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은 피해국가와 피해자에게 과거사에 대한 반성을 표해왔다. 강력한 외교력을 통해 지역이나 세계의 안정을 위협하는 무력행위들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개입하거나 반대의사를 피력해왔고, 탄탄한 국가재정으로 피해국과 피해자를 위한 지원에 나서기도 했다. 심지어 올해 코로나19로 인한 피해지원 예산에 유태인들을 위한 항목이 따로 있을 정도다. 지난 2016년엔 연방하원이 1915년 오스만제국이 아르메니아 민족을 대학살했다는 내용의 결의안을 채택하고, 대학살 과정에서 독일은 관망했다는 내용을 포함시킨 일도 있었다. 당시 유럽연합과 터키는 중동과 북아프리카에서 발생한 난민입국을 저지하기 위한 방안에 합의한 상태였다. 때문에 이러한 결의는 외교 분쟁과 협약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 예상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방하원이 이를 통과시킨 것은 정치적인 선택이라기보다 과거에 행한 잘못을 잊지 않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결과였다. 이는 당연히 주변국들의 호평을 받았다.
과거사를 반성하고 가해자를 규탄하며 피해자를 보호하는 모습을 보였던 독일이, 비록 제3국의 문제지만 전쟁범죄에 의한 피해자를 기리는 소녀상과 비문에 ‘외교’라는 문제를 들어 철거한다는 것은 지금까지의 행보와는 동떨어진 의아한 결정이었다. 미테구의 변명 아닌 변명도 이해하기 어렵기는 마찬가지였다. 소녀상이 무력분쟁에서 발생한 성폭력의 문제를 표현하는 것으로 판단했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의 행동만을 다루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다는 것이 일본 정부의 항의에 대해 내놓은 답변이었다. 민간영역과 외교영역을 분리하지 못한, 설치 의의와는 전혀 다른 입장이자 해석이었다.
다행히 소녀상에 관한 이상한 결정은 코리아협의회가 행정법원에 철거명령 효력 집행정지를 신청하고 행정부에 이의를 제기하면서 빠른 시일 내에 바로 잡혔다. 철거예정일을 하루 앞두고 미테지방청은 집행유보를 발표, 행정법원의 결정을 기다리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11월 초에는 해적당이 설치기한 보존 결의안을 제출한 데 대해 미테구 지역의원들이 찬성 27, 반대 9로 채택해 소녀상은 원래 계획대로 내년 8월까지 자리를 지킬 수 있게 되었다. 나아가 소녀상을 오래도록 보전할 수 있는 상황도 만들어지고 있다. 11월 초 결의에는 협의 시간 부족을 이유로 불참했던 좌파당이 소녀상의 영구존치 안건을 내어 투표가 예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물론 협상과 조정의 문제가 있어 소녀상과 비문이 원래의 목적 그대로 남아 있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련의 과정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상징하는 소녀상이 외교 분쟁의 빌미가 아닌 민간측면에서 제기된 인권의 문제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사건이기에 현재까지의 결정된 바 의미는 충분해 보인다.
사실 소녀상이 독일에서 겪은 수난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9월 프랑크푸르트의 본회퍼 교회에서의 임시전시가 계획되어 있었지만 당시 한국인을 포함한 여러 관계자들의 반대로 전시가 무산된 일이 있었다. 소녀상이 독일에서건 세계 어느 곳에서건 더 이상 시달리지 않길 바라며, 미테구가 철거 집행 유보를 결정한 보도자료의 마지막 문장을 소개한다.
“미테지방청은 시간과 장소 그 원인에 상관없이 모든 형태의 성폭력, 특히 무력상황 중에 여성에게 가해지는 성폭력을 반대한다.”
장성준 라이프치히대 커뮤니케이션학 박사과정의 전체기사 보기Copyright @2004 한국기자협회.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