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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화 비극 ‘간병살인’ 수면 위로 끌어낸 보도

‘간병살인 154인의 고백’ 이달의기자상, 서울신문 탐사기획부 인터뷰

김고은 기자2018.10.31 11:41:02

서울신문 탐사기획부의 5인방. 사진 왼쪽부터 이성원·이혜리 기자, 유영규 부장, 신융아·임주형 기자. /서울신문 제공

▲서울신문 탐사기획부의 5인방. 사진 왼쪽부터 이성원·이혜리 기자, 유영규 부장, 신융아·임주형 기자. /서울신문 제공


병든 가족을 돌보다 병이 들어버린 사람들. ‘독박 간병’에 지쳐 환자를 살해하고 범죄자가 되거나 자신의 목숨까지 끊어버리는 비극적 사연들. 가족 간병을 둘러싼 이 비극은 ‘간병살인’으로 불리며 고령화 사회의 그늘을 짙게 드리우고 있다. 이미 초고령사회에 들어선 일본에선 간병살인이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고, 빠르게 고령화가 진행 중인 우리나라에서도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문제가 됐다. 하지만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동시에 해법 찾기에 나선 일본과 달리 우리는 간병살인에 대한 정확한 실태 파악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현실부터 직시해야 한다. 그렇다면 그 일이 고되고 때로 고통이 따르더라도, 누군가는 해야만 한다.


서울신문 탐사기획부가 몇 주에 걸친 질문과 탐색 끝에 간병살인이라는 키워드를 만났을 때 만장일치로 동의를 했던 건 그런 공감대 때문이었다. 지난 9월3일부터 8회에 걸쳐 연재된 ‘간병살인 154인의 고백’은 바로 그 결과물이다. 간병살인을 공적 담론의 장으로 끌어낸 최초의 기록이자 기획인 이 보도는 한국기자협회가 주관하는 기자상 심사위원회로부터 ‘역대급’ 찬사를 받으며 9월 이달의 기자상을 수상했다.



서울신문 탐사기획부는 우선 간병살인의 현주소를 파악하기 위해 대법원 판결문 열람 시스템을 이용, 2006년 이후 선고가 난 간병살인 사건 판결문을 모두 확보했다. 그렇게 10여 년간 동반자살(살해 후 자살) 포함 간병살인 발생 173건, 희생자 213명, 가해자 154명이란 통계가 집계됐다. 범행에 이르는데 걸린 평균 간병기간은 6년5개월이었고, 10명 중 6명이 혼자 환자를 돌보는 독박 간병이었다. 범행을 결심한 배경은 ‘장기간 간병에 따른 낙담’이 38%나 됐다.


그러나 판결문이 모든 것을 말해주는 것은 아니었다. ‘진짜’ 이야기가 필요했다. 그러려면 당사자인 가해자를 만나야 했다. 이성원, 신융아 기자는 매일같이 법원행정처를 찾아가 판결문 원본을 열람하고 거기에 적힌 피고인의 주소를 외우는 방법을 택했다. “개인정보를 적어서 나올 경우 평생 이용 불가 등의 페널티가 있거든요. 처음엔 스마트워치에 적으려고 하다가 걸렸어요. 첫 번째라고 눈감아줬지만요. 그 뒤로는 외울 수밖에 없었죠. 사실 그것도 안 되지만 어쩔 수 없었어요. 만나야만 했으니까요.”(이성원 기자)


그렇게 기껏 주소를 외워서 찾아갔는데 이사 가고 없는 경우도 많았다. 팀의 막내인 이혜리 기자는 주위 부동산을 10개씩 돌며 이사한 주소를 알아내느라 진땀을 뺐다. 어렵게 집을 찾아내도 선뜻 인터뷰를 요청하긴 쉽지 않았다. 이들은 살인자인 동시에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피해자였다. “아무리 우리가 사회 개선과 변화를 위한 기획을 한다고 해도 그들에게는 상처일 수밖에 없는 사안이라서, 벨을 누르고 대면하는 순간까지 고민이 됐어요. 하지만 막상 만나면 반응이 예상과는 달랐어요. 그 분들에게도 뭔가 말하고 싶은 게 있었던 거죠.”(신융아 기자)


희생자나 고인이 된 가해자의 이야기는 심리부검을 통해 들여다보고, 오랜 간병으로 지금도 고통 받고 있는 가족 간병인들의 심리 상태도 입체적으로 조명했다. 신 기자는 가족 간병인들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6주 동안 토요일을 반납하고 치유 프로그램에 참가했다.


“기사가 나간 뒤 13년째 장애 아들을 돌보고 있다는 한 독자의 메일을 받았어요. 지치고 힘들 땐 어떻게 해버리고 싶은데 미친 사람으로 볼까봐 주변에 말도 못 한다고, 이런 기사를 통해 자신의 마음 상태를 전달해줘서 고맙다고요. 하소연이라도 하고 싶었던 거예요.”(임주형 기자)


간병살인을 동정하거나 이해하자는 게 아니다. 아픈 곳을 정확히 알아야만 치료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임 기자는 “아픈 얘기를 억지로 끄집어낸 건 분명한 목표의식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미투’ 비슷하게 힘든 상황을 증언해준 덕분에 사회적 해법을 모색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라고 말했다.


다행히 정부와 정치권에서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기사가 나간 뒤 청와대에서 열린 ‘발달장애인 평생케어 종합대책 발표 및 초청간담회’에 유영규 부장이 초대받았고, 윤일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국정감사에서 보건복지부에 간병살인 관련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유영규 부장은 “판결문을 분석하니 간병 시간이 8시간을 넘어가면 범죄 충동이 급격히 올라가는 패턴이 보였다”며 “간병을 하는 사람들도 환자처럼 쉴 수 있는 권리가 보장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자상 수상 등의 기쁨을 누릴 새도 없이, 부원들은 또 다른 탐사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간병살인 취재 내용을 엮은 책 출간도 준비 중이다. 이들은 지난 5월 팀이 꾸려지고 3개월이 넘도록 단 한 번도 기사를 재촉하지 않았던 박찬구 편집국장에게 특별히 고마움을 표하며 “우리는 특혜 받은 부서”라고 한 목소리를 냈다. 입사 2년차에 탐사팀을 자원했던 이혜리 기자는 “이 팀에 온 게 기자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행운이었다”며 “진심”임을 거듭 강조했다. 신융아 기자도 “인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2~3개월에 한 번 기사를 내는 부서의 존재가 불편할 수도 있는데 믿고 기다려줘서 너무 감사하다”며 “기자생활 7년차인데 수습처럼 배우고 얻은 것이 너무 많다. 다른 기자들도 한 번씩 경험해보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김고은 기자 nowar@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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