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 칼날은 몇 ㎝냐?

안녕하세요. 저는 경향신문 사회2부 마포경찰서를 출입하는 성지영입니다. 기자 입문한지 3년차. 이른바 `사스마와리’로 되돌아온 것이 지난 4월입니다. 제게는 두 기수의 후배들이 있습니다. 막내인 41기 후배들이 입사한 것이 올해 6월 18일. 후배들이 사회부 수습생활을 시작한 것은 한달쯤 지난, 지난 7월 23일 부터입니다.
사회부 수습생활이야말로 ‘기자’에게는 두고두고 되새김질할만한 추억거리의 본산일 겝니다. 대외적으로는 가장 밑바닥 경험을 쌓을 수 있는 창구라는 수사를 붙일 수 있겠지만 실상은 인생에서 가장 형편없이 구겨질 수 있는 기간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물론, 여기에 가장 큰 일조를 하는 이들이 바로 1진들이죠. 수습 체험기는 봐왔지만 정작 1진 체험기를 본 기억이 없어 몇자 적어볼까 합니다.
첫 보고는 아침 6시부터 시작됩니다. 이제, 수습과 1진의 일합이 시작되는 거죠. 딴에는 완벽한 방어(?)를 위해 ‘변사자의 머리가 오른쪽으로 향했다’는 팩트까지 확인한 수습에게 부처님 손바닥 훑듯 허를 ‘퍽’하고 찔러봅니다. 0.05초 순간에 수백가지 생각이 머리 속을 헤집고 다닙니다. 칼날은 몇㎝냐? 지금 무직이면 전에는 뭐했냐? 오늘 들어온 음주운전자 최고치는 얼마든?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들. 내공의 승부. 수습의 완패는 불 보듯 뻔합니다.
‘으악’ 수습의 소리 없는 비명이 귓가에 울립니다. 때로는 적막한 침묵이, 때로는 울먹이는 목소리가 이어집니다.
후배들을 수습교육시키면서 일희일비하는 순간들이 많았습니다. 맥없는 태도에 실망을 했다가도 의외의 수훈에 기특해 하기도 합니다.
페이저가 없어진 요즘, 불통 사태도 겪습니다. 처음에는 부화가 치밀어 오르다가도 나중에는 사고를 걱정하며 백방으로 수소문해봅니다. 간신히 연락이 되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도 어김없이 매서운 질책을 퍼붓게 마련입니다. 나이가 많은 남자후배들에게 미안한 마음도 배어 나옵니다만 어쩌겠습니까. 그런 거죠.
수습을 거느린(?) 1진 생활은 제 자신에게도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가끔씩 후배들의 가당찮은 실수담을 접할 때면 제 수습생활이 떠올라 ‘툭’ 웃음이 터져나오기도 합니다. 당시 1진 선배들의 고충을 ‘충분히’ 이해하게 된 거죠. 딴에는 감정적으로 대하지 않겠노라 다짐한 터라 기분이 상했다 싶으면 일부러 여유를 두고 보고를 받기도 했습니다만.
뭐, 후배들이1진으로서의 저를 어떻게 볼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수습시절이 기자생활의 전부라는 오류를 범하지는 않았으면 합니다. 멋진 기자, 좋은 후배로 하루빨리 자리잡아 주길 바라며…. 오늘도 ‘쪼기’는 계속됩니다. 성지영 경향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