색을 하며 믿기지 않는 말을 건넨 것이다.

만 20년째 YTN 광주지국을 지키고 있는 김범환 기자. 그는 그때 당시를 “머리카락이 쭈뼛 서고 머릿속이 하얘지는 느낌이 들며 다리가 후들거렸다”고 했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1995년 여수 시프린스호 기름 유출 사고, 2002년 김해 중국 민항기 추락사고, 2003년 대구 지하철 참사…. 그는 한국 사회를 뒤흔든 사건·사고를 숱하게 취재해왔지만 세월호 참사를 예고하던 그날의 통화를, 그리고 그 충격을 너무도 아프게 기억하고 있었다.

기자실을 뛰쳐나왔다. 사실이냐고 재차 물었다. “맞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전화를 끊고 시계를 보니 9시15분. 바로 해양경찰 관계자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 득달같이 연결을 시도한 끝에 제보 내용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맞아, 한 30분이나 40분 됐어.”

급하게 회사로 전화를 걸었다. “500명 탄 여객선 조난, 전남 진도 관매도 부근 해상, 인천에서 제주도 가는 여객선.” 첫 제보부터 1보를 전하기까지 3분이 걸렸다. 김 기자는 “3분이 3년 같았다”고 말했다.

급히 현장으로 출발하면서도 취재는 계속됐다. 진도와 완도, 목포의 모든 인맥을 총동원했다. 오전 10시30분쯤에는 지인으로부터 사고 사진을 확보했다. 세월호가 거의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충격적 장면이었다. 김 기자는 “오랫동안 한곳에 근무하면서 탄탄하게 쌓아온 인적 네트워크가 가장 큰 몫을 했다”며 “제보해준 육상경찰이나 이를 확인해준 해양경찰, 사진을 보내준 이도 모두 보통 인연이 아닌 인물”이라고 말했다.

덕분에 첫 보도를 했지만 그의 마음은 한없이 무겁다. 김 기자는 “긴급속보가 나갈 때까지만 해도 무사히 구조될 줄 알았다”며 “300여 명의 아까운 목숨이 차가운 바다 속으로 가라앉을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고 했다. 더욱이 고3인 큰 아들을 생각하면 남일 같지 않아 가슴 한편이 먹먹하다. 단원고 학생이던 YTN 한 카메라기자의 조카도 이번 참사의 희생자였다. 세월호 침몰 사고는 ‘그들’이 아닌 ‘우리들’의 아픔이었다.

사고 이후 취재 강행군이 이어지고 있다. 김 기자는 다시금 “신중에 신중을 기하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사고 초기 오락가락 했던 탑승자와 구조자 수, 피해 가족들의 혼돈, 취재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발생했던 대형 오보들…. 개인의 입장에서는 오보 없이 취재를 이어가고 있지만, 추락한 언론의 신뢰를 되돌려야 한다는 책임감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그는 “앞으로 재난 사고 분야 연수를 해 볼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5월1일부터 시작된 황금연휴 기간. 그러나 김 기자는 지금도 “세월호 침몰 참사의 실체적 진실을 밝혀내는 데 힘이 돼야겠다는 마음가짐”으로 목포 서해지방해양경찰청 기자실을 지키고 있다. 김희영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