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받지 않겠다면 '민주주의' 운운 말라

[우리의 주장] 편집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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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도 사안이면 중범죄에 해당하는데 해임건의는 안 하십니까?”


브리핑을 마친 추미애 법무부 장관에게 한 기자가 질문을 던졌다. 추 장관은 아무 말 없이 발언대를 내려와 출입구로 향했다. “질의응답 안 받으세요, 장관님?” 기자의 목소리에 짜증이 섞이기 시작했고, 급기야 “너무 일방적입니다”라는 항의가 터져 나왔다. 지난달 24일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직무 배제 사실을 발표한 서울고등검찰청 기자실에서 벌어진 일이다.


법무부가 윤 총장에 대한 감찰 관련 브리핑을 한다는 소식은 발표 시작 40분 전인 오후 5시 20분쯤 기자단에 통보됐다. 추 장관이 카메라 앞에 모습을 드러낸 건 오후 6시 5분쯤이었다. 준비해온 자료를 읽는 데 걸린 시간은 13분 남짓이었으니 브리핑 통보에서 완료까지 1시간 만에 이뤄진 셈이다. 어느 기자는 “(이럴 거였으면) 오늘 할 게 아니고 내일 하시고 질의응답시간 충분히 가졌어도 되지 않습니까?”라고 따졌지만 추 장관은 “질의응답은 다음 기회에 하겠다”는 말만 남긴 채 고검 청사를 빠져나갔다.


법무부 장관이 현직 검찰총장을 직무에서 배제한 것은 헌정사상 처음이다. 추 장관이 직접 기자실을 찾아 브리핑에 나선 것도 그만큼 사안이 중대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런 중대 사안을 발표하면서도 추 장관은 아무런 질문을 받지 않았다. 추 장관은 왜 본인이 하고 싶은 말만 하고 기자실을 나갔을까? 발표 내용 이외에 추가로 설명할 게 없었던 것인지, 무엇인가 숨겨야 할 일이 있었던 것인지, 단지 골치 아픈 질문이 싫었던 것인지 알 수 없다.


이 정부 들어 비슷한 일이 또 있었다. 공교롭게도 같은 법무부에서 일어났다. 지난해 6월12일 박상기 법무부 장관은 정부과천청사 브리핑실에 홀로 섰다. 기자회견이 예정됐던 시각 법무부 출입 기자단은 모두 자리를 비웠다. 박 장관은 아랑곳하지 않고 준비해 온 발표문을 읽었다. 법무부 검찰과거사위원회의 진상조사 활동에 관한 내용이었다. 당시 법무부는 기자회견을 1시간가량 앞두고 질문을 일체 받지 않겠다고 통보했다. 기자들은 “발표하는 내용만 그대로 보도하라는 것이냐”며 항의했지만 박 장관은 회견을 강행했다. 결국 기자들은 발표 내용을 보도하지 않기로 뜻을 모았다.


이런 일이 반복되는 데엔 이유가 있을 것이다. 두 경우에서 공통점은 사안이 매우 논쟁적이었다는 것이다.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다보면 반대편 정치세력에 공격의 빌미를 제공할 위험도 커진다. 그러나 고위 공직자가 그저 개인일 수 없듯이 기자의 질문은 기자 개인의 질문이 아니다. 불편하더라도 질문에 답하며 국민을 설득하는 것이 공직자의 의무다. 미국 백악관 기자실의 ‘전설’로 불렸던 헬렌 토머스는 날카롭고 직설적인 질문을 던지기로 유명했다. 그는 닉슨에게 베트남 전쟁을 끝낼 비책이 뭐냐고 물었고, 레이건에겐 그라나다를 침공할 권리가 있는지 따져 물었다. 오바마에게도 아프가니스탄에서 언제 철군할 것인지를 물으며 “왜 계속 죽이고 죽임을 당하고 있느냐?”며 직격탄을 날렸다. 2013년 92세의 나이로 세상을 뜬 그는 “기자에게 무례한 질문은 없다. 질문하지 않으면 대통령도 왕이 된다”고 말했다.


한국의 기자들은 질문을 던졌다가 ‘기레기’로 낙인찍히기도 하고 여당 대표에게 ‘후레자식’이란 욕설을 듣기도 한다. 어쩌면 질문을 받지 않겠다고 말한 추 장관과 박 전 장관은 그나마 점잖았다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기자의 질문을 받지 않겠다는 것도 개인의 자유라면 자유다. 다만 그 자유를 누리겠다면 ‘소통’이니 ‘민주주의’니 하는 말은 더 이상 입에 올리지 말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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