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박한 얼음의 땅 그린란드, 삶은 강렬했다
제250회 이달의 기자상 사진보도부문 / 한국일보 조영호 기자
한국일보 조영호 기자
webmaster@journalist.or.kr
2011.08.24 14:54:06
|
 |
|
|
|
▲ 한국일보 조영호 기자 |
|
|
그린란드는 녹고 있다. 국토의 90%가 얼음으로 덮인 나라. 그린란드의 얼음이 일시에 녹아내린다면 해수면은 8m가 상승하고 뉴욕을 포함해 해안에 위치한 대도시의 2/3가 지구상에서 사라진다. 지구 온난화로 인한 대재앙의 시나리오의 중심에는 그린란드가 있다.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고산 등정과는 달리 그린란드의 대빙원을 개썰매를 타고 종단하는 환경탐험대는 한국일보 창간 57주년을 기념해 기획되었다. 태곳적부터 한 번도 녹지 않은 얼음으로 이뤄진 빙원을 달리며 지구온난화로 녹고 있는 현장을 카메라에 담아야 했다.
CNN을 비롯한 외신들은 빙원에 작은 물줄기나 흔적만 생겨도 헬기로 돌아보며 지구 온난화의 증거로 대서특필해온 터다.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지구온난화의 현장을 찾아야 했고 헬기를 탈 때마다 작은 물줄기라도 찾으려 눈이 빠지게 내려다 봤다.
한 달간의 일정이라지만 그린란드의 하루는 짧았다. 도로가 2km 남짓뿐인 일루리삿에서 하루 종일 걸어 다니다 보면 금세 하루가 저물었다. 5회가량 연재를 시작하면서 처음 포문을 열 지구 온난화 사진을 위해 수도 없이 돌아다녔지만 딱 맞아떨어지는 사진을 찍을 수 없었다. 게다가 어렵게 온 그린란드인데 이곳 풍광을 그대로 사진에 살려내야 했다.
그린란드에 도착한 뒤 일주일이 지난 5월16일, 2층짜리 배를 빌려 바다로 나갔다. 지구 온난화와는 무관하지만 그린란드 사람들의 일상인 바다표범 사냥을 촬영하기 위해서였다. 4시간에 1백만원이나 지불하고 빌린 배였지만 5~6월이 산란기인 바다표범은 좀처럼 물 위로 나오지 않았다.
결국 아무것도 보지 못한 채 항구로 돌아가는데 저 멀리 갈매기 무리가 떼 지어 날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혹시 넙치잡이 배인가 싶어 다가가 보니 선명한 선홍색 피가 눈에 들어왔다. 잔뜩 찌푸린 잿빛 하늘과 청빙, 그 위에 번진 빨간 피는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들었다.
옛 이누이트 전통방식으로 바다표범을 잡은 그린란드 현지인이 평평한 빙산 위에 배를 대고 고기를 해체하고 있었다. 빙산 위에 질퍽거리는 피와 바다표범의 내장은 잔혹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문득 이 모습이 바로 내가 찾던 모습임을 느낄 수 있었다. 지구 온난화로 빙산이 사라지면 더 이상 볼 수 없는 모습. 잔혹하지만 이누이트들이 살아온 모습, 결국 우리가 후손들을 위해 지켜내야 할 모습이었다.
해체를 끝낸 어부는 전통의식에 따라 고기를 제외한 부속물들을 바다로 돌려보냈다. 바다표범의 혼이 바다로 돌아가 다시 어부들을 찾아와주길 기원하는 이누이트의 의식에 따른 것이다.
정신없이 셔터를 눌렀다. 모든 순간을 기록하고 싶었다. 일련의 과정을 카메라에 담은 후에야 밝게 웃고 있는 현지인의 얼굴을 보았다. 척박한 얼음의 땅에서 살지만 이들의 삶은 얼마나 강렬한가! 가슴이 벅차올랐다. 이 순간을 있게 해준 모든 이에게 감사했다.
한국일보 조영호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Copyright @2004 한국기자협회.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