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1년 한국기자상, 동아일보 편집국 전원 수상한 이유

[한국기자상 50년] 초유의 편집국 수상, 무슨 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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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자협회는 1971년 제5회 한국기자상 취재보도부문 수상자로 ‘동아일보 편집국 기자 일동’을 선정했다. 편집국 소속 기자 전원이 보도부문에서 한국기자상을 받은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유례없는 일이다.


동아일보 기자들은 박정희 민주공화당 후보와 김대중 신민당 후보가 격돌했던 1971년 4월27일 제7대 대통령 선거와 5월25일 제8대 국회의원 선거를 전후로 선거 계몽 캠페인을 벌이는 등 ‘선거 부정 추방과 언론자유 수호에 앞장섰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해 1월1일자 1면에 ‘한 표에의 길·공명선거에의 목마른 외침’을 시작으로 3월31일~4월1일자 ‘이런 선거 운동은 벌 받는다’, 4월30일자 ‘4.27 격류의 상처’ 등 당시로선 대담한 기획 기사를 선보였다.


1971년 3월26일 대학생들의 언론성토대회를 보도한 기자협회보 4월2일자 2면. 아래는 강정문 동아일보 수습기자가 쓴 ‘이제 언론이 답변할 차례’라는 시론이 실렸다.

▲1971년 3월26일 대학생들의 언론성토대회를 보도한 기자협회보 4월2일자 2면. 아래는 강정문 동아일보 수습기자가 쓴 ‘이제 언론이 답변할 차례’라는 시론이 실렸다.


기자들의 언론자유 수호 의지는 신문 지면 밖에서도 드러났다. 1971년 3월26일 서울 광화문 동아일보사 앞에서 서울대 학생들이 연 언론성토대회가 그 기폭제였다. 이날 시위는 1969년 삼선개헌 반대 투쟁의 열기를 제대로 보도하지 않는 등 박정희 정권에 침묵하는 한국 언론을 규탄하는 자리였다.


대학생들은 언론을 향해 “붓을 휘두르는 깡패, 도둑 앞에 꼬리 흔드는 강아지”라고 질타했다. 이들은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신문들도 국민을 소시민화하며 비정치화 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면서 “언론이 사실을 외면한 채 독자대중을 저버리는 편집태도를 지속한다면 불매운동을 비롯한 그 이상의 방법도 불사하겠다”고 경고했다.


언론 대부분은 이날 대학생들의 외침을 보도하지 않았다. 반면 기자협회보는 4월2일자 2면 전면에 언론성토대회 소식을 전하고 ‘이제 언론이 답변할 차례’라는 시론을 실었다. 당시 시위 현장을 찾았던 강정문 동아일보 수습기자의 글이었다.


강 기자는 “그들은 한국 언론에 대해 ‘조국에 반역하고 민족의 부름에 거역한 배신자’라는 죄목으로 화형을 선고했다. 학생들이 ‘언론인 스스로 움츠리고 썩고 있다’고 규탄했을 때는 서글픔과 함께 치욕을 느꼈다”며 “언론의 답변이 있어야 할 차례다. 구체적 반증을 제시함으로써 떳떳하게 이 화형선고에 항소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해본다”고 썼다.


기자협회가 1999년 펴낸 ‘한국기자상 30년’에 따르면 언론성토대회의 전모를 다룬 기자협회보 보도와 강 기자의 시론은 무기력의 늪에 빠진 기자들을 일으켜 세우는 계기로 작용했다.


이에 가장 먼저 움직인 곳은 동아일보였다. 1971년 4월15일 기자 30여명은 언론자유 수호 선언문과 결의문을 채택했다. 이후 전국 14개 언론사에서도 선언이 잇따랐다. 박정희 정권의 폭압적인 언론정책 아래서 동아일보 기자들이 보여준 언론자유 수호 결의는 한국기자상 심사위원단에게도 높은 평가를 받아 편집국 기자 전원이 한국기자상을 수상하는 역사를 남겼다. 


김달아 기자 bliss@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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