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순환(雙循環)

[글로벌 리포트 | 중국] 이재호 아주경제 베이징특파원

이재호 아주경제 베이징특파원

▲이재호 아주경제 베이징특파원

중국인들의 짝수 사랑은 유별나다. 축의금을 낼 때나 술자리 순배가 돌 때도 짝수 여부를 따질 정도다. ‘좋은 일은 겹쳐 온다(好事成雙)’는 믿음이 강력히 작용하기 때문인데, 음양론으로 대표되는 2수 분화 세계관의 영향이라는 등 설(說)은 다양하다.


정치 슬로건이나 기업 마케팅 등에도 짝수가 종종 활용되곤 한다. 중국이 북핵 문제의 해법으로 제시한 쌍궤병행(雙軌竝行·한반도 비핵화 프로세스와 평화협정 논의 동시 추진)이나 쌍중단(雙中斷·핵 도발과 한미 연합훈련 동시 중단)이 대표적이다. 해외 직구에 익숙한 젊은층에게는 중국판 블랙프라이데이로 불리는 쌍십일(雙十一)이 더 친숙할 것이다. 매년 11월11일 알리바바와 징둥 등 전자상거래 기업들이 펼치는 대규모 할인 행사다.


최근 자주 회자되는 말은 ‘쌍순환(雙循環)’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입버릇처럼 반복하면서 한국 언론에도 자주 등장한다. 중국이 새로운 경제 발전 전략으로 내세운 쌍순환은 지난 5월 처음 제시된 이후 거의 매일같이 관영 매체에 언급되고 있다.


시 주석은 “내수 대순환을 위주로 국제·국내 쌍순환이 상호 촉진하는 발전 방안”이라고 정의했다. 여전히 모호하긴 한데, 26일부터 나흘간 열리는 중국 공산당 19기 중앙위원회 제5차 전체회의(19기 5중전회)를 통해 구체적인 윤곽이 드러날 전망이다. 우선 내부 역량으로 경제적·기술적 자립을 이룬 뒤 중국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글로벌 가치사슬을 형성해 미국에 맞선다는 게 많은 전문가들이 내놓은 쌍순환의 대략적인 의미다.


그래서 강조되는 게 내수 확대와 핵심 기술 확보다. 홀로서기를 위한 필수 요소다. 미·중 갈등 격화에 따른 미국의 경제·기술 제재로 궁지에 몰린 중국의 불가피한 선택이기도 하다. 14억 인구의 광활한 내수 시장에 기대 경제 위기를 넘겠다는 시도는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고 있다. 1분기 -6.8%로 추락했던 중국의 경제 성장률이 2분기 3.2%, 3분기 4.9%로 살아나고 있는 게 방증이다.


다만 중국식 표현으로 ‘관건적 기술’을 확보하는 건 단기간 내에 이룰 수 없는 목표다. 화웨이가 고사 위기에 처해도, 틱톡이 미국의 강매 압박에 시달려도, 국민 메신저인 위챗까지 제재 대상이 된다 해도 참고 견디며 한발 한발 내디딜 수밖에 없는 지난한 작업이다. 내수 중심의 경제 구조 역시 지속 가능할 지는 미지수다. 외화벌이가 전과 같지 않은 상황에서 소비 활성화의 전제 조건인 충분한 규모의 소득 증대를 이뤄내기가 쉽지 않은 탓이다.


대미 항전을 선언한 중국은 지구전에 대비할 수밖에 없다. 시진핑 주석은 인민들의 허리띠를 졸라맬 때 터져 나올 아우성을 잠재우려면 더 큰 힘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듯하다. 집권 2기 들어 연임 제한을 철폐하는 등 장기 권력 유지를 위한 포석을 깔기 시작한 이유다.


최근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 공작 조례’라는 게 만들어졌다. 당 중앙의 지도 체제와 방식, 조직별 직권 등을 규정한 당내 법규인데 시진핑 1인 체제가 이례적으로 강화된 게 특징이다. 공산당 내 3대 권력 기구인 중앙위원회와 중앙정치국, 중앙서기처의 소집과 의제 결정 권한을 시 주석 혼자만 행사할 수 있다. 장쩌민 시대부터 이어져 온 집단 지도 체제의 종식이다. 정치적 반대 의사 표현, 더 나아가 시 주석의 리더십을 흔들 정적의 출현은 요원해졌다는 게 중론이다.


중국은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개혁개방의 길을 견지하겠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경제적으로는 내수와 자립을 강조하고, 정치적으로는 시 주석으로의 권력 집중을 추진하며 자꾸 안으로 움츠러드는 모습을 보인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와 홍콩·신장위구르자치구 탄압 등의 여파로 국제 사회 내 우방도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미국 견제용으로 막대한 공을 들여 포섭을 시도한 유럽까지 등을 돌리면서 친구로 꼽을 만한 건 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 일부 국가에 불과하다.


중국이 위기 탈출의 해법으로 선택한 쌍순환 전략이 고립과 독재의 악순환으로 빠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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