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방송·통신 간 장벽 붕괴… 공영방송 체제 개편되나

방통위 최근 방송제도개선 초안 공개… 수평적 규제체계에 방점
공적 영역은 공공성 회복에, 민영은 광고 등 최소 규제로 재정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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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설문조사 플랫폼 엘림넷 나우앤서베이가 지난달 1~4일 패널 1000명을 대상으로 ‘저녁 7시 이후 가장 많이 시청하는 미디어 매체’에 대해 설문조사를 한 결과, 절반 이상(56.7%)의 응답자가 유튜브를 꼽았다. 지상파와 케이블, 넷플릭스, 네이버TV 등 모든 동영상 플랫폼을 합해도 유튜브를 이기지 못했다.


광고업계에 따르면 지난 10월 한 달간 기업들이 모바일 동영상 광고비로 총 920억원 정도를 썼는데, 그중 약 420억원이 유튜브에 집행됐다. 국내 1위 포털인 네이버도 36억원에 불과했고, MBC와 SBS는 10억원 정도에 그쳤다. 모바일의 광고매출 점유율은 이미 2017년 방송, 인쇄, PC 등 모든 매체를 앞질렀다. 모바일의 강세에 힘입어 최근 3년간 전체 국내 광고시장은 연평균 4.4% 성장했지만, 방송은 거꾸로 4.7%의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특히 지상파는 갑절이 넘는 10.4%가 줄어들며 수백억대 적자 행진 중이다.


방송통신위원회가 ‘중장기 방송제도 개선 추진반’의 연구결과를 토대로 의견 수렴을 하기 위한 토론회를 지난달 28일 서울 목동 방송회관에서 개최했다. 이날 토론회는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이 주최했으며, 총 3개 세션에 걸쳐 약 4시간30분가량 진행됐다.

▲방송통신위원회가 ‘중장기 방송제도 개선 추진반’의 연구결과를 토대로 의견 수렴을 하기 위한 토론회를 지난달 28일 서울 목동 방송회관에서 개최했다. 이날 토론회는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이 주최했으며, 총 3개 세션에 걸쳐 약 4시간30분가량 진행됐다.


방송 재원이 위축되면서 한정된 파이를 둘러싼 국내 사업자 간 갈등은 고조되고 있다. 문제는 이런 와중에도 유튜브의 독주는 계속되고 있고, 넷플릭스에 이어 디즈니플러스 같이 거대 자본과 콘텐츠 경쟁력을 앞세운 글로벌 OTT들이 출범을 앞두고 있다는 점이다. 이처럼 국가간, 방송과 통신간 경계영역을 허무는 서비스들이 확산하면서 현행 방송법 체제로는 글로벌 융합환경에 대응하기 힘들어졌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방송통신위원회가 지난 4월 ‘중장기 방송제도개선 추진반’을 구성하고 관련 연구와 논의를 진행해온 것은 이런 배경에서다. 앞서 지난 1월 김성수 더불어민주당 의원 주도로 방송법과 IPTV법 등을 통합한 통합방송법이 발의됐지만, 기존 체계에 OTT를 끼워 넣다 보니 혼선이 일었다. 이에 추진반에선 방송의 개념 자체를 재정의, 시청각미디어서비스(가칭) 개념을 신설해 동영상 서비스를 모두 포괄하도록 하고, 방송과 통신으로 구별되던 규제체계도 재정비할 것을 제안했다. 방통위는 지난달 28일 토론회를 열어 초안을 공개하며 제도 개선의 목표로 △공·민영 방송규제체계 재구조화 △공정경쟁 환경조성 및 규제의 합리화 △기술발전의 제도 수용성 및 시장예측 가능성 제고 등 크게 세 방향을 제시했다. 요약하면 방송과 통신을 구분해 규제를 차별화하는 현행 수직적 규제체계를 ‘동일서비스, 동일규제’를 위해 수평적으로 바꾸고, 공·민영방송 체계를 개편해 공적 영역은 공공성 회복 및 강화에 주안점을 두고 민간영역은 산업성과 효율성을 높인다는 것이 핵심이다. 공적 영역은 기존과 같은 규제체계를 유지하면서 공적 재원을 지원하고, 민간영역은 최소 규제 원칙에 따라 규제를 대폭 완화하고 광고규제도 전면 재정비한다는 내용이다.


주목할 것은 공·민영 체계 개편안에 담긴 함의다. 방통위는 KBS와 EBS만을 영조물(營造物)로서의 공영방송으로 법적 실체를 규정하고, 이와는 다른 ‘공공서비스방송’이란 새로운 면허체계를 만들어 방송사가 신청할 경우 공적 책무를 부과하고 공적 재원도 지원하는 방식을 제안했다. 단적으로 MBC 같은 경우 공공서비스방송을 신청하고 공적 영역에 남아 공적 재원을 지원받을 것인지, 아니면 SBS나 유료방송과 같이 민간영역으로 넘어가 자율경쟁을 할 것인지 선택해야 하는 갈림길에 선 것이다. 이날 토론회에서 MBC측 패널이 “어떤 제도적 지원도 없이 공영방송으로서 공적 책무를 짊어져 온 MBC의 역사성과 사회적 맥락을 무시했다”며 볼멘소리를 낸 것은 이 때문이다. 아울러 공·민영 규제 차별화, 민간부문 활성화가 공공영역의 축소와 경제 권력 집중에 따른 민주적 공론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이에 대해 추진반의 일원이기도 한 정준희 한양대 언론정보대학 겸임교수는 “공·민영을 나누는 게 가능하냐, 모호하지 않냐는 얘기가 나오는데 지금 문제는 잘못하면 다 같이 죽게 된 상황”이라며 “공공성 자체가 재구성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서 먹고 살 수 있는 시장 환경과 공적 지원의 환경들을 조성해야 하고, 그러려면 산업이 활성화되고 공적으로 지원해줄 수 있는 거리가 만들어져야 한다는 게 핵심”이라고 말했다. 이날 발표를 총괄한 이종원 정보통신정책연구원 방송미디어연구실장도 “현행 방송법에 기대서는 지금의 어려운 상황을 해결할 수 없다. 다 망한다”며 “방송의 공익성·공공성 강화와 산업성 구현이라는 두 축으로 공·민영을 구분해서 가는 데 동의가 된다면 나머지는 공론화 과정에서 논의를 구체화할 수 있다”고 밝혔다.


방통위는 이날 나온 발표문을 방통위와 정보통신정책연구원 홈페이지에 공개하고, 오는 10일까지 국민 의견과 정책 제안을 접수할 예정이다. 허욱 방통위 상임위원은 “정책 의사결정의 골든타임은 지났지만, 실버타임까지 놓칠 순 없다”며 “내년 초에 먼저 급하고 중요한 과제부터 대안을 제시하고, 총선 이후 21대 국회에서 본격적인 입법 작업에 들어가 4기 방통위 임기가 끝나는 7월까지 최대한 해결하겠다”고 말했다.


김고은 기자 nowar@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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