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미향·정의연 논란' 다루는 언론들 태도, 진영 논리로 비춰져

보수언론 적극적 보도, 진보언론 소극적 대응… 모두 의도성 있다는 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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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9일 국회에서 열린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당선인의 기자회견에 취재진이 몰렸다. 제21대 국회 개원을 하루 앞두고 윤 당선인이 자신과 정의기억연대(정의연)를 둘러싼 의혹을 공개적으로 해명하는 자리였다.


이날 윤 당선인은 언론이 제기한 의혹들을 전면 부인했다. △위안부 피해자 기부금·후원금 유용 △2015 한일 위안부 합의 주요 내용 사전 인지 △안성 쉼터 고가 매입 및 헐값 매각 △남편 신문사에 일감 몰아주기 △류경식당 탈북 종업원들에게 월북 권유 △개인명의 계좌로 후원금 모금해 사적 사용 △주택 매매자금 부정 출처 의혹 등은 모두 사실이 아니라고 했다. 개인계좌로 후원금을 모은 것에 대해선 “크게 문제의식이 없었다”고 사과했지만 이 역시 “계좌에 들어온 돈을 개인적으로 쓰지 않았다”고 선을 그었다.


윤 당선인은 검찰 수사를 이유로 들며 계좌 입출금 내역 등 자신의 해명을 뒷받침할 구체적인 증거는 제시하지 않았다. 다만 “부족한 점은 검찰 조사와 추가 설명을 통해 한 점 의혹 없이 소명하겠다”며 “국민 여러분께서 납득하실 때까지 소명하고 책임 있게 일하겠다”고 말했다. 윤 당선인의 신분은 이튿날 국회 개원과 함께 국회의원으로 바뀌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이자 여성인권 운동가인 이용수 할머니가 지난달 7일 첫 기자회견을 연 이후 언론엔 ‘정의연’, ‘정대협’(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의연의 전신), ‘윤미향’ 등이 끊임없이 등장했다. 이 할머니는 정의연이 각종 후원금과 지원금을 불투명하게 사용해왔다면서 전 이사장인 윤 의원을 비판했고, 위안부 운동의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했다.


더불어민주당 윤미향 당선인이 지난달 29일 오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의기억연대 활동 당시 회계 부정 등 각종 의혹에 대한 입장을 밝힌 후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윤 당선인은 앞서 언론이 제기한 의혹들을 전면 부인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윤미향 당선인이 지난달 29일 오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의기억연대 활동 당시 회계 부정 등 각종 의혹에 대한 입장을 밝힌 후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윤 당선인은 앞서 언론이 제기한 의혹들을 전면 부인했다. /연합뉴스


이 할머니의 공개 발언을 계기로 언론은 정의연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회계 부정 의혹 등 정의연의 운영상 문제, 지난 30년간 이 단체에 몸담아온 윤 의원 개인과 관련한 의혹들이 드러났다. 의혹의 진위는 현재 진행 중인 검찰 수사와 향후 법원의 결정을 거쳐 판가름 나겠지만, 언론이 수면 아래 있던 의혹들을 들어 올리는 역할을 한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번에도 언론 보도의 부정적인 관행이 그대로 재연됐다. 윤 의원이 정당 소속인 만큼 이 사안이 정치적으로 이용될 수 있는데도 상대 당이나 반대 진영에서 나온 발언과 주장을 검증 없이 받아쓰는 보도가 잇따랐다. 지난달 30일 조선일보가 보도한 <[단독] ‘위안부 전시회’ 정부 보조금만 챙기고… 정대협, 전시 예정일 10일 지나 “연기”> 기사가 한 사례다.


조선일보는 곽상도 미래통합당 의원실이 입수한 자료를 인용해 “정대협이 ‘위안부 전시회’ 명목으로 수천만원대 정부 보조금을 타낸 뒤 예정일(5월6일)이 지난 현재까지도 개최하지 않았고, 별다른 전시회 준비조차 하지 않다가 이미 개최 일을 넘긴 시점에 돌연 “일정을 연기할 것”이라고 정부 측에 통보했다”고 보도했다. 이 기사엔 해당 자료를 제공한 곽 의원의 코멘트는 들어갔지만 정의연(옛 정대협) 측 입장은 포함돼있지 않다.


정의연은 즉각 반박했다. 이날 정의연은 설명자료를 내고 “코로나19 사태로 공공 박물관 대부분이 휴관 중이어서 당초 5월6일부터 개최하기로 했던 전시를 잠정 연기하기로 결정했다. 본 사업의 완료기간은 10월31일까지로 이 기간 내 사업에 대한 일체의 과정을 진행할 수 있다”며 “조선일보는 박물관 측에 사실 확인도 하지 않고 기사를 게재했다”고 꼬집었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반론이 원 기사에 반영되지 않은 채 다른 매체와 SNS 등으로 확대 재생산되면서 사실인양 굳어진다는 점이다. ‘아니면 말고 식’ 의혹 제기의 폐해다. 또한 본질에서 빗나간 내용인 데다 사실 확인조차 거치지 않은 보도(중앙일보 [단독]“‘아미’가 기부한 패딩···이용수·곽예남 할머니 못 받았다”), 불특정 다수 대상 사업 등 회계 처리 시 시민단체 운영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 보도(한국일보 [단독] 정대협 사업항목 같은데… 기부금 수혜자 1년 새 999명→9999명?, 한국경제신문 [단독] 하룻밤 3300만원 사용…정의연의 수상한 ‘술값’) 등이 논란이 되기도 했다.


팩트체크 전문 미디어 뉴스톱의 김준일 대표는 “정의연 관련 보도는 전체적인 틀에선 언론이 충분히 할 수 있는 의혹 제기였다고 본다. 다만 과도하게 축약된 제목이나 단정적인 표현, 종북 이미지 덧씌우기처럼 일부 무리한 보도들은 의구심을 갖게 만들었다”면서 “저널리즘의 신뢰가 매우 낮은 상황에서, 이번 논란을 둘러싸고 양 진영에서 강한 정파성이 작동하다 보니 ‘보수언론의 왜곡’이라는 한 마디로 이 상황을 다시 왜곡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실제 정의연 논란을 다루는 언론의 태도는 언론사 안팎에서 진영 논리로 비춰지고 있다. 초반부터 적극적으로 보도를 이어온 보수언론과 그에 비해 소극적으로 대응한 진보언론을 두고 각각 의도성이 있다는 시각이다. 진보매체에서 정의연 논란을 취재·보도하고 있는 한 기자는 “사내에서도 여러 목소리가 나온다”며 “사안을 따라잡지 못했다는 비판, 위안부 운동의 특수성을 고려할 때 의혹 제기에 몰두하다 자칫 30년 역사에 흠집을 낼 수 있다는 우려, 위안부 운동의 역사성과 회계 부정 문제를 구분해야 한다는 인식 등이 있다”고 전했다.
진보언론인 경향신문에선 정기적으로 자사 보도를 비평하는 독립언론실천위원회가 오는 4일 개최돼 기자들과 국장단이 정의연 보도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다. 앞서 지난 1일 KBS 기자협회 차원의 정례 보도편성위원회에서도 정의연 논란에 소극적인 보도 태도가 언급됐다.


다른 방송사들과 달리 KBS는 지난달 25일 이 할머니의 2차 기자회견, 29일 윤 의원의 기자회견 모두 TV에서 생중계하지 않았다. 저녁 메인뉴스에서도 이를 첫 꼭지로 다루지 않았다. KBS가 이 할머니의 1차 기자회견(5월7일)부터 윤 의원의 기자회견 당일까지 23일간 메인뉴스에서 정의연 관련 논란을 다룬 보도는 총 14건으로, MBC(20건)·SBS(24건)와 비교해 적은 편이다. 양성모 KBS기자협회장은 “이번 사안을 신중하게 대하는 태도가 외부의 시각에선 소극적 보도로 비춰질 수 있다는 의견을 나눴다”며 “개인적으로 이번 논란을 계기로 ‘위안부 운동=정의연=윤미향’을 뛰어 넘어 더 큰 운동으로 도약할 수 있는 시각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정의연 보도를 바라보는 전문가들도 이제 언론이 정의연 논란 그 이후를 조명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미디어 전문 매체 미디어스 편집장을 지낸 김민하 시사평론가는 “과도한 문제제기나 핵심을 치지 못하는 보도를 내세우기보다 실체적 진실이 무엇인지 파고드는 기사, 위안부 운동을 포함한 시민사회 운동의 방향성에 대해 논의하고 공유할 수 있는 자리가 필요하다”며 “한겨레가 선보인 ‘위안부 운동을 말하다’ 전문가 릴레이 기고가 좋은 예시”라고 말했다. 최근 정의연 논란을 분석한 칼럼 <정의연 기부금, 본질 꿰뚫기>를 연재한 황신애 한국모금가협회 상임이사는 ‘언론 본연의 역할’을 당부했다. 황 이사는 “시민단체에서 모금은 다양한 영역에서 쓰이는 자원 개발 성격이 큰데 이번 정의연 보도에선 비영리 목적 사용으로만 부각돼 안타까웠다”면서 “언론은 우리사회의 등대 같은 존재라고 생각한다. 시민사회 활동에서 어떤 부분이 오작동하고 있는지, 어떻게 개선해야 하는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등을 잘 발라내 보여주는 역할을 언론이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김달아 기자 bliss@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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