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신문·디지털 분리 100일… 기자들 "우리 콘텐츠는 뭔가요"

혼란 말하는 내부 목소리 많아… 콘텐츠 방향 설정, 디지털에 대한 수뇌부의 전향적 인식 개선 요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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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가 신문과 디지털을 분리하는 디지털 전환을 감행한 지 넉 달이 됐다. 핵심은 새 CMS 개발과 도입, 신문에서 디지털로 무게 중심 이동을 전제한 조직개편이다. 기존 신문사의  정체성과 목표 자체를 전환하는 이 같은 시도는 중앙일보를 제외하면 국내 기성매체에서 없었다. 다만 추진과정과 결과를 두고 현재 내부에선 성과보다 혼란을 말하는 목소리가 많다. 특히 개편 취지에 걸맞은 콘텐츠 방향 설정, 수뇌부의 디지털에 대한 전향적인 인식 개선에 대한 요구가 크다.


한국일보는 지난 6~7월 새 CMS ‘허브(HERB)’를 도입하고 신문과 디지털을 분리하는 조직개편을 단행했다. 기존 콘텐츠본부에 편제됐던 편집국과 디지털콘텐츠국이 뉴스룸국과 신문국으로 나뉘었다. 뉴스룸국 산하에 뉴스룸1부문(정치·국제·기획취재부), 뉴스룸2부문(사회·지역사회·스포츠·문화부), 뉴스룸3부문(경제·산업·정책사회), 멀티미디어부, 디지털뉴스부, 디지털전략부 등이 놓였고, 콘텐츠본부장과 신문국장의 지휘를 받는 신문국은 아래 에디터와 종합편집부, 편집 1·2부, 그래픽뉴스부, 지식콘텐츠부를 두게 됐다. 대다수 기자가 속한 뉴스룸에선 기사가 아닌 디지털 콘텐츠를 생산하고 신문국 에디터 등 소수 인력이 신문 제작을 전담하는 방식이다.



국내 언론에서 이 수준의 급진적인 디지털 전환 시도는 드물었다. 언론사 디지털 혁신 측면에서 가장 멀리 갔다고 평가받는 중앙일보 정도가 앞서 신문과 디지털을 분리하는 구조개편을 감행했다. 특히 이번 개편 근간엔 “(기자들이) 신문을 잊게 하려 한다” “머리 속에 신문이 남아 있는 한 한계가 분명하다”는 인식이 놓여 있다. 신문사가 신문보다 디지털에 방점을 두는 변화를 감행한 시도는 그 자체로 분명 의미가 크다.



하지만 혁신의 주체라 할 한국일보 상당수 기자들에게선 여러 박한 평가와 개선 요구가 나온다. 한국일보만의 콘텐츠 방향성이나 정체성에 대한 합의나 결정이 없다보니 그저 PV를 평가 잣대로 삼는 분위기가 심화되고 이에 업무강도만 증가했다는 의견이 대표적이다. 한국일보 A 기자는 “PV가 디지털의 전부가 아닐 텐데 관리층에선 여전히 그렇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며 “매일매일 속보성 기사까지 현장이 다 처리하다보니 통신사나 속보팀처럼 일하게 돼 업무강도가 세졌다. 업무시간 중 퀄리티 있는 기획기사 준비를 동시에 해야 하니 피로도가 높고 업무집중도도 떨어진다”고 했다. 이어 “기사 양을 늘리라는 건지, 차별화된 콘텐츠가 필요하다는 건지, 프로젝트나 인터랙티브를 하란 건지 합의가 없다보니 디지털 방향성을 잘 모르겠고 답답함만 크다”고 덧붙였다.


이는 ‘신문에 들이는 수고를 더는 대신 디지털에 최적합한 콘텐츠를 선보인다’는 개편 취지가 제대로 작동치 못한다는 의미다. 타 매체가 쓴 기사를 챙기다 정작 우리만의 콘텐츠를 고민할 여력을 잃는다는 것이다. 한국일보 B 기자는 “새 스타일로 기사쓰기는 거의 못한다. 스토리텔링 등 다양한 시도가 얘기됐지만 결국 지금은 6~7매 쓰던 걸 9~10매로 쓰는 정도”라며 “예컨대 리스티클 기사를 쓰면 신문에 못 들어가지 않겠나. 확립된 비전은 없고 속보 압박은 많으니 하던 대로 하게 된다”고 했다. 어떤 혁신을 감행해도 콘텐츠 차별화 없이는 독자가 체감할 수 없단 점에서 이는 심각한 문제다.



신문제작을 전담하는 신문국 에디터들의 업무 역시 녹록지 않다. 에디터제 도입으로 기존 부서 간 벽이 존재했던 지면 배정이 유연해지고 신문 전체의 통일성은 더 담보됐지만 지면 품질이 떨어졌다거나 기자의 의도와 달리 기사가 잘려나간다는 불만이 계속 나온다. 이들 고연차 기자는 디지털 기사 분량을 조절해 지면에 담는 역할을 맡는데 신문부문장을 포함해 6인에 불과한 인력규모를 감안하면 당연한 결과다. 한국일보 C 기자는 “신문제작 인력이 6명밖에 안 되다보니 하루에 한 명씩 야근을 해도 일주일에 두 번은 차례가 돌아온다. 주간 업무로드가 상당한 것으로 안다”며 “현장기자들 불만은 이해되지만 에디터들 입장에선 직접적인 커뮤니케이션 없이 지면구성을 해야하는 어려움이 있다”고 했다. 앞서 신문과 디지털을 분리한 중앙일보는 디지털 전환 초기 ‘라이팅에디터’ 6명에 지면을 전담시키고 분량조절만 맡겼지만 현재는 ‘콘텐트제작에디터’를 15명까지 늘렸다. 업무도 뉴스룸에서 나온 기사를 재창조, 재구성하거나 일부 지면기사를 직접 생산하는 역할까지 확대했다.


이 같은 개편결과에 대한 평가는 허브 도입과 과정 등에서 회사 수뇌부가 보인 행보에 대한 불만이 누적된 탓이기도 하다. 회사는 외부 인사들을 영입해 새 CMS 구축 임무를 맡겼는데 이 과정에서 혁신의 주체인 기자들의 의견이 많이 반영되지 못했고, 기존 내부 조직이 배제된 채 추진되며 내부 경험이 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특히 현재는 많이 개선됐지만 도입 초기 기사쓰기나 포털 송고 같은 기본적인 기능에서 오작동을 일으키며 내부 불만이 터져 나왔다.



한국일보 D 기자는 “충분한 시간을 갖고 CMS를 도입하며 기술을 내재화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내부 인력의 역량에 대한 믿음도 부족하다보니 외부인사를 영입해 마치 솔루션을 사듯 추진된 것”이라며 “CMS는 돈 투자를 넘어 조직과 조직문화 변화와 연관되는데 모든 게 너무 급했다”고 평했다.


결국 모든 문제의 책임소재는 뉴스룸국과 편집국의 수뇌부, 회사 경영진 등에 돌아갈 수밖에 없다. 기자들의 고민은 의사결정권자의 방향 설정 없인 해법으로 구체화될 수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 현재 주된 불만은 개편 이전 확립됐어야 하는 부분이기도 했다. 아울러 법인분할까지 전제한 중앙일보와 달리 조직의 안정성을 상당히 신경 쓴 한국일보의 조직개편 이후 인사가 혁신성에 대한 담보로 이어질 수 있을지 자성도 필요해 보인다. 이미 기자들 사이에선 “혁신의 대상이 혁신을 한다고 하는 것”이란 분위기가 팽배하기 때문이다.


최근 한국일보와 동화그룹 수뇌부가 디지털혁신위원회를 꾸려 1차 전환의 미비점을 보완하고 디지털전략 완성을 위한 후속작업에 나선 것은 고무적이다. 회장과 사장, 콘텐츠본부장, 주필, 뉴스룸국장, 신문국장, 디지털전략실장, 디지털전략팀, 미디어플랫폼팀장, IT팀장, 동화그룹 CTO 등이 지난 8월 말부터 2주 단위로 모여 ‘일하는 도구·조직·방식의 변화’를 의제로 논의하고 있다. 한국일보 차장급 이상 E 기자는 “돌고 돌아 기자 수 문제로 오게 된다. 뉴스든 영상이든 1명이라도 더 붙으면 나아질 수밖에 없지 않나. 선택과 집중 없이 비슷한 규모 신문사보다 적은 인력으로 영상이나 스토리텔링을 하라니 우왕좌왕 할 수밖에 없다”면서도 “기자들과 국장단 입장을 다 이해하지만 누구도 답을 모르는 문제지 않나. 서로 갉아먹기보다는 격려해주는 분위기가 필요하다”고 했다.


최승영 기자 sychoi@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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