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트키핑 시대의 봄날은 갔다

[언론 다시보기] 권태호 한겨레신문 출판국장

권태호 한겨레신문 출판국장.

▲권태호 한겨레신문 출판국장.

신재민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의 ‘청와대 인사개입’, ‘국채 발행 외압’ 주장은 내용에 앞서 그 형식이 새롭다. ‘미디어의 새 시대’를 예고하는 듯하다. 신 전 사무관이 지난해 12월29일 ‘KT&G 인사에 청와대가 개입했다’고 주장한 곳은 유튜브였다. 다음날, ‘적자국채 발행 압력 의혹’을 공개한 곳은 고려대 학생들의 온라인 공간인 ‘고파스’였다.


며칠 뒤, 김동연 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해명한 곳은 페이스북이었다. 차현진 한국은행 부산본부장이 “바이백(buy-back)과 국가채무 비율은 무관하다”며 실무 경험을 토대로 신 전 사무관 주장의 잘못을 지적한 곳도 페이스북이었다. 이밖에 경제학 교수, 금융 전문가, 일반인 등의 논쟁이 활발했다. 페이스북에서. 기성언론, 이른바 레거시 미디어(legacy media)들은 상황을 쫓고 전달하는 데 급급했다.


1997년 외환위기 상황에 픽션을 가미한 영화 <국가부도의 날>에서 한시현(김혜수) 한국은행 통화정책팀장은 상부 허락없이 기자회견을 열어, “IMF와의 협상이 한국에 일방적으로 불리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폭로했다. 다음날 아침 신문에 단 한 글자도 나오지 않았다. 언론과 관련된 상투적인 클리셰다. 그러나 훗날 2019년을 그리는 영화가 만들어진다면, 한시현 팀장은 지체없이 ‘유튜브 방송’에 나섰을 것이다.


언론은 매체(媒體)‘였다’. 미디어(media)는 라틴어로 ‘중간’을 뜻하는 미디어스(mediaus)에서 유래됐다. ‘기사가 된다, 안 된다’를 언론이 판단했다. 문(게이트)은 하나였다. 그래서 언론은 스스로를 게이트키퍼(Gate keeper)라 불렀다. 기사는 객관을 생명으로 하지만, 게이트키핑은 객관의 외피를 입은 주관의 영역이었다.


그러나 신재민 전 사무관에게서 볼 수 있듯 이제 그 ‘게이트’가 너무 많다. 그래서 지킬 수 없고, 이젠 지키라 하지도 않는다. 그런데 신 전 사무관의 주장이 사실인지, 그리고 사실을 넘어 어떻게 판단해야 하는지, 그리고 신 전 사무관을 ‘공익제보자’로 봐야 하는지, 그리고 ‘순수한 공익제보자’론은 어떻게 볼건지, 그리고 정부 정책 결정과정은 이래도 되는건지, 그리고 기획재정부가 신 전 사무관을 고발한 건 합당한지 등 의문과 혼란은 쌓이는데, 레거시 미디어는 스스로 파놓은 정파성의 늪에서 허우적댄 건 아닌지 스스로 돌아본다. 그 사이, ‘TV 홍카콜라’와 ‘알릴레오’가 그 역할을 자처하고 나섰다.


레거시 미디어가 ‘해답’을 주는 시대는 끝났다. 또 2019년 한국사회에서 ‘정파성 프리 미디어’를 주장하는 게 부질없는 짓일 수 있다. 그러나 사실(fact)을 찾고, 해답(solution)을 탐색하고, 제시하는 일은 여전히 우리 일이다. 게이트키핑보단 확실히, 더 어렵다. 무기는 상식과 합리여야 한다. 그리고 무사는 미디어가 아닌, 기자일 수 있다. 이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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