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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고 아래 쪽방

[제345회 이달의 기자상] 이혜미 한국일보 기자 / 기획보도 신문·통신부문

이혜미 한국일보 기자2019.07.08 12:37:04

이혜미 한국일보 기자.

▲이혜미 한국일보 기자.

‘신 계급사회’를 다룬 영화 ‘기생충’이 올해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았습니다. 그 배경에는 극단적인 양극화가 전 세계 보편 현상이라는 공감대가 있었습니다. 영화가 ‘지·옥·고(지하방·옥탑방·고시원)’로 통칭한 주거빈곤 중 ‘지하’에 주목했다면, 현실에는 그에 미치지 못하는 최저 빈곤이 도심에 있습니다. 바로 ‘쪽방’입니다.


기획은 지난해 11월 쪽방에서 만난 한 주민이 “이 골목 쪽방 건물 여러 채가 모두 우리 집주인의 소유이며, 월세를 모아 인근에 빌딩도 세웠다”며 무심코 건넨 말에서 시작됐습니다. 얼핏 봐도 쪽방은 사람에게 세를 놓을 만한 공간이 안 되었습니다. 방문을 달아주지 않아 겨울철에 비닐로 냉기를 막았다는 이야기, 화장실이 없어 인근 공원으로 기어가 용변을 본다는 이야기는 귀를 의심하게 했습니다. 사람에게서 시작한 보도는, 현장에서 건진 증언과 사금을 캐듯 뒤진 문서에서 탄생했습니다. 서울시 내부자료의 전체 쪽방 주소지를 손에 쥐고 등기가 되어 있는 건물의 등기부 등본을 모두 떼봤지만, 글자로만 존재하는 270명 실소유주 이름은 아무 이야기도 들려주지 않았습니다. 5개월간 쪽방촌을 들락거리고, 중간 관리인과 주민, 마을 통장, 쪽방 봉사자 등을 만나며 실소유주의 정보와 가족관계 등 관련한 증언을 데이터로 확인하는 작업을 반복했습니다.


그렇게 드러난 ‘빈곤 비즈니스’의 면면은, 고장 나고 폭주하는 신자유주의 그 자체였습니다. 쪽방 주민들은 법에 명시된 ‘주거권’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지난달 서울 내 전체 쪽방촌에 한국일보 보도를 편집한 인쇄물이 4000부 배포됐습니다. 주민들은 정책 변화를 요구하기 위해 거리로 나섰습니다. 적어도 노숙의 경계에 놓인 이들에게 비인권적 공간을 임대하며 쌓은 부를, 가진 자들이 부끄럽게 여기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준비 기간 내내 응원과 격려를 보태 주셨던 동료 선후배들과 기획을 아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쪽방 주민들이 조금 더 안전한 공간에서 더 나은 미래를 꿈꿀 수 있는 세상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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