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자 수렁 KBS·MBC 비상경영 선언

양승동 KBS 사장 "올 하반기 추가 채용 않고 2023년까지 2600억 절감"
최승호 MBC 사장 "전 부문 비용절감 추진은 물론 인건비 줄일 장기 계획도 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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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자 수렁에 빠진 KBS와 MBC가 잇따라 비상경영을 선언하고 나섰다. 지상파라는 플랫폼의 구조적 위기에 더해 채널 경쟁력 하락, 주52시간 상한 근무제 시행 등에 따른 인건비 증가로 재정 악화가 지속되는 데 따른 극약처방인 셈이다. 전례 없는 위기에 강도 높은 처방까지 나왔지만, 내부 갈등과 반발 등 넘어야 할 산은 아직 많다.


KBS는 지난 18일 ‘비상경영계획 2019’를 시행하며 연간 600억원 규모의 비용 절감 대책을 내놨다. 지난 6월 정필모 부사장 주재로 꾸려진 토털 리뷰 비상TF에서 만든 비상경영계획에는 4개 분야 63가지 실행 과제가 담겼다.


TF가 제시한 KBS의 향후 실적 전망은 비관적이다 못해 충격적이다. TF에 따르면 KBS는 앞으로 5년간 매년 1000억원대의 손실이 발생해 4년 뒤인 2023년에는 누적 사업손실이 6569억 원에 이를 전망이다. 내년 후반부터는 은행 차입금 의존이 불가피하다고 TF는 진단했다.


가장 큰 원인은 물론 광고수입 감소다. KBS만의 문제는 아니다. 올해 상반기 지상파 광고 매출은 전년 대비 20% 가까이 줄어든 것으로 알려졌다. KBS의 올해 광고수입은 2500억원을 밑돌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는 2015년에 비해 반 토막 난 수치다. 수신료 인상도 당분간 기대하기 어렵다. 축소된 재원에 맞춰 사업과 비용구조를 효율적으로 바꿀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비상경영계획은 과거처럼 일괄 삭감하는 방식은 지양하고, 핵심 역량에 집중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본방송 비율을 줄이고 재방송을 늘려 확보된 예산을 핵심 콘텐츠 제작에 투자한다는 계획이다. ‘시사기획 창’, ‘추적60분’ 통합과 ‘KBS 24뉴스’, ‘아침 뉴스타임’ 폐지 등도 검토 대상에 포함됐다. 또한, 전체의 43%를 차지하는 인건비성 비용을 줄이기 위해 올 하반기 추가 채용은 하지 않고, 앞으로도 경력직 채용을 늘린다는 방침이다. TF는 이를 통해 2023년까지 5년간 약 2600억원의 비용을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양승동 사장은 지난 22일 조회사에서 “비상경영계획안은 KBS가 이대로 가다가는 외부로부터 구조조정 당할 수 있다는 경고를 담고 있다”면서 “KBS가 당면한 구조적인 재정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반드시 실행해야만 하는 최소한의 혁신안”이라고 강조했다.


내부 반응은 대체로 둘로 갈라진다. 기술직이 다수인 KBS노동조합은 비상경영계획 내용이 알려진 지난 15일부터 이틀간 4건의 긴급성명을 연달아 내고 17일에는 “양승동 사장의 무능경영 심판 투쟁”을 선언하며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전환했다. 특히 지역방송국 광역화 방안과 관련해 “지역방송국을 말살하겠다는 의도”라고 강하게 비난하며 지역 지부장 등 5명이 25일 삭발을 단행하기도 했다.


다수 노조인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는 온도차가 있다. KBS본부는 지난 18일 낸 성명에서 “가장 큰 책임은 경영진의 능력부족”에 있다면서도 “의지와 진정성을 보여준다면 개혁을 마다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대안 없는 반대는 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이들은 “어디서 어떻게 줄일 것인지도 중요하지만 어디서 어떻게 개혁을 이룰 것인지를 제시하라. 바꾸면 무엇이 좋아지는지, 바꾸면 어떻게 위기를 돌파할 수 있는지를 제시하고 설득하라. 그것이 진정한 비상경영계획”이라고 주장했다.


MBC도 사측의 비상경영 추진 선언에 ‘올 것이 왔다’는 분위기다. 최승호 MBC 사장은 지난 25일 방송문화진흥회 업무보고에 참석해 “하반기에 비상경영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최 사장은 “모든 부문에서 비용 절감을 추진함은 물론 인건비 부담을 줄일 장기적인 계획을 시행하겠다”고 했다. MBC는 상반기 영업 손실이 이미 400억원을 넘어섰으며, 광고 매출은 1100억 원대에 그쳐 연초 목표의 40%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MBC는 정책기획부 등을 중심으로 ‘비상경영계획’과 ‘중장기 인력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제작비의 선택과 집중, 인건비 감축 등 큰 틀에서 KBS의 비상경영계획과 궤를 같이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관련 언론노조 MBC본부는 지난 25일 발행한 노보를 통해 “당장의 영업이익과 실적개선을 위한 일시적인 몸집 줄이기를 넘어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자생력을 갖추고 성장의 동력을 마련한 ‘공영방송 MBC’의 모습이 어떻게 실현될 것인지, 확고한 비전과 전략을 제시해야 한다”면서 “조합은 회사의 방안을 면밀히 검토하고, 조합원의 공감과 동의가 이루어진다면 어려움을 넘어서는 과정에 동참할 것”이라고 밝혔다.


MBC본부 관계자는 “지상파가 예전과 다른 환경에 처해 있는 건 맞고 덩치가 큰 것도 사실이기 때문에 다이어트를 해야 한다는 데는 동의를 한다”면서 “다만 몸무게를 몇 킬로 뺄지만 정할 게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 다이어트를 하고 어떤 운동을 해야 더 건강해질 수 있을지 비전과 전략을 제시해 줄 것을 경영진에 요청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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