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is possible… 영상·프로그래밍 기술 공부하는 기자들

기사만 쓰던 시대는 갔다… 제너럴리스트 넘어 멀티플레이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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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두 개의 집을 갖고 있다. 한 집은 불타고 있고, 다른 한 집은 건설 중이다.” 미국 뉴욕시립대 저널리즘대학원 교수인 제프 자비스의 말이다. 그는 전통적인 신문, 방송이 불타고 있는 집 위에 자리잡고 있다고 표현했다. 언젠가 무너질 집이지만 여전히 돈이 되는 모델이기에 생존을 위해 머무르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한편 다른 한 집은 청사진도 없이 지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뉴미디어를 의미하는 이 집에서 언론사와 기자들은 어떻게 생존해 나갈지 아직도 명확한 계획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기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최근 일부 언론사에선 불타고 있는 집에 마냥 앉아 있을 수만은 없다며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기자들이 생기고 있다. 이들은 독자들과 다른 언어로 소통하고 변화하는 미디어 환경에 대응하겠다며 영상, 프로그래밍을 배우고 있다. 디지털 기업의 구성원이 아닌 신문, 방송사 기자로 존재해선 살아남을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독자들과 다른 언어로 소통하고 변화하는 미디어 환경에 대응하겠다며 영상, 프로그래밍을 배우는 기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사진은 ‘서울경제썸’ 채널에 올릴 영상을 촬영하고 있는 연유진, 박동휘 기자.

▲독자들과 다른 언어로 소통하고 변화하는 미디어 환경에 대응하겠다며 영상, 프로그래밍을 배우는 기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사진은 ‘서울경제썸’ 채널에 올릴 영상을 촬영하고 있는 연유진, 박동휘 기자.


연유진·박동휘 서울경제 기자가 영상을 시작한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2010년 각각 펜기자와 편집기자로 언론 생활을 시작한 두 기자는 신문이 위기인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까” 고민하다 “새로운 분야에 도전해보고 싶어” 올해부터 디지털미디어부에서 영상 제작을 시작하게 됐다.


두 기자는 선·후배의 도움도 받았지만 독학으로 영상 기술을 배워나갔다. 이를 바탕으로 단순히 기획뿐만 아니라 촬영, 편집, 유통, 결과 분석까지 전체 단계에 참여했다. 연유진 기자는 “대표적인 영상 편집 프로그램에 프리미어프로와 파이널컷이 있는데 관련 책을 보거나 유튜브 강좌를 들으면서 공부했다”며 “촬영기술도 시행착오를 거치며 배웠다. 그동안 활자만 봤던 터라 다양한 영상을 보며 어떤 문법으로 영상이 구성되는지 학습했다”고 말했다.


두 기자는 현재 ‘서울경제썸’ 유튜브 페이지에 대략 한 주에 한 개씩 영상 콘텐츠를 올리고 있다. ‘한 땀 한 땀 만드는 콘텐츠 공방’이란 페이지 수식어처럼 디지털 이미지를 하나하나 오려 영상으로 만들거나, 직접 만들고 색칠하며 복잡하고 어려운 뉴스를 이야기로 쉽게 풀어주려 노력하고 있다.


박동휘 기자는 “예전엔 신문을 내면 끝이었다. 잘하고 못하고를 내부에서 가를 수밖에 없었는데 영상은 실시간으로 반응을 알 수 있으니 독자와 확실히 소통이 되더라”며 “기술은 장벽이 될 수 없다. 젊은 기자들일수록 빨리 경험해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연유진 기자도 “아예 모르는 것과 조금이라도 아는 것의 차이는 크다”며 “영상을 접하면서 디지털 콘텐츠를 바라보는 시각이 확실히 달라졌다”고 했다.


독자들과 다른 언어로 소통하고 변화하는 미디어 환경에 대응하겠다며 영상, 프로그래밍을 배우는 기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사진은 데이터 분석을 하고 있는 권오성 한겨레 기자.

▲독자들과 다른 언어로 소통하고 변화하는 미디어 환경에 대응하겠다며 영상, 프로그래밍을 배우는 기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사진은 데이터 분석을 하고 있는 권오성 한겨레 기자.


프로그래밍을 배우는 기자들도 부쩍 늘어나고 있다. 지난달 한겨레가 보도한 에스더기도운동의 가짜뉴스 관련 보도에서 개신교 가짜뉴스 3단 연결망을 분석한 이는 변지민 한겨레21 기자였다. 변 기자는 “지난해 미디어 해커톤에 나가면서 프로그래밍에 관심을 갖게 됐다. 이후 생활코딩 온라인 강좌를 6개월간 들으며 독학했는데 재미가 있어 밤새 매달리며 공부했다”며 “요즘 배웠던 걸 연결망 분석으로 활용하고 있다. 특히 탐사보도에선 다양한 시각에서 깊이 봐야 하기 때문에 네트워크나 데이터 분석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권오성 한겨레 기자는 최근 ‘데이터베이스 기자’라는 직책을 새로 달았다. 해외에선 ‘컴퓨테이셔널 기자’나 ‘데이터베이스 기자’가 있지만 국내에선 처음이다. 권 기자는 “한때 유행처럼 지나갔던 데이터 저널리즘과 구분 짓기 위해 이런 직함을 만들어 달라고 했다”며 “국내에선 그동안 기자가 기사, 즉 스토리텔링을 담당하고 데이터는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역할만 했는데 갈수록 많은 것들이 데이터로 표현되고 저장되고 있다. 지금 시대엔 데이터베이스를 자체적으로 구축해 거기서 보이는 모든 것들을 기사화하는 작업, 데이터가 스토리의 조연이 아니라 주연이 되는 콘텐츠를 생산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6월부터 올해 6월까지 1년간 자비로 미국 시라큐스대에서 ‘컴퓨테이셔널 저널리즘’ 석사 과정을 공부했다. 저널리즘 활동 전반에 컴퓨터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가르치는 과정이었다. 권 기자는 “1년의 시간은 기술을 제대로 갖추기엔 짧은 시간이었지만 어떤 경로로 가는 것이 맞는지는 잘 알 수 있는 시간이었다”며 “게다가 국내도 그렇고 해외에서도 제2의 혁명이랄 정도로 오픈소스 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나 여러 코드가 공개돼 있다.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잘 활용해 써먹을 수 있는 좋은 시기”라고 말했다.


현재 한겨레에선 그를 포함해 12명으로 학습조직이 구성돼 분기별로 프로그래밍을 공부하고 있다. 권 기자는 “알파고 이후 4차 산업혁명이 오면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걸 다들 느끼는 것 같다. 나이에 상관없이 관심 있는 분들이 많고 예전과 확실히 분위기가 다르다”며 “영어를 모르는 사람과 어느 정도 아는 사람의 관점이 다른 것처럼 프로그램 언어나 데이터 분석도 마찬가지다. 기자는 정보를 다루는 사람이기에 빅데이터 시대에 관심을 가지는 게 맞다”고 말했다.


독자들과 다른 언어로 소통하고 변화하는 미디어 환경에 대응하겠다며 영상, 프로그래밍을 배우는 기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사진은 데이터 분석을 하고 있는 이경희 중앙일보 기자

▲독자들과 다른 언어로 소통하고 변화하는 미디어 환경에 대응하겠다며 영상, 프로그래밍을 배우는 기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사진은 데이터 분석을 하고 있는 이경희 중앙일보 기자


중앙일보에서도 올해 두 차례에 걸쳐 데이터 분석 스터디가 열렸다. 디지털콘텐트랩에 속해 있는 이경희 중앙일보 기자도 여기에 참여했다. 이경희 기자는 “스터디를 비롯해 10개월 동안 우리 팀 내 데이터 분석가 분의 개인 교습도 듣고 독학도 하며 데이터 분석과 시각화를 배웠다”며 “디지털에 관심이 있어 콘텐트랩에 오긴 했는데 데이터 분석엔 심리적 장벽이 있었다. 그런데 고위공직자 재산 공개할 때 데이터 분석하는 걸 지켜보자니 너무 답답하더라. 어떻게 데이터를 뽑아서 하는 건지, 신뢰할 만한 수치인지 팩트체킹이 안 되니 무력감까지 들어 직접 배우게 됐다”고 말했다.


2000년에 입사한 그가 느끼기에 데이터 분석은 기자들에게 필수적이다. 이 기자는 “요즘 대학생들이 다 파이썬이나 R을 배운다고 하는데 그런 친구들이 언론사에도 쏟아져 들어올 게 아닌가. 후배들이 데이터를 분석해왔을 때 검증능력이 있는 데스크가 될 수 있을 정도가 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이어 “사람들이 언론을 불신하는 상황, 통계마저 오염된 상황에서 언론이 빅데이터를 분석해 보여준다면 좀 더 신뢰도가 올라갈 거라 본다”며 “모두가 공부할 필요는 없지만 이제 데이터를 분석하는 건 기자들에게 기초 소양이 된 듯하다. 이를 바탕으로 계속 새로운 방식의 콘텐츠를 실험할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강아영 기자 sbsm@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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