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암병동 특파원입니다'

황승택 채널A 기자, 암 투병기 책으로 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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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을 견뎌내는 방식은 인간을 드러낸다. 황승택<사진> 채널A 기자는 지난 12일 백혈병 확진 당시 심정을 묻는 질문에 “영화 ‘러브스토리’ 여주인공이나 ‘가을동화’ 송혜교가 걸리는 병에 내가 걸렸다. 억울했다”고 말했다. “일주일에 세 번 수영하고 담배도 안 피웠고 술도 많이 안 했”으니 억울하지 않을 리 없다. 하지만 선택할 수 없었던 병마 앞에서 남은 선택지는 고통을 떠안은 채 취할 수 있는 태도뿐이다. 황 기자는 그 순간 자신을 ‘비운의 여주’와 빗댈 수 있는 ‘낙관’을 선택했다. 책 <저는, 암병동 특파원입니다>는 그 태도의 시간이 맺은 열매다.


“성격이 긍정적이란 얘긴 많이 들었어요. 도전을 즐기는 편이었고요. 누구든(제 경우에) 닥치면 선택지는 그거밖에 없지 않을까요? 시험이나 연애라면 재도전 기회가 있지만 이건 아니잖아요.”


태도는 쉬이 무너지게 마련이다. 투병 3년은 그런 시간이었다. 30대 후반이던 2015년 10월 한 달 간 계속된 근육통과 식은땀에 검진을 받았다가 입원하고 이후 2016년 2차, 2018년 3차 재발을 겪는다. ‘억’소리 나는 골수 채취와 사람을 황폐하게 만드는 무균실 입원, 연속된 재발 속에서 태도만으로 마음을 다잡긴 쉽지 않았다.


“무조건 루틴을 만들려고 했어요. 너무 무기력해지면 안 되니까. 무균실은 ‘드래곤볼’에 나오는 ‘정신과 시간의 방’이고 한 세 발 걸으면 끝인 공간인데 뭐든 (일정을) 만들어서 굴렸어요. 아침에 별로 더럽지도 않은 몸을 씻고, 영어 라디오 방송도 듣고, 항암치료로 구역질이 나도 삼시 세끼는 무조건 먹으려 했어요.”
책 역시 어느 순간 황 기자 ‘루틴’ 중 일부가 됐다. 너무 힘들지만 않으면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글을 썼지만 처음부터 책을 낼 작정은 아니었다. 책 출간 계기가 된 페이스북 투병기도 “기자 일을 하던 사람의 사회적 욕구에 대한 갈증을 채우기 위한” 방편 정도였다. “넌지시 생각만 한 일”은 동아일보 정치부에서 함께 근무했던 장강명 작가가 페북 투병기 7~8편을 몰래 긁어 여러 출판사에 문의한 끝에 출판 계약까지 이르며 현실이 됐다. 항암치료를 받으면서도 해외 신약의 늦은 도착에 의약품 통관제도를 파악하고, 입원한 병원에 불이 났다는 말에 취재에 나서는 ‘기자’에게, ‘암병동 특파원’의 역할은 꼭 필요한 일이었을지 모른다. 많은 도움을 받았고 “이 경험이 온전히 내 것이 아니라 생각했기”에 인세 수익금은 전액 기부키로 했다.


이날 분당에서 황 기자를 만나며 조금은 안도했다. 조혈모 세포를 이식받은 지 7개월밖에 안된 터다. 인터뷰 요청에 “회사 결재 후 말씀 드리겠다”는 답변부터, 사전 질문에 답변 정리는 물론 프린트까지 해온 ‘FM 방식’, 또 인터뷰 질문과 답 사이 ‘오디오가 잠시 뜨는 걸’ 못 견디는 모습이 다행이라 여겨졌다. “아빠가 많이 아픈지 몰라줘서 다행인” 6살·3살 두 딸을 챙기고 물리치료를 받으며 휴식과 재활에 매진하는 게 요즘 일상이다. “전보다 5kg쯤 빠졌지만 체력은 평소 70%까지 올라왔고, 정기 검진에서 일부 혈액수치가 정상에 못 미치긴 하지만 나름 순조로운 회복세”라며 그는 내년 6월 복귀 의지를 드러냈다.


2004년 MBN 입사, 2011년 채널A 이직. 이후 신문과 방송을 오가며 정치부, 경제부 등에서 일해 온 황 기자에게 투병은 기자로서의 태도를 다잡는 반환점이 된 측면도 크다. “수술을 하는데 마취액이 퍼져 나가는 동안 의료진이 잡담을 하더라고요. 집중해주면 좋겠는데. 내가 인터뷰 나가서 그랬던 게 아닐까 싶었어요. 간절했을 텐데 ‘이거 뉴스 안 된다’라는 표정이 드러났을 거 같은 거죠…‘발암야구’ 같은 표현도 쓰지 않았으면 당부 드리고 싶고요.”


최승영 기자 sychoi@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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