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업도 아닌데… 같은 날 언론사 4곳 '케어 안락사' 단독 어떻게 가능했나

제보받은 날짜는 각각 달라... 제보자가 보도시점 통일 요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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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저녁. 한겨레 온라인에 ‘단독’ 기사가 떴다. <동물보호단체 ‘케어’, 구조한 수백마리 개 안락사시켰다>는 기사였다. 비슷한 시각 진실탐사그룹 셜록 홈페이지에는 <“박소연 지시로 개, 고양이 230마리 죽였다”>는 기사가 올라왔다. 20분쯤 뒤에는 뉴스타파가 <동물권 단체 ‘케어’의 두 얼굴, 무분별 안락사>를 공개했다. 그리고 한 시간 여 뒤, SBS ‘8뉴스’는 <개 구조 홍보한 뒤 ‘수백 마리 안락사’>를 ‘단독’으로 보도했다.


언론사도, 기사를 쓴 기자도, 보도 형식도 다 달랐지만 요지는 같았다. 동물보호단체 ‘케어’가 그동안 구조했던 개 수백 마리를 몰래 안락사 시켜왔다는 것이었다. 같은 날 비슷한 시각에 언론사 4곳이 같은 내용을 보도했는데 어디에도 ‘공동취재’나 ‘협업’이란 설명은 없었다. 어찌된 일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이번 보도는 4개 언론사가 ‘각자’ 취재했으며, 공유된 것은 엠바고 시점뿐이었다. 취재 과정에서 언론사 간에는 일체의 소통도 없었다. 각 언론사와 접촉한 제보자 혹은 그 관계자가 보도 시점을 통일해 달라고 요청했고, 언론사가 이를 받아들인 것이다.


취재 내용을 종합해보면 한겨레와 SBS가 관련 제보를 받은 것은 지난 10월쯤이다. 뉴스타파는 ‘목격자들’을 제작하는 독립PD를 통해 11월쯤 관련 내용을 접하고 함께 취재를 시작했다. 해당 PD는 이미 상당 기간 독자적으로 취재를 해온 상태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셜록도 비슷한 시점에 제보를 받고 취재에 들어갔다.


취재가 상당 부분 진행된 뒤에야 기자들은 여러 언론사에서 해당 사안을 취재 중이란 사실을 알았다. 뒤늦게 협업을 하기엔 이미 먼 길을 와 있었고, 애초에 고려 사항도 아니었다. 원종진 SBS 기자는 “조심스럽게 취재해야 했고 매체마다 사정도 달라서 언론사들이 팀을 짜서 달라붙기는 어려운 상황이었다”고 전했다.


원래 해당 기사는 지난 13일 일요일에 나갈 예정이었다. 그러나 박소연 케어 대표가 지난 11일 페이스북을 통해 돌연 안락사 사실을 인정하면서 보도 시점이 앞당겨졌다. 심인보 뉴스타파 기자는 “사실 완벽하게 구조적 문제까지 한 번에 다루려고 했는데 보도 시점이 앞당겨지면서 준비한 꼭지를 다 하지 못한 건 아쉬운 부분”이라며 “후속 보도를 계속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첫 보도 이후 추가 제보와 증언 등이 이어지면서 한겨레와 SBS 역시 후속 보도를 내놓고 있다. 박상규 셜록 대표도 지난 14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시작은 늦어도 가장 오래, 깊이, 끈질기게 보도하는, 그리하여 끝장을 보는 매체가 됐으면 한다”고 각오를 밝혔다.


김고은 기자 nowar@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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