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밤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직후 정권에 특히 비판적이었던 기자들은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계엄사령부 포고령에는 “가짜뉴스, 여론조작, 허위선동을 금한다”고 돼 있었기 때문이다. 포고령을 어기면 영장 없이 체포, 구금할 수 있었다. 이를 피해 몸을 숨긴 언론인도 있었다. 박현광 뉴스토마토 기자다.
“계엄 선포를 봤을 때는 굉장히 충격적이었어도 사실 신변 위협을 느끼지는 않았어요. 자연스럽게 ‘그러면 이제 어떻게 되지, 앞으로 어떤 기사를 써야 할까’ 고민했었어요. 그런데 가짜뉴스를 처단한다는 포고령을 보니까 저는 반드시 잡혀가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비판 기사를 쓰는 기자들은 반국가 세력이라고 해왔으니까요.”
박 기자는 9월 ‘명태균 게이트’를 최초 보도했다. 후속 보도를 해왔고 또 기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명태균 게이트는 정치 브로커 명씨가 지난 대선 때 윤석열 당시 후보를 위해 여론조사를 왜곡해 주고, 윤 후보는 그 대가로 명씨가 후원하는 김영선 전 의원에게 공천을 줬다는 의혹이다. 전말이 알려지며 대통령 지지율은 10%대로 떨어졌다.
박 기자가 포고령을 보고 불안을 느끼던 중 마침 김기성 편집국장에게서 먼저 연락이 왔다. “당장 이쪽으로 와라. 정말 포고령대로 언론인들을 붙잡기 시작한다면 우리가 우선순위일 수밖에 없다”고 했다. 점차 두려움이 느껴지던 박 기자는 한편으로 실감이 나지 않았다고 돌아봤다. “이동하면서도 계속 믿기지 않더라고요. ‘이게 현실인가 1980년대로 돌아간 건가’ 싶었어요.”
4일 새벽 박 기자는 김 편집국장, 최신형 정치부장과 함께 서울시 마포구에 있는 뉴스토마토 사옥 근처 호텔로 피했다. 급한 대로 사흘 정도 입을 옷가지만 챙긴 상태였다, 계엄령은 얼마나 길어질지 알 수 없었다. 명태균 게이트를 보도한 주축인 세 사람은 이번이 얼굴을 보는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고 농담도 주고받았다.
윤 대통령이 느닷없이 계엄령을 선포한 데는 명씨 문제로 위기를 느꼈다는 해석도 있다. 명씨가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지난달 15일 구속될 때 윤 대통령 부부와 통화한 녹음을 야당에 넘길 수 있다며 “내가 구속되면 정권이 한 달 안에 무너진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만큼 명태균 게이트를 보도한 뉴스토마토 기자들에게 포고령은 압박이 됐다.
그렇다고 그저 숨기만 할 생각은 아니었다. “‘지금 휴대전화를 쓰는 게 맞을까’ 얘기도 했어요. 노트북을 챙겨 가서 일은 일대로 하고 있었거든요. 저희가 정말 체포 대상이라면 전자기기를 쓰면 위치가 다 드러날 테니까요. 그런데 편집국장님이 ‘그래도 기사는 써야 하지 않겠냐. 잡혀갈 땐 잡혀가자’고 했어요. 저는 그저 ‘알겠다’고 했고요.” 박 기자는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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