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록 인터뷰 KBS 뉴스9, 방심위 소위선 '주의' 전체회의 '중징계'… 무슨 일이

[김경록 의견서에 결과 뒤집혀]
소위원회 결과 접한 후 이메일 제출
'강제 취재, 답변 유도신문 정황' 등
김씨의 일방적 주장일 수 있는 내용

방심위, KBS측 소명도 없이 중징계
"객관성 결여된 정파적 심의" 비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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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월 정경심 교수의 자산관리인(PB) 김경록씨 인터뷰를 보도한 KBS ‘뉴스9’에 대해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객관성을 위반했다며 ‘해당 방송프로그램의 관계자에 대한 징계’를 결정했다. 방통심의위는 지난 24일 전체회의를 열고 “인터뷰 전체 내용의 맥락을 왜곡하고, 결론에 부합하는 일부 내용만 인용하는 등, 언론의 고질적인 관행인 ‘선택적 받아쓰기’ 행태를 여실히 보여주었다”며 징계 이유를 밝혔다. 관계자 징계는 ‘과징금’ 다음으로 무거운 법정 제재로, 그만큼 방송심의규정 위반 정도가 중하다고 본 것이다. 이날 전체회의에서는 “우리나라 언론 보도의 치욕사 중 한 페이지로 기록될 것”이라는 발언도 나왔다.


하지만 앞서 이 문제를 논의했던 지난 5일 방송심의소위원회 때만 해도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당시 김재영 위원은 “선택적 받아쓰기” 관행을 비판하며 “경종이 필요하다”고 했지만, 제재 수위에 관해선 법정 제재 중 가장 낮은 단계인 ‘주의’ 의견을 냈다. 허미숙 부위원장도 ‘주의’ 의견이었고, 나머지 위원들은 ‘권고’, ‘의견제시’, ‘문제없음’ 등이었다. 이런 분위기를 ‘반전’시킨 것은 김경록씨가 낸 의견서였다. 언론 보도로 소위 결과를 접한 김씨가 방통심의위에 이메일로 의견서를 보낸 것이었다.


전체회의를 앞두고 공유된 이 의견서가 미친 파장은 컸다. 소위 땐 “(KBS 보도에서) 고의성, 악의성이 보이진 않는다”고 했던 김재영 위원은 “의견서를 보고 생각이 달라졌다. 방송 내용이 사전에 치밀하게 기획된 각본에 따라 고의적, 악의적으로 취사 선택된 거라고 판단했다”며 ‘관계자 징계’로 제재 수위를 크게 높였다. 허미숙 부위원장도 “철저하게 사전에 보도 방향이 기획된 기사”라며 중징계를 주장했다. 그는 의견서를 “믿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날 회의에서 나온 발언들을 종합하면 김씨는 의견서에서 △사전 인터뷰 취지와 보도된 내용이 전혀 다르고 △검찰 조사 후 인터뷰를 내보내지 말아 달라는 요청에 KBS 법조팀장이 약속하고도 이를 어겼다고 주장한 것으로 파악된다. 또한, 강제취재로 답변을 유도하거나 유도신문이 있었다고 볼만한 정황도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이를 근거로 김재영 위원은 “영화에서 벌어질 법한 일들이 벌어지는구나”라고 말하기도 했다.


문제는 이 같은 내용이 김씨 일방의 주장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KBS측에 소명의 기회조차 주지 않고 중징계를 강행했다는 것이다. 이날 심영섭 위원은 “김씨가 제출한 의견서는 참고는 할 수 있지만, 제재 수위를 정하는 데 있어서 증거자료로 쓸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허 부위원장도 “의견서는 참고 정도고, 중요한 결정 요인은 아니”라고 했지만 기존 ‘주의’ 의견을 ‘관계자 징계’로 상향 조정한 또 다른 근거는 찾을 수 없었다. KBS는 재심을 청구한다는 계획이어서 재심 과정에서 이 의견서 내용의 진실성 여부가 쟁점으로 다뤄질 것으로 보인다.


KBS가 논란 이후 자체적으로 시행한 시정 조치들이 오히려 중징계의 근거가 됐다는 점도 논란이 예상된다. KBS는 지난해 10월 ‘유시민의 알릴레오’에서 ‘검-언 유착’ 의혹을 제기한 이후 자체 점검팀을 구성해 취재·보도의 전 과정을 조사했고, 담당 기자들은 물론 국장단을 전면 교체했으며 출입처 폐지를 비롯한 취재 시스템 개선 작업을 진행 중이다. 지난 5일 소위에 참석해 의견진술을 한 임장원 KBS 통합뉴스룸 경제 주간은 “내부적으로 뼈를 깎는 노력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방송사가 자율적으로 시정 조치를 이행할 경우, 심의에 참작해 제재 수위를 낮춰주는 게 일반적이다. 지난 2017년 12월과 2018년 1월, MBC가 ‘뉴스데스크’에서 자사의 전직 인턴기자와 담당 기자의 친구를 일반 시민 인터뷰로 내보내 문제가 됐을 때도, 방통심의위는 MBC가 이후 “취재 과정 전반에 대한 각성과 개선을 위해서 노력”한 점을 고려해 행정지도인 ‘권고’ 조치했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강상현 위원장은 KBS의 문책성 인사 등을 두고 “문제의 심각성을 자인한 것”이라며 가중 처벌을 주장했다.


이 때문에 방통심의위야말로 객관성은 물론 절차적 공정성을 결여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언론개혁시민연대는 25일 논평을 내고 “방심위의 결정은 객관성 위반에 대한 충분하고도 신중한 논증을 결여한 채 섣불리 중징계에 이른 부실심의로 재심을 통하여 절차 및 결정의 문제점을 바로잡아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언론연대는 “방심위는 방송 내용이 정해진 규정을 준수하는지를 심의하는 곳이지 언론을 훈계하고, 취재 관행을 바로잡는 기관이 아니다”라며 “더군다나 방심위는 정부여당이 추천하는 인사가 다수를 차지하는 행정기관으로 6대3의 정파적 구조 하에서 수많은 보도 가운데 대통령이 임명한 고위공직자를 검증하는 보도를 콕 집어 일벌백계의 대상으로 삼겠다는 것은 정파적 심의라는 의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고 지적했다.


김고은 기자 nowar@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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