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명 바이라인, 보도자료 객원기자… 돈만 주면 기사 만드는 '어뷰징 최적화'

[체계적 어뷰징 '씁쓸한 자화상']
비편집국 직원이 쓴 광고 기사 엉뚱한 기자명으로 포털 출고
"진짜 바이라인으로 어뷰징 하면 기자 사기 꺾이고 자괴감 커져...
그렇다고 또 바이라인 없으면 포털서 문제되니 만들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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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털에 대응한 국내 언론사들의 ‘어뷰징’이 시스템으로 자리 잡으며 고도화되고 있다. 가상의 바이라인이 도입돼 실검 기사에 쓰이거나 비편집국 직원이 쓴 광고 기사가 기자 이름으로 출고되는 등 분업화·체계화된 어뷰징 방식이 업계 내 스탠다드가 된 모양새다.


한 인터넷 매체는 지난 7월 말부터 10월 말까지 한 헬스케어 기업 제품에 대한 광고성 기사를 20여건 출고했다. 유명가수의 브랜드 모델 발탁 소식, 브랜드 론칭 관련 행사를 비롯해 기업명과 제품 브랜드 소개 등을 다룬 기사는, A 편집기자의 바이라인을 달고 출고됐다. 그런데 실제 언론사 CMS상에서 해당 기사를 쓴 이는 A 기자가 아니었다. 경영 관련 부서에 근무하는 B씨가 작성한 기사가 A기자의 바이라인을 달고 언론사 사이트 및 포털에 게재된 것. 12일 현재 언론사 사이트에선 해당 제품의 온라인 광고가 확인되는 상태다.


매체 소속 C기자는 “취재기자들의 반발을 예상한 것 같고 편집팀이 기사 첫 독자로 송고를 맡다보니 벌어진 일로 보인다”며 “명백한 바이라인 도용이고 저널리즘 윤리에도 위배된다. 독자에게 믿을 수 있다는 최소한의 보증인데 회사는 내부 일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듯하다”고 했다. 이어 “당장 분기 수익도 좋지만 영업을 하더라도 제발 장기적인 관점을 갖고 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언론사의 포털에 대한 어뷰징, 즉 실검 대응이나 광고성 기사에 대한 비판은 포털 출범 이래 계속됐지만 개선 없이 다다른 현재의 모습은 ‘어뷰징 최적화 시스템의 안착’에 가깝다. ‘기사는 언론사 기자가 자신의 이름을 걸고 쓴다’는 원칙 자체가 무너지고, 어뷰징이 언론사 차원의 묵인 또는 허가 아래 뉴스 생산 시스템 일부에 완전히 편입된 게 현실이다.


이에 따라 바이라인에 가명을 쓰거나 아예 존재하지 않는 기자 이름으로 어뷰징을 하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 예컨대 한 신문사의 경우 CMS 상에만 존재하는 가상의 기자가 있어 바이라인을 걸고 기사가 출고되기도 한다. 해당 매체 사정을 잘 아는 언론계 D 관계자는 “진짜 바이라인을 걸고 하면 기자들의 사기가 떨어지고 자괴감이 커진다. 그렇다고 바이라인이 없으면 네이버, 다음 등 포털에서 문제가 될 수 있으니 만들어 쓰는 것”이라며 “묻는다고 언론사가 제대로 알려줄리 만무하다보니 실제 기자인지 확인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CMS상에만 존재하는 기자는 웬만한 매체엔 다 있다고 보면 된다”고 했다.


보도자료만 담당하는 객원기자를 따로 두고 운용하는 경우도 빈번하다. 어뷰징으로 단언하긴 어렵지만 트래픽·수익에 기반한 언론사 디지털 대응이 얼마나 체계화됐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한 중소 인터넷 매체의 경우 기사는 올리지만 소속 기자 다수가 실명은 물론 성별조차 모르는 기자가 존재한다. 가짜 바이라인을 달고 재택근무로 하루 17~19개의 기업·기관발 보도자료를 기사화하는 기자다. 언론사 사이트에선 12일 현재 해당 기자 바이라인으로 총 2100여개 기사가 확인된다. 매체 소속 E기자는 “기자들이 출입처 보도자료를 이메일로 전달하면 어색한 문장 정도만 살짝 고쳐 하루 할당을 채우는 알바기자가 있다. 보도자료 정리다 보니 본인이 실명 바이라인을 원치 않은 것으로 않다”고 했다.


이 같은 기조가 지속되면서 언론계 밖에선 ‘금전만 지불하면 언제든 보도자료를 언론사 뉴스로 만들 수 있다’는 분위기도 형성되고 있다. 실제 기자협회보가 입수한 한 중소기업의 2019년 언론사 보도 관련 지출내역을 보면 이 회사는 한 온라인 마케팅 업체를 매개로 총 28건의 의뢰 및 지출을 통해 28개 기업 보도자료를 기사화했다. 매체 규모에 따라 건당 5만5000원~15만원의 비용을 지불했고 모두 뉴스 형태로 포털에 송고됐다.


트래픽과 광고 기사 등 포털 어뷰징에 대한 언론사 경영진의 인식이 바뀌지 않고선 현실을 바꾸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인터넷 매체 F 국장은 “웬만큼 규모가 있는 매체에서 어뷰징에 따른 수익은 미미하다. 수익 이외 PV로 대변되는 영향력, ‘코리안클릭’ 순위 등 영업할 때 보여줄 수치 자료로서 의미 정도”라면서 “돈이 안 돼도 부수확장해서 신문 찍는 정서가 디지털에선 트래픽으로 이어지고 있다. 자기 성과에 대한 평가로서 온라인 부서 중간 관리자로선 무시할 수 없는 것”이라고 했다.


경제지 G기자는 “‘코리안클릭’이나 ‘랭키닷컴’은 툴바가 설치되는 PC를 대상으로 분석한다. 모바일 영향력을 대변치 못해 버려야 하는데 주요 매체 경영진은 순위가 잘 나오니 버리지 못한다”며 “순위가 광고단가 상승으로 이어지지도 않는데 지금은 내부 성적표 때문에 어뷰징도 유지되고 있다. ‘코리안클릭’ 등을 보고자료로 쓰는 관행부터 사라져야 가능하다”고 했다.


최승영·박지은 기자 sychoi@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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