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 산불, 지상파는 '늑장 특보'

KBS, 특보 10여분 내보낸후 '오늘밤 김제동' 방영해 구설
MBC "가스충전소 폭발" 오보... SBS, 3사 중 가장 늦게 특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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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9일 재난주관방송사인 KBS를 겨냥해 “이번 산불을 계기로 재난방송 시스템에 대한 전반적인 재검토 필요성이 확인됐다”며 “방송사, 특히 재난주관방송사가 국민 안전을 최우선에 두는 정보 제공자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의 이 같은 발언은 지난 4일 KBS가 강원 산불 발생 당시 특보를 신속하게 편성하지 않아 시청자들로부터 많은 비판을 받은 것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보인다. 재난주관방송사인 KBS는 지상파 3사 중 가장 빠른 시간인 밤 10시53분부터 11시5분까지 10여분간 특보를 내보냈지만 이후엔 ‘오늘밤 김제동’을 20여분간 방송해 시청자들의 공분을 샀다. MBC도 수목드라마 이후인 밤 11시7분에, SBS도 예능 프로그램이 끝나고서인 밤 11시52분에 특보를 시작해 초기 대응이 미흡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일각에선 ‘지역 뉴스는 소극적으로 다룬다’는 인식이 있는 상황에서 지상파 방송사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대응했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상파 방송사의 한 부장급 기자는 “뉴스 부문에서 소외감을 느끼는 지역민들이 많은 상황인데다 요즘 같은 시대엔 재난의 경우 중앙과 지역의 구분이 두드러지지 않는다”며 “실무자 입장에서야 특보를 열었는데 그만한 뉴스거리가 아니었다고 하면 뒷감당이 쉽지 않을 거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내부 비판이 외부 비판에 비해선 강도가 세지 않을 거고, 어느 정도 사안이 심각하다면 우선 특보체제를 가동하는 것이 정답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특보체제로 전환한 이후 보도의 질이 크게 떨어졌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김도연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교수는 “전체적인 방송 보도를 보면 산불 피해 규모와 급박성을 해당 지역 주민들에게 알리는 데 문제가 많았다”며 “주민들에게 도움이 되는 대피정보보다 제보에 의존한 화재 상황 중계에 집중했다. 현장을 직접 연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행정안전부 등에서 발령하는 내용 등을 중심으로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보도의 정확성 및 선정성과 함께 기자들의 안전 문제도 제기됐다. MBC는 특보를 내보내며 제보에만 의존해 속초 가스 충전소가 폭발했다는 오보를 낸 후 정정방송을 했고, 지난 5일에는 MBC와 SBS가 강원 산불 피해 현장에서 저녁 뉴스를 진행해 ‘재난 포르노’라는 비판을 받았다. 화재 현장 바로 옆에서 기자들이 리포트를 진행해 안전 문제가 불거지기도 했다.


홍은희 명지대 디지털미디어학과 교수는 “불이 꺼진 다음에도 붕괴 등의 우려가 있어 취재기자들의 안전이 더 충분히 보장됐어야 한다”며 “다들 안전모를 쓰긴 했지만 기자들이 본능적으로 현장에 근접하려는 욕심이 있는 만큼 정부 당국이나 데스크가 기자들을 대상으로 안전 교육을 철저히 시켜야 한다. 특히 데스크가 기자들 안전이 최우선이라는 인식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언론사 차원에선 언제 발생할지 모를 재난에 재빨리 대응할 수 있게 더욱 철저한 대비책이 필요하다는 조언도 나왔다. 김진두 YTN 과학기상 전문기자는 “화재나 지진, 산불 등을 비롯해 앞으로 우리가 경험해보지 못했을 재난이 더욱 많아질 거고 그 추세는 꺾이지 않을 것”이라며 “제대로 된 재난 보도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단순히 현장 상황이나 주민 연결만이 아니라 재난 상황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앞으로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방법은 무엇인지 등 주민들에게 실체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정보를 전달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 전문가 그룹을 사전에 만들어 재난 발생 시 활용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KBS는 안팎의 비판을 의식한 듯 9일 긴급하게 노사 공정방송위원회를 열고 향후 KBS 방송시스템을 재난방송 중심으로 개선하기로 논의했다.


강아영 기자 sbsm@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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