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성 언론과 인천공항 비정규직

[언론 다시보기] 김민하 시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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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하 시사평론가

▲김민하 시사평론가

신문만 보면 인천국제공항공사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문제로 온 나라가 들썩이는 듯하다. 알바를 하다가 연봉 5000만원이 됐다는 ‘가짜뉴스’가 사태를 키웠다는 관점도 있지만, 이 현상이 ‘청년’ 일반에 퍼져 있는 어떤 인식의 반영이라는 점을 외면하기는 어렵다.


이른바 ‘취준생’들의 세계관은 설명하자면 이런 거다. 직업은 신분이다. 연봉의 액수와 함께 대기업이냐 중소기업이냐, 정규직이냐 비정규직이냐, 직무의 성격이 남에게 자랑할만한 것이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계층화 돼있다. 이 신분은 일단 한 번 득하면 이직에 성공하는 특별한 경우가 아닌 한 거의 바뀌지 않는다. 최초에 얻은 신분에 따라 사는 지역과 주거 환경은 물론,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과정의 어려움까지도 달라진다.


태어나고 자란 것보다 한 단계 더 높은 곳에 속하는 건 누구나 바라는 바다. 그래서 취업은 경쟁이다. ‘나’는 신분 상승의 경쟁에서 승리하거나 최소한 현상을 유지하기 위해 스스로의 가치를 증명해야 한다. ‘스펙쌓기’는 취업의 문턱을 넘기 위해 거쳐야 하는 과정이지만 동시에 자기 자신의 가치를 제고하는 ‘투자’이다. ‘투자자’는 누구나 투자한 만큼 이익이 나오기를 기대하고 바란다.


정규직 전환은 공정한 기준에 따라야 하니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멈춰달라는 청원은 이런 세계관의 발로이다. 하지만 이런 주장이 어떤 시스템을 요구하는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가령 언론이 말하는 대로 이게 ‘공정’의 문제라면 ‘스펙쌓기’가 애초에 불가능한 계층에 대한 배려가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배려’라는 대의 자체를 거부하지는 않더라도, 그 ‘배려’가 나의 이익을 침해할 경우 ‘역차별’이라고 주장하는 게 최근의 세태이다.


앞서 신분의 현상유지 또는 한 단계 상승을 위한 경쟁을 시스템화한다면 그것은 ‘시험’이 돼야 할 것이다. 입시 문제에 있어서 차라리 정시가 공정하다는 주장처럼 국가일자리고시를 만들어 모든 취준생을 한 줄로 세우고 성적순으로 한정된 ‘좋은 일자리’를 배분하자고 하더라도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에 반대하는 ‘취준생’들이 이 해법을 받아들일 것 같지는 않다. ‘시험’에서 상위권을 차지해 애초의 신분 상승 혹은 유지라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인지 장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들이 자신의 능력을 공정하게 평가해달라는 게 아니라 노력, 즉 ‘투자’한 만큼 보상을 해줘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즉 세상의 바람직한 원리를 요구하는 게 아니라 자신에게 유리한 것을 바라는, 각자도생의 행동양식을 따르고 있는 셈이다. 보안검색요원들도 취업 절차에 응하고 필요한 교육을 받기 위해 들인 노력이 있고 그동안 업무를 수행하며 쌓은 노하우 등도 반영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물음에 “솔직히 모든 비정규직들이 그런 투자는 다 한다”(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6월25일자 인터뷰)는 답이 돌아온 건 이런 해석을 뒷받침한다.


결국 청년들의 주장은 “어찌됐건 살게 해달라”는 외침인 셈인데, 기성 언론의 태도는 이런 주장을 전한다면서 이들에게 각자도생을 강요하는 시스템 자체는 유지하는 역할을 자임하는 것으로 귀결되고 있다. 여론에 편승하기 위해 호구론, 로또론 등을 무책임하게 꺼내는 정치권 일부도 마찬가지다. 이들 주장대로 하면 끝없는 경쟁에서 승리한 사람만 행복한 지금의 체제는 어쩔 수 없는 조건이다. 이를 바로잡기 위한 모든 시도는 정치적 이득을 노린 불공정한 개입이다. 앞서 각자도생의 세계관에 비추어 본다면, 결국 기성 언론도 승리한 사람들의 소유물인 것이다. 여기서 벗어나려는 노력이 없는 건 아니겠지만, 바로 이게 한국 언론 환경의 가장 큰 문제가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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