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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의 딜레마

[글로벌 리포트 | 중국] 예영준 중앙일보 베이징 총국장

예영준 중앙일보 베이징 총국장2018.11.07 16:01:03

예영준 중앙일보 베이징 총국장.

▲예영준 중앙일보 베이징 총국장.

미·중 무역전쟁 속에 치러지는 미국 중간선거를 보면서 2년 전 대통령 선거에 대한 중국의 반응을 다시 떠올렸다. 신문 방송이나 공개 석상에서 드러내놓고 얘기하지는 않았지만 많은 중국인들은 도널드 트럼프 후보를 응원했다. 만약 힐러리 클린턴이 당선되면 아시아 재균형 정책을 강화하며 실질적인 중국 봉쇄 전략을 펼칠 것이란 우려가 있었다. 대신 비즈니스맨 출신인 트럼프와는 서로 이익을 주고받는 거래를 통해 대립을 회피할 수 있다고 본 것이며 본격적인 대중 억제 정책은 쓰지 않으리라고 예상했다. 선거 당일 만난 베이징대 자칭궈(賈慶國)교수가 “그런 관측은 근거가 없다”며 중국 사회 전반의 낙관론에 우려를 표시한 게 기억에 새롭다.  


트럼프가 되면 미·중 관계는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봤던 중국에게 지난 4일 펜스 미국 부통령의 연설은 충격이었다. 펜스는 40분간의 연설에서 중국의 행태를 조목조목 비판하면서 거친 감정이 표출되는 것도 숨기지 않았다. 그의 연설은 “중국의 도전을 더 이상 용인하지 않겠다. 무역 전쟁 뿐 아니라 모든 수단을 동원해 중국의 부상을 막겠다”는 선언으로 읽힌다. 1972년 닉슨 방중 이래의 관여(engagement)정책에서 방향을 튼 ‘신냉전’ 선전포고란 해석까지 나온다.   


만약 2년 전 대선에서 힐러리가 되었더라면 상황은 달라졌을까. 그렇진 않을 것이다. 방법이나 형식은 다를지 모르지만 더 강한 압박과 봉쇄 정책이 펼쳐졌을 수도 있다. 펜스의 연설에 담긴 것은 당파를 넘어선 미국 조야의 공통된 정서이기 때문이다. 중간선거 결과가 어떤 쪽으로 나오더라도 무역전쟁을 위시한 미·중 대결 양상은 바뀌지 않으리라는 관측이 주류인 이유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트럼프 대통령과의 전화 통화를 하면서 출구를 모색하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시 주석은 그 뒤 상하이 박람회 연설에서 “향후 15년간 40조 달러(약 4경5000조원) 규모의 상품·서비스를 수입하겠다”고 밝혔다. 이달 말 APEC에서 트럼프를 만나면 더 구체적으로  미국으로부터 수입을 늘려 미국의 대중 무역 적자폭을 줄이는 방안을 내놓을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이것으로 미·중 대립이 해소되리라고 보기는 어렵다. 애초부터 트럼프가 무역 전쟁의 방아쇠를 당긴 것이 무역수지 개선이란 눈앞의 과녁만을 겨냥한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무역 전쟁의 본질은 경제·무역 갈등이 아니라 패권 경쟁의 일환이자 미국에 도전하는 중국을 억누르기 위한 전략이란 게 점점 더 분명해지고 있다. 실은 펜스 부통령의 연설에 앞서 이미 예고편이 있었다. 지난해 12월에 발표된 미국의 국가안전보장전략 보고서(NSS2017)가 바로 그것이다. NSS2017은 중국을 ‘힘에 의지해 현상변경을 추구하는 세력’으로 규정한 뒤 “우리는 새로운 대립의 시대에 들어갔다. 우리는 중국에 대항하고 중국과의 게임에서 승리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무역전쟁은 이 보고서 안에 구체적인 방책으로 제시돼 있다.


미국의 속셈을 중국이 모를 리 없다. 8월10일자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 5면에는 “미국이 무역 전쟁을 도발한 실제 이유는 무엇인가”란 칼럼이 실렸다. 런핑(任平)이란 필명으로 게재된 이 칼럼은 “냉전 시기 미국은 미국이 가진 물질적 역량 전부를 동원해 소련을 전방위로 압박했으며 이것이 소련 해체의 중요한 외적 요인이 됐다”고 썼다. 미국이 과거 전방위적 압박으로 소련을 무너뜨린 전략 그대로 중국을 향해 ‘신(新) 냉전’을 발동하고 있다는 논리다.  


공개적으로 발표되는 당과 정부의 입장 표명이나 지도자의 발언은 결연함으로 가득차 있다. “이기면 고기를 먹고, 지면 풀뿌리만 먹고, 항복하면 오물을 먹는다”는 글까지 회자되면서 항전 의지를 다지는 분위기다. 약세를 보일 수 없는 것은 공산당의 권위와도 관계된다.


하지만 중국의 내심은 곤혹스럽다. 아직 미국과 정면대결하기에는 힘이 부족함을 스스로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세계 최강대국이 되는 목표를 건국 100주년이 되는 2049년에 맞추고 있다. 아직 힘을 더 비축할 시기에 이 싸움이 시작되고 만 것이다.  


싸움을 원치 않으면서도 대내적으로는 ‘결사항전’을 외쳐야 하는 딜레마, 이것이 신냉전의 선전포고장을 받은 시진핑의 고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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