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고민 품은 보도, 50년 한국기자상 영광의 370편

[한국기자상 50년] 역대 수상작 살펴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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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자협회는 창립 3년 만인 1967년 뛰어난 보도 활동과 민주언론 창달에 뚜렷한 공적이 있는 기자를 격려하고 포상하기 위해 한국기자상을 제정했다. 국내 언론상 가운데 최고 권위의 상으로 꼽히는 한국기자상이 올해 50년을 맞았다. 사진은 1967년 제1회 한국기자상을 수상하는 기자들(위), 지난해 열린 제49회 한국기자상 시상식 장면.(아래)

▲한국기자협회는 창립 3년 만인 1967년 뛰어난 보도 활동과 민주언론 창달에 뚜렷한 공적이 있는 기자를 격려하고 포상하기 위해 한국기자상을 제정했다. 국내 언론상 가운데 최고 권위의 상으로 꼽히는 한국기자상이 올해 50년을 맞았다. 사진은 1967년 제1회 한국기자상을 수상하는 기자들(위), 지난해 열린 제49회 한국기자상 시상식 장면.(아래)


“언론을 적대시하고 기자를 백안시하는 그릇된 권력의 작용과 사회에 뿌리박은 독소의 틈바구니 속에서…우리가 만들어놓은 것이 한국기자협회 아니었던가. 기자들 스스로 만든 기자협회가 일선 기자를 대상으로 한국기자상 제도를 마련했다는 사실은 자랑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1967년 제1회 한국기자상을 받은 김집 TBC 기자의 수상소감에는 당시 한국 언론이 처한 현실, 기자협회 창립과 한국기자상의 의미가 담겨있다.


보도통제를 자행하던 박정희 정권은 1964년 ‘언론윤리위원회법’ 제정을 추진했다. 언론윤리요강을 만들고 심의회를 운영해 ‘언론의 자율적 규제를 강화한다’는 이유였지만 사실상 언론에 족쇄를 채울 목적이었다.


박정희 정권의 언론탄압에 저항한 기자들은 그해 8월 기자협회를 세우고 언론자유를 외쳤다. 정권의 압박이 날로 거세지는 상황에서도 기자협회는 창립 3년 만인 1967년 ‘뛰어난 보도 활동과 민주언론 창달에 뚜렷한 공적이 있는 기자를 격려하고 포상하기 위해’ 한국기자상 제도를 처음 시행했다.


이때부터 기자협회는 매년 한국기자상을 주관하고 있다. 유신체제가 선포된 1972년과 5·18민주화운동이 발발한 1980년엔 한국기자상 심사가 이뤄지지 않았다. 올해 제50회(2018년 수상작)를 맞은 한국기자상은 오랜 역사만큼 국내 언론상 가운데 최고 권위의 상으로 꼽힌다.


그간 각 부문에서 총 370건이 한국기자상을 받았다. 대상은 1995년(제27회) 신설됐다. 이후 24년 동안 대상 수상작 12편이 나왔다. 대상작이 선정되지 않은 해는 1998년, 2002~2009년, 2011~2012년, 2015년, 2017~2018년 등 모두 14차례에 달했다.


역대 한국기자상 수상작을 살펴보면 1980년대 초반까지는 사건사고나 자연환경을 다룬 보도가 많았다. 이 가운데 ‘이수근 판문점서 탈출’(1회·TBC), ‘불국사 석가탑 파손’(1회·한국일보), ‘김종필씨 탈당 전후의 특종’(3회·동아일보), ‘설악산 등반대 조난사건’(3회·한국일보) 등이 눈에 띄는 보도다.


1980년대 후반부턴 은폐된 진실을 들추는 보도가 잇따랐다.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 대표적이다. 한국기자상 심사위원회는 제19회(1987년) 취재보도부문에 중앙일보의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첫 보도’와 동아일보의 ‘박종철 고문치사 및 은폐 조작 사건’을 함께 선정했다.


이 사건을 보도한 윤상삼 동아일보 기자는 한국기자상 수상 후 취재기를 통해 “서슬 퍼런 독재 권력의 ‘언론 숨통 조이기’ 상황에서 대부분 언론은 경찰 발표에 충실한 보도를 내보내고 있었으나 ‘탁’, ‘억’이라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어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면서 “박군 고문치사 특종은 ‘진실은 반드시 승리한다’는 확신에 찬 ‘용감한 보통사람’과 내부의 ‘양심세력’들이 준 선물이었다”고 밝혔다.


이듬해 제20회에서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재추적’(동아일보)을 비롯해 ‘5·18 상황일지 단독 입수’(경향신문) 등이 한국기자상을 수상했다. 제21회(1989년)에는 ‘광주항쟁의 숨결을 찾아서’(광주일보), 신군부의 언론통폐합 관련 서류를 단독 입수해 보도한 ‘언론건전육성 종합방안’(한국일보) 등 시대의 구조적 고민을 반영한 보도들이 수상작에 올랐다.


1990년부터는 기자협회가 ‘이달의 기자상’ 제도를 도입하면서 이달의 기자상 수상작이 한국기자상 후보작으로 자동 추천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과거 10~30여건이던 출품작이 1991년엔 54편으로 대폭 늘었다.


제27회(1995년) 한국기자상 시상식에선 ‘인천 북구청 세금 횡령 사건’을 추적한 경인일보 사회부 기자들이 첫 대상의 영예를 안았다. 대상은 제28회 ‘시화 담수호 3억톤 폐수 방류’(SBS), 제29회 ‘덩샤오핑 사망’(중앙일보), 제31회 ‘기름 대신 물 주입…어이없는 공군기 추락 원인’(연합뉴스), 제32회 ‘김정일-장쩌민 극비 베이징 회담’(중앙일보), 제33회 ‘이용호 게이트 특종 보도’(한국일보)로 이어지다가 제34회(2002년)부터 제41회(2009년)까지 8년간 수상작을 내지 못 했다.


대상의 오랜 공백을 깬 작품은 제42회(2010년) ‘북 김정일 후계자 삼남 김정은’(연합뉴스)이었다. 해당 기사는 전년도 한국기자상에 출품됐으나 당시 최종 확인이 되지 않았다는 심사위원들의 의견에 따라 다음 해 다시 심사에 올라 대상을 받았다. 이후 2년간 대상작이 없다가 제45회(2013년)에서 한겨레신문이 ‘국정원 대선 여론 조작 및 정치공작 사건 연속 보도’로 대상을 거머쥐었다.  


2014년은 세월호 참사, 비선 실세 국정개입 의혹, 생활고에 시달린 세 모녀가 목숨을 끊는 등 부실한 국가 시스템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한 해였다. 한국기자상 심사위원회는 “세월호 참사 초기에는 우리 언론마저 ‘기레기’라는 오명으로 불릴 정도로 그 시스템의 일부로 취급됐다”면서 “그러나 그 이후 우리 언론들이 새로운 각오를 다지고 현안마다 국민의 편에서 권력에 대한 비판과 견제에 나섰음을 한국기자상 심사 과정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그해(제46회) 대상은 ‘세월호 침몰사고 관련 연속 보도’로 한국 언론의 신뢰를 회복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평가받은 JTBC 특별취재팀에 돌아갔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온 나라가 혼돈에 빠져있던 2016년, 한국기자상 대상(제48회)에 TV조선, JTBC, 한겨레가 이름을 올렸다. 대상 역사상 전례 없는 공동 수상인 데다 언론사 3곳이 같은 사안으로 상을 받은 것도 이례적이었다.


이를 두고 한국기자상 심사위원회는 “한국 언론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서 활발한 탐사보도와 현장 취재를 쏟아내며 뒤틀린 정권의 권력 남용과 부정부패를 고발·비판하면서 한국 언론사에서 다시 한 번 언론인의 자부심을 회복했다는 평가를 받았다”며 “사건의 진상을 밝혀내는 데 큰 공을 세운 세 언론사의 공동 대상 수상을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지난달 발표한 제50회(2018년) 한국기자상은 ‘비리 유치원 명단 공개’(MBC), ‘안태근 성추행 사건 폭로 및 미투 운동’(JTBC), ‘간병살인 154인의 고백’(서울신문), ‘에버랜드 수상한 땅값 급등과 삼성 차명 부동산’(SBS), ‘한국판 홀로코스트 형제복지원 절규의 기록’(부산일보) 등이 수상했다. 시상식은 21일 오전 11시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20층 국제회의장에서 열린다.


김달아 기자 bliss@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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