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진미위 "심의실, 제작 자율성 침해했다"

심의실에 의한 제작자율성 침해 사례 조사보고서 채택

  • 페이스북
  • 트위치

KBS 진실과미래위원회(진미위)가 2010년 심의실의 역할이 커진 이후 제작 자율성 침해 사례가 다수 발생했다며 7일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2010년 8월 당시 김인규 사장이 심의실장에게 ‘방송사고 제재 가이드라인’을 만들라고 지시했는데, 이 지시에 따라 개정된 ‘심의지적평정위원회(심의위)’ 규정에서 제재 수위가 대폭 상향 조정돼 제작 자율성을 침해할 정도의 제재가 다수 발생했다는 것이다.


진미위에 따르면 2010년 9월 규정 개정 이후 2018년 12월까지 개최된 총 185차의 심의위를 전수 조사한 결과, ‘공정성’ ‘객관성’ ‘정치적 중립’ 등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제재를 받은 경우는 모두 8건이었다. 진미위는 “‘공정성’은 단순히 수치적 균형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고도의 저널리즘 적 판단이 필요한 개념”이라며 “하지만 위 사례들에선 대부분 ‘기계적 균형’을 주요 판단근거로 삼아 정부·여당에 불리한 내용이 유리한 내용보다 많으면 이를 ‘공정성’ ‘객관성’ 위반으로 간주해 제재를 가했다”고 밝혔다.


진미위는 그 예로 지난 2014년 5월7일 <KBS 뉴스라인>의 국제뉴스 해설 코너에서 기자가 “세월호 사건 국면에서 검찰의 채동욱 혼외 자식 수사 결과 발표, 혹시 ‘왜 지금’이라는 의문 생기지 않으셨습니까?” “권불십년, 화무십일홍이라고 했던가요? 윤창중씨도 권력의 달콤함에 취해 계셨던 분들이죠”등의 발언을 한 것을 들었다. 방송 이후 심의위가 ‘코너 내용과 관계없는 국내정치 부분을 일방적으로 전달함으로써 불명확한 내용을 사실인 것처럼 방송해 객관성을 위반’했다며 기자에게 ‘경고’를 줬고 3개월 후 이 코너에서 기자가 하차했다는 것이다.


또 2011년 반값등록금을 주제로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전문가가 반값등록금 실현 방법을 설명하면서 부자감세, 4대강 예산 전용 등을 언급했는데 ‘이것이 특정 정당 등 일부 주장이었음에도 MC가 보충질의를 통해 공정성, 균형성을 기하지 않았다’며 심의위가 담당 PD에게 ‘경고’ 제재를 내린 것도 적절하지 않았다고 진미위는 밝혔다. 진미위는 “등록금 인하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당시 여야가 모두 공감을 하고 있었고, 실현 정책에 대해서도 여야의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었다고 보기 힘들었다”며 “선거방송 심의규정의 ‘정치적 중립’ 조항을 적용한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진미위는 심의실이 공식 심의 절차 없이 제작진에게 수정을 강요하거나 방송 후 제재를 한 것도 문제로 지적했다. ‘재판 중인 사건이라 방송이 부적절하다’는 이유로 <추적60분>의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의 전말’편이 한 차례 결방됐다 2013년 9월7일 방송됐는데, 심의실에서 이 편과 관련해 공식 심의평 없이 거듭 수정 요구를 했다는 것이다.

 

진미위는 “심의실에서 수차례 수정 요구가 들어오자 제작진이 공식적으로 심의평을 써달라고 요구했지만 사전심의에 이러한 내용이 기재되지 않았다”며 “이 사건 외에도 심의평에 없는 내용에 대해 심의실이 수정을 요구하는 사례들이 있었다. 심의실은 제작 최종 단계에서 심의규정에 어긋나는 내용에 대한 수정과 방송 보류를 요구할 권한이 있지만, 심의평을 쓰지 않은 상황에서 수정을 요구하는 것은 권한 범위를 넘어서는 실질적인 ‘데스킹’ 행위로, 편성규약 위반 소지도 있다”고 지적했다.


전국언론노조 KBS본부는 지난 2013년 9월2일 여의도 KBS 본관 2층 민주광장에서 ‘추적60분’ 불방 사태 규탄 집회를 열고 경영진의 사과와 책임자 문책, 정상 방송 편성을 촉구했다.(사진=언론노조)

▲전국언론노조 KBS본부는 지난 2013년 9월2일 여의도 KBS 본관 2층 민주광장에서 ‘추적60분’ 불방 사태 규탄 집회를 열고 경영진의 사과와 책임자 문책, 정상 방송 편성을 촉구했다.(사진=언론노조)

심의실이 심의규정을 자의적으로 적용해 제재하고 방송을 보류한 행위도 문제로 지적됐다. 2010년 12월 <추적60분>의 ‘4대강 사업권 회수 논란’편이나 앞서 언급된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편이 방송심의 규정 제2장 11조(‘재판이 계속 중인 사건을 다룰 때에는 재판의 결과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내용을 방송하여서는 아니 되며, 이와 관련된 심층 취재는 공공의 이익을 해치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 위반 소지가 있다는 이유로 결방됐는데, 진미위가 2003년부터 2013년까지 위 규정에 의한 방송금지가처분 사례를 확인한 결과, 재판에 계류 중인 사건이라는 이유로 방송금지가처분이 받아들여진 경우가 없었다. 진미위는 “2012년 <KBS스페셜> ‘어떤 인생-미래저축은행 김찬경’ 편의 경우 당시 법원은 재판에 계류 중인 사건이라고 해서 방송을 해서는 안 된다는 근거가 없고, 방송 여부와 상관없이 재판부는 재판을 공정하게 할 것이라는 이유로 기각한 바 있다”며 “이러한 가처분 결과를 쉽게 확인할 수 있었음에도 당시 심의실과 시사제작국, 경영진은 잘못된 심의결과를 근거로 불방을 시켰고, 법무실 역시 이를 바로잡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진미위는 이밖에 공식 절차를 통하지 않고 방송 불가를 결정하는 심의실의 관행도 문제 삼았다. 심의규정에는 심의실장과 심의위원, 취재·제작 부서장들로 구성되는 심의위가 방송 불가를 결정하도록 하고 있지만 앞서 <추적60분> 4대강 편이나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편은 모두 심의위를 거치지 않고 불방이 결정됐다. 진미위는 “불방의 사유와 책임소재를 명확히 기록하고 공유하기 위해서는 공식기구인 심의위가 이를 결정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하지만 이 기구에서 불방이 최종 결정된다면 취재·제작 과정에서 일어난 분쟁을 편성위원회에서 논의하고 조정하도록 하고 있는 ‘편성규약’과 충돌할 우려가 있다”며 “때문에 향후 심의규정 개정 시 심의위에서 방송 불가 판정을 하고, 이의가 있을 시 편성위에서 최종 결정하도록 하는 조항을 신설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한편 진미위는 지난달 29일 제8차 정기위원회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이 담긴 조사보고서를 채택, 의결했다.

강아영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배너

많이 읽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