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에 빠진 기자들, 오늘도 힐링 한 포기 수확

스트레스 풀면서 건강 돌보는 효과
자연과 가까워지며 자녀 교육까지
뜻 맞는 기자들 합심해 '공동 농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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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너스 하이(runners high)’라는 단어가 있다. 30분 이상 달리면 다리와 팔이 가벼워지고 피로가 사라지면서 새로운 힘이 생기는 상태를 말한다. 주로 달리기를 예로 들지만 수영, 사이클, 스키 등 장시간 지속되는 운동에서도 이 쾌감을 느낄 수 있다. 그런데 운동만이 아니라 농사에도 러너스 하이가 있다고 한다. 일명 ‘농부 하이’다. 지난 2010년 농사를 시작한 문소영 서울신문 기자는 “섭씨 32도의 땡볕 속에 일사병 걸리기 직전까지 밭일을 하면 농부 하이가 찾아온다”며 “몸을 괴롭히면서 끝장을 볼 때까지 알하는 즐거움이 농사에 있다”고 말했다.


문 기자뿐만 아니라 최근 주위에선 농사에 빠진 기자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들은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건강을 돌보는 데 농사가 제격이라고 입을 모아 말한다. 자연과 가까워지는 데다 자녀 교육에도 좋다는 게 공통된 의견이다. 지난 2008년 농사를 시작한 김종철 한겨레신문 기자는 “병원에서 큰 수술을 한 이후 건강도 돌보고 자연과도 가까워지고 싶어 농사를 시작했다”며 “확실히 정신노동을 하는 사람은 몸을 움직이고 땀을 흘리는 게 참 도움이 되는 것 같다. 빨리 가서 하고 와야지 해도 두세 시간은 밭에 머물 정도로 푹 빠지는 데다 무엇보다 작물이 커가는 걸 보는 기쁨, 또 수확한 농산물을 바로 먹을 수 있다는 점이 참 좋다”고 말했다.  


농사에 빠진 기자들은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건강을 돌보는 데 농사가 제격이라고 입을 모아 말한다. 자연과 가까워지는 데다 자녀 교육에도 좋다는 게 공통된 의견이다. 사진은 밭에서 농작물을 수확하고 있는 안충기 중앙일보 기자(맨 왼쪽)와 김종철 한겨레신문 기자(맨 오른쪽). 두번째 사진은 문소영 서울신문 기자가 수확한 농작물. 세번째 사진은 정남구 한겨레 기자가 마을 사람들과 함께 농사를 짓는 모습.

▲농사에 빠진 기자들은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건강을 돌보는 데 농사가 제격이라고 입을 모아 말한다. 자연과 가까워지는 데다 자녀 교육에도 좋다는 게 공통된 의견이다. 사진은 밭에서 농작물을 수확하고 있는 안충기 중앙일보 기자(맨 왼쪽)와 김종철 한겨레신문 기자(맨 오른쪽). 두번째 사진은 문소영 서울신문 기자가 수확한 농작물. 세번째 사진은 정남구 한겨레 기자가 마을 사람들과 함께 농사를 짓는 모습.


올 봄 주말농장을 분양받아 농사를 시작한 이주영 경향신문 기자도 “부모님이 은퇴하시고 마땅한 취미가 없는 것 같아 같이 해보면 어떨까 해 농장 신청을 했다”며 “도시에서 자라는 아이가 자연을 접할 기회도 마련해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 기자는 “아직 요령이 없어 새싹도 잘 안 올라오고 열매도 손톱 만하게 열리지만 코로나19 때문에 학교도 못 가고 집에만 있는 아이가 흙을 만지고 물도 주고 지렁이도 보는 게 정서적으로 좋아 보이더라”며 “처음엔 왜 하냐고 했던 부모님마저 작물이 자라는 걸 보니 좋아하시더라. 내년에도 또 농사를 지을 생각”이라고 했다.


대부분 주말농장 5평에서 시작해 10평에서 30평까지 규모를 키워가지만 일부 기자들은 뜻이 맞는 이들과 합심해 공동 농사를 짓기도 한다. 2000년 농사를 시작해 한 해를 빼고 매년 농사를 지어온 안충기 중앙일보 기자는 현재 9명의 친구들과 60평 농사를 짓고 있다. 안 기자는 “내가 하는 걸 보고 친구들이 재미있어 보였는지 하나둘 모이더라”며 “지금은 네 밭 내 밭 할 것 없이 같이 모여 상추, 토마토, 감자, 오이, 호박, 가지, 고추 등을 골고루 심고 수확물을 나눈다. 5~6월 한꺼번에 자라는 쌈 채소 등은 양이 많으니 동네 이웃들에게까지 나눠준다”고 말했다.


지난 2003년 도시농 생활을 시작한 정남구 한겨레 기자도 이웃과 함께 200~400평 정도의 공동 농사를 짓고 있다. 정 기자는 “처음에는 5평 주말농장을 다니다 생활협동조합원들과 어울려 농사를 짓기 시작했고, 2014년부터는 아예 마을 사람들과 큰 밭을 빌려 규모 있는 농사로 바꿨다”며 “올해는 밭을 딴 곳으로 옮겨 8가구가 200평을 함께 농사짓고 있는데 절반은 공동으로, 또 나머지는 구획을 나눠 7~8평 정도씩 개인 밭으로 일구고 있다. 토요일 오전에 일하고 술 한 잔 함께 하고, 가끔은 따로 모여 밥도 먹고 술도 마시는데 도심에선 쉽게 쌓을 수 없는 이웃 간 정, 그 공동체가 좋더라”고 했다.


업무 때문에 주중에 밭을 찾지 못하는 기자들은 주로 주말에만 농부로 변신한다. 농작물은 “주인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 자라기에” 자주 찾고 싶지만 마음뿐이다. 어느 정도는 마음을 비우는 것이 필요하다. 문소영 기자는 “장마 기간엔 잡초가 농작물보다 우월한 속도로 자라 갈 때마다 잡초를 제거해야 한다”며 “‘거악’부터 쳐내고 중간 잡초, 작은 잡초 순으로 세 번에 걸쳐 잡초를 제거한다. 요즘엔 태평농법이라고 낮게 깔려 자라는 잡초는 남겨 두는데 소출이 그다지 많진 않다”고 말했다.


고생이 없진 않지만 농사를 지으면서 얻는 보람과 깨달음은 더 크다. 김종철 기자는 “고수나 딜, 공심채 등 이것저것 재밌겠다 싶은 작물은 다 심어보는 즐거움이 있다”며 “도시에 있다 보면 어떻게 농작물이 길러져서 왔는지 모르지 않나. 그 원초적이고 기본적인 기제를 알 수 있다는 점이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문소영 기자도 “농작물을 키우면 한반도가 2~5월엔 거의 비가 오지 않는 지독한 건기라는 것을 알 수 있다”며 “기후변화에도 관심을 쏟게 되고 태풍이 올 땐 더 고통스럽다. 고지대 아파트 주민이지만 밭에 고인 물을 보면서 침수 피해를 겪는 이들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다”고 했다.


다만 어느 정도의 각오는 필수적이다. 안충기 기자는 “4~5월은 따뜻하고 잡초도 자라지 않아 심으면 심는 대로 잘 자라니 농사짓기가 굉장히 재미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6월이 되면 햇볕이 뜨거워지고 바깥에서 한 시간 일하는 것도 힘들어진다. 이 과정에서 80%는 밭을 팽개치는데 머리로만 생각하던 땅과 현실에서 만나는 땅은 아주 다르다”고 조언했다. 정남구 기자는 “익숙하지 않아 실패하고 그만두는 사람을 많이 봤는데 따로 떨어져서 주말농장을 하면 곧잘 지치니 잘 하는 사람들과 함께 공동 농사를 지어보는 것도 좋다”며 “사실 농사짓는 거 별 거 없다. 모든 걸 잊고 땀 흘리며 정직하게 땅에서 배우고, 수확물을 경건한 마음으로 감사히 받는 것이 농사다. 사람이 하는 것보다 하늘과 땅과 바람이 하는 것이 농사”라고 했다.


강아영 기자 sbsm@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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