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앉아서 책보고 썰 푸는 건 나도 하겠다"… 하지만 그것이 '일'이라면

디지털 속에서 멀기만 한 서적… 책 담당 기자에게 책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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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란 무엇인가. 누군가에겐 마음의 양식이다. 또 다른 이에겐 냄비받침이다. 책 담당 기자들에게 책은, 일이다. 평온해 보이는 책무더기 감옥에서 바삐 움직인다. 매주 쌓이는 수백 권의 책 중 우리 언론사가 선택할 책은 무엇인지, 어떻게 더 깊이 있게 다르게 쓸 지 고심이 따라 붙는다. ‘가만히 앉아 책보고 썰 푸는 거 누가 못 하냐’는 시선은 일로서의 책을 모른다.


최원형 한겨레신문 기자는 책지성팀에서 1년 6개월째다. 2006년 입사해 3년가량 같은 일을 한 적이 있다. 현재 책과 출판계 소식을 담당한다. 금요섹션 ‘책과 생각’ 7개 면을 막는 게 그를 포함한 팀원 4명의 일이다. 매주 월요일 오후 5시 회의에서 기사화 할 책을 선정한다. 어린이책을 포함하면 이번 주에만 400~500여권. 화·수·목요일엔 고른 책을 줄곧 읽으며 순차적으로 마감을 한다. 이 사이 출판계 소식을 취재하고 기사를 쓴다. 인터뷰를 할 때도 있다. 회사 칼럼 지면을 막으며 비정기 외부 기고도 한다.


매주 2권 이상을 정독해야 한다. 1년이면 100권을 넘긴다. “책팀에 오기 전엔 책을 안 읽는 사람”이었지만 머리 기사와 허리 기사 하나 정도를 막는 제 몫을 하려면 불가피하다. 한 주 전 도착한 책은 주말에 미리 볼 수라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땐 밤을 새기도 한다. “책을 취재하는” 방식엔 “다 읽는 것” 말고 요령이 없기 때문이다. 너무 두껍거나 내용이 난해해 “책을 장악하지 못 한” 채 기사가 나갔을 때 그는 “책에 패배했다”며 스스로를 힐난하는 페이스북 포스팅을 남긴 적이 있다.


최 기자는 “그럴 때가 많다. 당연히 기분이 안 좋다(웃음)”면서 “타 신문사에서 우리가 놓친 책을 다뤘거나, 생각지 못했던 측면을 발견하면 물을 먹은 거 아니겠나. 같은 책이면 또 곧장 비교가 된다. 책 한 권을 제한된 지면에 소화하는 게 항상 어렵다. 출판사나 저자는 싫어할 수 있지만 기사만 읽고도 어떤 책인지 독자가 알게 하는 걸 목표로 한다”고 말했다.



이 같은 일상은 거의 모든 책 담당 기자들이 공유한 모습이다. 기자 한 명이 한 주당 소화하는 책 수나 업무량, 주말이나 퇴근을 하고도 “책하고 사는” 일상부터 도서 선택의 심사숙고, 빡빡한 일정, 더 좋은 기사를 위한 고민까지, 크게 다르지 않다. “책을 정확하게 봐줬다”는 평에 웃고, “자기만족”이 안 될 때 속상해 하는 모습까지 판박이다. 느린 호흡의 책을 다루지만 사회 현안과 맞닿아 있는 도서를 고르는 것도 공통점이다.


일로서의 책은 그리 안락한 대상이 아니다. 책을 원래 좋아했냐는 질문에 ‘책 기자’들은 “난 장르소설을 좋아하는데 그건 많이 못 다룬다.” “좋아하는 책을 읽을 수 없다. 정책 보고서 보는 거랑 비슷하다.” “취미랑 일은 별개더라.” 같은 답변을 쏟아냈다. 그렇기에 책 지면은 풍요로운 영적 고양의 현현이라기보다 건조한 심신 분쇄의 소산에 가깝다. 무엇보다 ‘깊이’와 ‘다름’에 대한 조바심이 피를 말린다.


조태성 한국일보 문화부 차장은 기사를 쓸 때 “깊이”가 가장 신경쓰인다고 했다. “책면 톱을 쓴다는 건 이번 주 이 책 한 권을 보여준다는 거다. 저자나 편집자, 번역자는 물론 독자가 봐도 ‘왜 이걸 썼지’하고 설득이 안 되면 안 되지 않나. 또 요즘엔 전문가가 워낙 많다. SNS에서 ‘웃기고 있네’, ‘안 보고 썼네’ 얘기도 곧장 온다. 그들만 알 수 있는 문장도 넣고 그러는데 너무 쓸데없는 소리 많이 썼다고 회사서 욕도 먹고 그런다(웃음).”


2년 간 문학을 담당했고 지난해부터 다시 직을 맡은 이영경 경향신문 기자는 “다시 문화부로 오면서 쏟아지는 신간에 매몰되지 말고 큰 흐름이나 기획거리를 보자 생각했다. 주류 문단 내에 파묻히지 않으려고 한다. 새로운 인물을 발굴하고 대중과 눈높이를 맞춰보려는 바람이 있다”고 했다. 그는 또 “문학이라 기사를 쓰면 작가들이 본다. 예전엔 그게 그렇게 부담스러웠다”면서 “마감 시간이 길면 낫지만 급하게 읽고 시간도 쫄리고 그러면 결국 아쉬움이 남게 된다”고 말했다.


책 기사를 쓴다는 건 프린트 매체의 위기를 실감하는 일이기도 하다. 출판되는 책은 늘지만 독서 인구는 줄어든다. 책 기사가 책 판매에 미치는 영향도 미미하다는 목소리가 많다. 출판사는 이제 직접 마케팅에 나서 독자와 교감한다. 출판계에 대한 언론사 영향력이 곤두박질치면서 주요 종합일간지 중 별도 북섹션은 한겨레(광고제외 7면)만 내고 있다. 국민, 경향, 동아, 서울, 조선, 중앙, 한국 등은 주당 2~3개 지면을 간신히 할애할 뿐이다. 특히 조선은 한 때 별도 북섹션을 냈지만 현재 2면을 내고 있고, 중앙은 책을 담당하는 지식팀을 완전히 축소시킨 상태다. 사별 차이는 있지만 문학과 출판 담당 등 최대 2~3명의 기자가 책을 전담하는, 빡빡해진 인력이 책을 대하는 언론의 현주소다.  


이대희 프레시안 기자는 책을 담당하며 이 같은 변화를 몸소 체감한 바 있다. 프레시안은 매체 주요 콘텐츠로 책 서평단까지 운영했지만 수익문제로 축소 끝에 현재는 외부 기고와 비정기적인 기사, 인터뷰 정도만 담고 있다. 이 기자는 총 2년여 간, 마지막까지 책 기자 자리를 지키다 현재는 사회부에서 근무한다. 그는 “책에 대해 세상 관심이 없어서 사라졌다는 게 근본 답변 아니겠나. ‘기자가 모자라 사회부 커버도 안 되는데 유지할 수 있겠냐’는 내부 고민도 있었다”며 “좋은 책을 소개하는 게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는데 당위로만 얘기하긴 출판도, 언론도 너무 어렵다. 쉽지 않은 문제”라고 했다.


시사IN 책 담당 임지영 기자는 “책 관련 코너가 몇 개 있는데 ‘신간소개’ 같은 콘텐츠는 도움이 안 된다고 하더라. 기자 추천 책이나 에세이처럼 개인 체험에서 시작해 의미를 다루는 게 반응이 있는 것 같다. ‘장정일의 독서일기’에 (독자가) 움직인다는 말도 들었다. 깊게 읽어내는 서평에 니즈가 있구나 생각했다”고 전했다.


어느 순간 “책도 안 보는데 책 기사를 볼까”라는 고민이 책 기자들 앞에 성큼 다가왔다. 어쩌면 지금 책 기자들의 고심은 단순히 책을 넘어 신문은 무엇인지, 인쇄매체는 어때야 하는지 언론 전체에 조속한 답을 재촉하는 징후일지 모른다.


조태성 차장은 “신문이 인쇄매체 기반을 지고 가면서도 자꾸 (자기 걸) 내버리고 축소하는 게 맞나”라면서 “리뷰를 그만 쓰란 말도 있지만 인쇄매체에서 리뷰는 중요하다. 더 잘 쓰려는 고민이 계속 필요하다 본다. 이거저거 고민하고 해보고 발전방향을 모색해 봐야 한다”고 했다.


최원형 기자는 “뉴욕타임스에선 북섹션이 독자를 유혹하는 장치다. 디지털 서큘레이션이나 멤버십 확보 계기로 삼는 작업을 한겨레에서 해봤으면 좋겠다”며 “전체 책 보도가 많이 위축됐는데 책 기사를 통한 경쟁이 더 활발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최승영 기자 sychoi@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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