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지만 함께 가는’ 유럽의 경제

김태형 기자의 유럽 돌아보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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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태형 KBS 기자  
 
이달 초 브뤼셀에서는 기자들이 참석하는 경제 관련 토론회나 세미나가 연이어 열렸다. 위기를 이겨내는 길, 성장과 일자리 등을 주제로 한 이들 모임에는 유럽연합과 유럽정책센터, 유럽투자은행 등의 고위급 인사와 연구원 등이 발제자로 참석했다.

유럽 기자들이 함께한 이들 행사에 한국에서 온 연구원 기자 신분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어려운 경제 상황을 반영하듯 분위기는 무거운 편이었다.

유럽경제를 돌아보고 해결책을 모색해 보는 자리, 현장에서 가장 많이 나온 단어는 긴축 또는 내핍 등으로 번역되는 ‘austerity’였던 것 같다. ‘역시 긴축을 하는 수밖에 없다’, ‘긴축재정이 기대만큼 효과를 볼까?’, ‘달리 마땅한 대안이 없으니 긴축은 해야 하는데, 언제까지 해야 하나?’ 여러 의견이 오고 갔다.

긴축재정이 화두가 된 것은 가치가 오른 유로화에 기대 과도하게 빚을 진 나라가 많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빚 때문에 꼬인 문제, 이를 풀기 위해서는 빚을 줄여야 하고, 그러니 아껴 쓸 수밖에 없다는 그런 논리라고 할 수 있다. 아무튼 유럽경제에 대해 말 좀 해보자고 모인 자리에서 허리띠 졸라매기 얘기가 집중적으로 거론된 셈이다.

허리띠 졸라매기, 유럽경제의 현실은 숫자만 봐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11월 중순, 내년도 경제 전망을 발표했는데, A4 용지 크기의 179 쪽짜리 경제 전망 책자는 그늘진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

EU의 올해 실질 경제성장률을 -0.3%로 전망했고, 내년은 플러스로 돌아서기는 하지만 0.4% 성장에 그칠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그리스는 내년에도 4.2% 하락하고, 2014년이 돼야 그나마 0.6% 성장할 것으로 예측됐다.

병든 유럽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는 극약처방이 필요할 것도 같지만, 토론회나 간담회에서는 구조조정이나 해고, 인원감축이라는 단어는 듣기 힘들었다.

사람을 내쫓고 비정규직을 늘리고 공장을 옮겨서 경쟁력을 키우자는 아이디어는 우선순위에서 밀려있는 듯 했다. 회의에 참석한 사람들은 당장 누군가에게 고통과 희생을 요구해야만 하는 처방전을 섣불리 꺼내지 않았다. 경기가 어려워지면 기업은 말할 것도 없고 정부와 연구소, 때로는 언론까지 나서 한목소리로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고 외치고, 마치 당연한 것처럼 누군가는 고통과 희생을 감내해야 한다고 역설하는 한국의 흔한 풍경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늪에 빠진 유럽경제에 대해 토론회와 세미나에 나온 정책당국자들은 여러 시간 대화를 했어도 시원한 대책을 내놓지는 못했다. 기자들도 해답 찾기가 어렵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듯 화끈한 해결책을 묻지 않았다. 그들은 오히려 시간이 걸린다는 사실을 솔직히 인정했다.

하루아침에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님을 받아들이고, 조금 느리게 가더라도 함께 가는 길을 찾고 있었다. 유럽이 꼭 모범답안은 아니겠지만 세상에는 미국식 자본주의만 있는 게 아니다. 선진국의 문제 해결 방식을 둘러볼 때는 유럽도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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