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에 등장한 로봇 심판

[스페셜리스트 | IT·뉴미디어] 김익현 지디넷코리아 미디어연구소장

김익현 지디넷코리아 미디어연구소장.

▲김익현 지디넷코리아 미디어연구소장.

포수 뒤에 있는 심판이 스트라이크, 볼 판정을 한다. 여기까진 특별할 것 없는 모습이다. 그런데 하는 일이 여느 심판과 조금 다르다. 뒷주머니에 아이폰, 귀에는 무선 이어폰인 에어팟을 끼고 있다. 그리곤 투구추적 시스템인 트랙맨으로 판정한 내용을 그냥 전달하는 역할만 한다.


미국 메이저리그와 제휴한 애틀랜틱리그에서 시험 중인 로봇 심판 얘기다. 독립리그인 애틀랜틱리그는 선진적인 제도를 먼저 적용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여기서 검증된 제도는 메이저리그에 도입된다. 따라서 메이저리그에 로봇 심판이 등장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로봇 심판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스포츠 경기에 기계가 끼어드는 건 용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2013년 퍼펙트게임을 무산시킨 결정적 오심 이후 분위기가 바뀌었다. 공정한 경기를 위해선 기계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는 여론이 힘을 얻었다. 그 분위기에 힘입어 2014년부터 메이저리그 야구경기에 비디오 판정이 도입됐다.


로봇 심판은 비디오 판정에서 한 걸음 더 나갔다. 스트라이크, 볼 판정까지 인공지능 기술에 맡기는 실험이다. 물론 로봇 심판에 대해선 비판 여론도 만만치 않다. 류현진 선수의 팀 동료이자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투수 클레이튼 커쇼가 대표적이다. 커쇼는 “로봇 심판은 미친 짓”이라고 주장한다. 로봇 심판을 도입할 경우 야구 경기가 지루해질 것이란 게 그 이유다.


하지만 현실은 커쇼의 비판과는 사뭇 다르다. 지금까지 실험 결과 경기 시간이나 경기당 득점 모두 사람들이 심판을 본 경기와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스트라이크 비율이나 볼넷 허용률 역시 큰 차이가 없었다. 오히려 들쭉날쭉한 스트라이크 존 때문에 피해 보는 사례가 줄었단 평가도 만만치 않다.


프로바둑계는 야구보다 한 발 앞서 인공지능 충격을 겪었다. 알파고 이후 큰 충격에 휩싸이기도 했다. 인간이 기계에 패배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쉽지 않았다. 하지만 덕분에 인공지능에 대해 좀 더 진지한 성찰을 할 수 있었다. 알파고 같은 인공지능 프로그램을 바둑 공부에 활용하는 사례도 있다고 한다. 덕분에 전체적인 바둑 수준이 향상됐단 얘기도 들린다.


로봇 심판은 프로야구에 어떤 바람을 몰고 올까? 지금 당장은 짐작하기 힘들다. 여전히 논란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메이저리그에 로봇 심판이 등장할지 여부도 아직은 알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프로야구의 로봇 심판 실험엔 박수를 보낸다. 좀 더 정확한 판정을 위해 비디오 판독을 도입한 마당에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지 못할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박수를 보내는 건 그 때문만은 아니다. 미국 프로야구의 이번 실험은 ‘인공지능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보여주는 훌륭한 사례가 될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그게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메이저리그의 로봇 심판 실험을 관심 있게 지켜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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