킴 응, 그녀가 펼칠 야구가 궁금하다

[이슈 인사이드 | 스포츠] 양지혜 조선일보 스포츠부 기자

양지혜 조선일보 스포츠부 기자

▲양지혜 조선일보 스포츠부 기자

기자라는 핑계로 매사 삐딱하게 보는 버릇이 갈수록 심해진다. 지난달 중순, 북미 스포츠 사상 최초로 메이저리그 여성 단장이 탄생했다는 소식이 국내외 화제이길래 꼬투리 잡을 게 없는지 혼잣말하면서 뉴스를 읽어내려갔다. 메이저리그 30개 구단이 공화국이라면, 단장은 각 나라의 대통령과 다름 없는데 그런 직책이 여성에게 주어졌다는 것이 좀처럼 안 믿겼다. 게다가 이 나라는 남자들끼리 방망이들고 싸우는 곳 아닌가.


“마이애미 말린스 단장? 여긴 돈 없고 인기 바닥인 구단이잖아. 뉴욕 양키스의 슈퍼 스타였던 데릭 지터가 구단주로서 전권을 행사하는 팀이고. 정치에도 관심많은 지터가 언론 플레이하려고 기획한 것 아닐까? 얼굴 마담용은 싫은데, 이 아줌마 야구는 해봤나?”


이 아줌마의 이름은 킴 응(Kim Ng). 1968년생 52세이고 이목구비와 피부색이 친숙한 중국계 미국인이다. 한자식 이름은 오패금(伍佩琴)으로 응(Ng)은 ‘오’의 광둥어 발음이다. 그에 대해 이것저것 검색해볼수록 낯 뜨겁게 미안해졌다. 단장될 자격이 적합한 수준을 넘어 차고 넘칠 지경이었던 까닭이다. 미국 뉴욕에서 성장한 응은 어릴 적부터 소프트볼팀 주장을 도맡았고, 시카고 대학에서도 소프트볼 선수로 활약했다. 1990년 시카고 화이트삭스 인턴 입사가 메이저리그 경력의 시작. 경기 데이터 분석에 정통한 일 벌레로 살면서 8년만에 뉴욕 양키스 부단장으로 승진해 양키스의 3연패(1998~2000년 우승)를 거들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2005년 LA 다저스를 시작으로 7개 구단과 단장직 면접을 봤지만 채용은 안 됐다. 그는 “다양성을 상징하는 홍보용 카드로 날 써먹고 버리는 느낌이었다”고 당시를 회상한다. 2011년부터 메이저리그 사무국 수석부사장을 역임하며 단장 꿈을 계속 그렸다.


한 분야에서 ‘최초의 여자’가 되려면 압도적으로 똑똑하고 성실하며 독하게 인내해야 기회를 얻는다. ‘우승 저주 깨기 전문가’로 유명한 테오 엡스타인은 로스쿨 졸업하고 서른 무렵 보스턴 레드삭스 단장을 맡았고, 텍사스 레인저스의 존 대니얼스 단장은 역대 최연소인 만28세 41일 나이로 취임했다. 응 단장은 유리 천장에 구멍내는 사투를 30년간 벌인 끝에야 꿈을 이뤘다. 그래서인지 취임 소감엔 기쁨보다 중압감이 더 진했다. “단장직 합격 통보를 받았을 때, 어깨에 4.5t짜리 짐이 내려앉는 느낌이었어요. 평생 원했던 일이니 막대한 책임을 기꺼이 감수하겠습니다.”


그의 소감을 찬찬히 곱씹어보는데 여성 최초로 사건캡이나 보직부장을 맡고선 회사를 위해 죽을 각오로 일하던 선배들 얼굴이 스쳐지나갔다. 나의 성과에 여자 후배들의 미래가 걸려있다는 강박에 시달리며 집에 도통 못가던 선배들. 그들이 악쓰고 길을 터준 덕분에 언론계가 조금씩 바뀌었고, 응 단장을 뒤따라 여성 야구인들이 성장했다. 현재 메이저리그 전체 여성 직원 비율은 약 40%로 늘었다.


응 단장은 “일단 엄청나게 열심히 일하고, 항상 유머 감각을 유지하면서, 잠 들기 전 거울에 비친 스스로의 모습이 뿌듯하다면 지금 아주 잘 살고 있다는 증거다. 그렇게 살다보면 행운도 내 편이 된다”고 했다. 그는 마이애미 말린스 홈 구장에 우승 트로피를 가져오겠다며 취임 첫 날부터 선수단 파악에 돌입했다. 최초의 여자 단장이 펼치는 야구는 어떤 색깔일까.

양지혜 조선일보 스포츠부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배너

많이 읽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