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진호 영상' 특종 욕심 버린 셜록, 그를 거절한 기성언론

[독립언론 셜록·뉴스타파의 힘] <상>양진호 보도가 언론에 던진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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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진호 사건’의 공익신고자 A씨가 지난 13일 오후 서울 중구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 뉴스타파에서 열린 뉴스타파-셜록-프레시안 공동 주최 기자간담회에서 제보 내용과 관련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양진호 사건’의 공익신고자 A씨가 지난 13일 오후 서울 중구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 뉴스타파에서 열린 뉴스타파-셜록-프레시안 공동 주최 기자간담회에서 제보 내용과 관련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30일 포털사이트 급상승 검색어에 낯선 이름이 등장했다. ‘양진호’. 국내 웹하드업계 1·2위인 위디스크와 파일노리의 실소유주다.


양진호 회장은 일반인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다. 진실탐사그룹 ‘셜록’과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 ‘뉴스타파’가 양 회장이 전직 직원을 무차별 폭행하는 영상을 공개하지 않았다면 양진호도, 디지털 성범죄 카르텔도 끝내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았을 것이다.


셜록과 뉴스타파는 양 회장의 폭행 영상에 이어 엽기적인 갑질, 성범죄 동영상으로 연간 수백억원대 매출을 냈다는 관련자 증언, 직원 휴대전화 불법 도청, 대마초 흡연과 강요, 차명회사 설립으로 수십억원대 비자금 조성 사실 등을 폭로했다.


여파는 상당했다. 인용보도가 쏟아졌고, 다른 매체들이 취재에 나서면서 추가 정황도 드러났다. 디지털 성범죄 카르텔의 진상을 밝혀야 한다는 여론도 커졌다. 결국 양 회장은 지난 9일 폭행과 강요, 마약류관리법 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됐다.


두 독립언론이 협업 취재한 <몰카 제국의 황제, 양진호> 보도는 셜록의 박상규 대표 기자가 2년 전 받은 제보에서 출발했다. 박 기자는 보도에 앞서 이 ‘특종’을 다른 매체에 가져갔다. 셜록이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판단해서다. 박 기자는 “내 특종 욕심 때문에 사건 해결이 안 될까봐, 어렵게 용기 내준 제보자들과 피해자가 양 회장에게 보복 당할까봐 두려웠다”고 회상했다.


박 기자는 규모와 영향력이 큰 방송사 여러 곳에 접촉했다. 취재만 해준다면 모든 자료와 취재원을 넘겨줄 생각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들은 박 기자의 제안을 거절했다. ‘삼성 같은 대기업도 아니고 중소기업에서 벌어진 일을 보도할 필요 있나.’ 박 기자가 전한 당시 반응이다. 대형 방송사의 퇴짜를 받은 박 기자는 한상진 뉴스타파 기자를 찾아갔다. 그날로 ‘양진호 취재팀’이 꾸려졌다. 한 기자는 “처음 폭행 영상을 보고 너무 놀랐다. 화도 나더라”며 “평소 웹하드를 이용하지 않아 두 업체를 몰랐고 양진호도 처음 듣는 이름이었지만, 단 1초도 고민하지 않고 바로 취재에 나섰다”고 설명했다.


셜록과 뉴스타파 취재팀은 양 회장의 갑질과 범죄 정황을 낱낱이 파헤쳤다. 폭행 영상 속 피해자를 수소문하고, 그를 설득해 구체적인 증언을 얻었다. 또 다른 폭행 피해자 대학교수 A씨 사건의 경우 양 회장의 범죄사실을 입증할 수 있는 목격자를 찾아내기도 했다. 한 기자는 “양 회장이 구속되면서 저희가 판을 이끌던 시점은 지난 것 같다. 이제 이 사건을 끝까지 지켜보는 게 중요한 문제”라며 “다른 언론들도 불꽃놀이 하듯 짧게만 주목하지 말고 계속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독립언론들이 힘을 합쳐 내놓은 이번 보도는 기성언론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탐사보도의 파급력을 여실히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고제규 시사인 편집국장은 “두 매체는 단독 욕심을 버리고 팩트를 위해 협업했다. 팩트의 힘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중장기적인 탐사보도가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정확히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이어 고 국장은 “기성언론은 제대로 된 탐사보도를 하려면 거대 권력과 싸워야 한다는 패러다임에 갇혀있는 것 같다”며 “삼성보다 성범죄 동영상 유포가 일상에 더 와 닿는 문제다. 취재 제안을 거절한 방송사는 후회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2014년 오마이뉴스를 퇴사한 박 기자는 기성언론이 ‘서울, 사대문 안, 엘리트’를 주요하게 다루면서 획일적인 보도를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 기자는 “기자들은 세상에 필요한 기사가 아니라 회사에 필요한 기사, 면을 채우기 위한 기사를 생산하고 있는 것 같다”며 “밖에 나와 보니 정말 언론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은 여기 있다. 품을 팔고 시간을 들여야만 보이는 진실들이 많다”고 강조했다. 


김달아 기자 bliss@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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