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통 기자들 "경제 보복 예견됐던 일… 진통 오래갈 듯"

전현직 특파원, 전문기자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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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에 반발해왔던 일본이 최근 경제 보복을 하면서 한·일 간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일본 정부가 지난 1일 한국에 반도체 등의 핵심 소재 수출을 제한하고, 전략물자 수출 시 혜택을 주는 ‘백색국가’에서도 제외한다고 공식 발표한 이후 양국은 지난 보름간 퇴로를 닫은 채 정면대결을 벌여왔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5일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결국 일본 경제에 더 큰 피해가 갈 것”이라고 강하게 경고했는데, 다만 외교적 해법 마련을 위한 대화도 함께 촉구해 앞으로의 한·일 관계에 어떤 변화가 올지 주목된다. 전·현직 도쿄특파원, 외교전문기자들은 이번 사안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이들 대부분은 일본 정부가 쉽게 대화 요구를 수용하지 않을 것이며 사안이 장기전으로 흐를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 이후 지난 1월부터 일본이 거듭 ‘외교적 협의’ 요청을 했지만 대응하지 않다 여기까지 왔기 때문이다. 종합일간지 A 도쿄특파원은 “지난해 10월 강제징용 판결이 난 이후 일본은 계속 불만을 가지고 있었고 한국은 대답이 없었다. 우리로선 징용 피해자가 있는 상황에서 쉽사리 답을 내놓긴 어려웠을 것”이라며 “결국 양국 간 충돌은 예고된 것이었다. 일본이 경제 보복 같은 조치를 좀 더 빨리 꺼내들었을 뿐 언젠간 나올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한·일 간 갈등이 고조되는 가운데 현 상황이 장기전으로 흐를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사진은 지난달 28일 문재인 대통령이 일본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 공식환영식에서 의장국인 일본 아베 신조 총리와 악수한 뒤 행사장으로 향하고 있는 모습. /뉴시스

▲한·일 간 갈등이 고조되는 가운데 현 상황이 장기전으로 흐를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사진은 지난달 28일 문재인 대통령이 일본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 공식환영식에서 의장국인 일본 아베 신조 총리와 악수한 뒤 행사장으로 향하고 있는 모습. /뉴시스


실제 일본의 태도를 보면 협의나 양보의 생각은 거의 없어 보인다. 일본은 제3국 중재위원회 설치를 요구한 지 한 달째가 되는 오는 18일 즈음 추가 보복을 예고했다. 우리 정부가 중재위 설치에 불응한다면 국제사법재판소(ICJ) 제소 카드를 꺼낼 가능성이 높다.


유신모 경향신문 외교전문기자는 “지금으로선 정부가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 2012년 첫 강제징용 판결이 나왔을 때부터 일본은 자국 기업의 재산권 피해를 막아달라고 했고 그 문제를 오랜 기간 협의해야 했지만 지난 6년간 어떤 정부도 이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며 “중재위나 ICJ 제소까지 바라보고 있는 지금 상황에선 다시 외교적 협의 단계로 돌아와야 하는 것이 먼저지만 그러려면 한국 정부가 일본에 명분을 만들어줘야 한다. 어렵겠지만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일본 기업 압류자산 현금화를 중단해 외교적으로 해결할 시간을 달라고 설득함으로써 대화 분위기 조성을 시도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다만 지난달 정부가 제안했던, 한·일 기업이 조성한 기금으로 위자료를 지급하는 ‘1+1’안마저 일본이 거부했기 때문에 대화 국면은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유신모 기자는 “정부가 중재위 구성이나 ICJ 회부는 전혀 생각하고 있는 것 같지 않지만 ICJ에 가는 방법도 생각해볼 수 있다. 오히려 시간을 벌 수 있는 장점도 있다”며 “일본에게도 부담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그동안 화해나 외교적 합의의 길이 열릴 수도 있다. 다만 질 경우의 부담 때문에 리더의 결단이 필요하고, 소송 기간 한·일 관계가 파탄날 수 있다는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한다”고 했다.


한편에선 지금의 갈등을 피할 수 없다는 시각도 있다. 현재 동아시아에는 한·일 파트너십이 가능했던 전략적 상황이 이미 사라진지 오래라는 것이다. 직전 도쿄특파원이었던 길윤형 한겨레 기자는 “냉전과 탈냉전의 시대를 지나 중국이 부상하면서 일본은 위기를 느끼고 한미일 삼각동맹을 강화하려 했지만 우리는 상황이 달랐다”며 “북한과 어떤 관계를 설정하고 중국의 부상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에 대해 한·일 간 상당한 견해 차이가 생겼다. 그 와중에 위안부나 강제징용 문제까지 발생했는데, 현 문제를 해결하더라도 동북아의 지정학적 문제 때문에 한·일이 앞으로 친하게 지내긴 힘들 것”이라고 했다.


김청중 세계일보 도쿄특파원도 양국의 갈등을 새로운 관계의 균형점을 찾는 과정으로 봤다. 김청중 특파원은 “국가 간의 관계가 변화하면 새 균형점이 필요하다. 일본과 한국의 국력 격차는 점점 줄어들고 있고 이 때문에 새 균형점이 필요하다”며 “지금은 그 균형점을 찾기 위한 진통으로 봐야 한다. 만약 일본이 바뀐 균형점을 인정하지 않으면 이 진통은 오래 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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