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면봉, 지평선, 여적… 미디어 격랑 헤쳐온 '신문 코너명'

한 코너 수십 년 넘게 이어지기도
의미·유래 대부분 알려지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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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八面鋒’, ‘여적’, ‘36.5˚C’ 같은 신문 코너 제목들은 어떤 뜻을 담아 지어진 걸까. 뉴스 애독자에게도 신문 코너명의 유래나 배경까지 알려져 있진 않다. 올드미디어의 위기 속에서도 여전히 코너들은 탄생되고 사라지고 존속되면서 전통과 혁신의 긴장은 진행형이다. 그 의미는 제각각일지언정 독자에게 무엇을 어떻게 전할지 고심한 결과란 점은 동일하다.


우선 조선일보 ‘팔면봉(八面鋒)’은 직관적으로 가장 의미파악이 어려운 쪽에 속한다. 1924년부터 96년째 조선일보 1면에 실려온 팔면봉은 “모든 방면의 급소를 찌르는 촌철살인의 글귀”로 해석할 수 있다. 중국의 역대 제왕 및 유명인사의 약전을 기록한 ‘고금역대촬요’, 남송 시절 제왕 필독서인 ‘치국방략’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김명환 전 조선일보사 사료연구실장은 “‘팔면’은 동양 사상에서 ‘모든 방면’이며 칼끝을 뜻하는 ‘봉’은 ‘필봉(筆鋒)’, 즉 ‘힘 있는 글’을 뜻했다”며 “이름 유래에 관해서는 기록이 전해지지 않지만 옛 지식인 사이에서 ‘세상사 여러 분야에 관해 솜씨 있게 써낸 글’이란 뜻으로 쓰였다”고 지난 2009년 독자에 답한 바 있다. 한 때 칼럼 형식도 취했지만 1952년 6월부터 ‘세 줄 촌평 묶음’의 현 틀을 유지하고 있다.


낯선 신문사 코너명은 해당 호 신문에서 가장 화제가 된 주제를 소품 성격의 여러 소재를 끌어와’ 논설위원이 쓰는 오피니언면 5매 내외 칼럼 코너에 몰려있다. 국민일보 ‘한마당’, 동아일보 ‘횡설수설’, 서울신문 ‘씨줄날줄’, 세계일보 ‘설왕설래’, 조선일보 ‘만물상’, 중앙일보 ‘분수대’ 등이 대표적이다. 이 중 경향신문 ‘여적(餘滴)’은 “글을 다 쓰거나 그림을 다 그리고 난 뒤에 남은 먹물”이란 뜻대로 1946년 10월 창간부터 연재된 칼럼이고, 한겨레신문 ‘유레카’도 뜻과 유래가 알려져 있는 드문 사례다. 2005년 5월 유레카 1호 칼럼을 썼던 정남구 한겨레신문 상무이사는 “2004년 비상경영 이후 논설실 개편 과정에서 ‘독자들이 지식과 재미를 동시에 얻을 지식 칼럼이 우리도 필요하다’ 해서 김지석 선배(전 대기자)가 주도해 만든 것”이라고 했다. 한겨레는 ‘부고’를 ‘궂긴 소식’으로 표현하듯 우리말을 많이 써오지 않았냐는 질문엔 “아르키메디스 일화에서 비롯된 ‘유레카’를 대체할 말이 없어 그대로 쓰기로 했다”고 부연했다.


오래 이어진 코너 상당수는 그 의미나 유래가 명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예컨대 한국일보 ‘지평선’은 세로쓰기 시절 신문 1면 제호 아래(5단 광고 상단) 가로줄을 치고 그 아래 고정 편집됐는데 이 줄이 지평선과 유사한 모양이라 코너명으로 정해졌다는 설이 있지만 확실치 않다. 다만 세로쓰기 시절 ‘▶’‘▷’‘▦’ 등 기호로 문단과 문단 구분을 용이하게 하고 4~5문단으로 분량을 한정하던 방식은 여러 신문에 아직 살아남아있다. ‘태평로’(조선), ‘광화문에서’(동아), ‘만리재에서’(한겨레21)처럼 언론사 사옥 위치를 코너 이름으로 쓰는 방식도 아직 유효하다. 국민일보 외부 기고 칼럼명인 ‘너섬情談’은 ‘여의도’의 순우리말에 ‘다정한 이야기’란 한자를 붙인 경우다.


수십 년을 거치며 많은 코너가 사라졌지만 여전히 코너 신설 움직임은 있다. 2018년 3월 동아일보는 “세상의 이면을 때론 봄날 고양이처럼 여유 있게, 때론 날카롭게 응시하는” 사진 칼럼 ‘고양이 눈’을 시작했고, 2013년 8월부터 한국은 “중견 기자들의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인 ‘36.5˚C’를 연재 중이다. 1987년 기자가 된 이충재 한국일보 수석논설위원은 “입사 때 ‘지평선’은 이미 ‘지평선’이었다. 유래는 나도 모르겠다(웃음)”며 “신문만 있을 때 지식정보 창구가 제한되다보니 일제히 재미난 소품거리로 상식을 제공하는 단평 칼럼을 내놨고, 가십이 필요 없는 세상이 되다보니 신문마다 있던 가십 코너가 사라진, 큰 흐름이 중요한 지점이라 본다”고 했다.  


최승영 기자 sychoi@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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