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생 외면하다 부메랑 맞는 삼성과 현대차

[스페셜리스트 | 경제] 곽정수 한겨레 경제선임기자·경제학박사

삼성전자의 3분기 영업이익이 17조를 넘어 사상 최대실적을 경신했다. 반도체는 그 75%를 차지해 톡톡히 ‘효자’ 역할을 했다. 하지만 삼성전자에 장비·부품을 공급하는 협력사의 표정은 밝지 않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상반기 평균 영업이익률은 40%에 육박한다. 하지만 반도체 장비업체는 13.5%로 3분의 1 수준이다. ‘그들만의 호황’인 셈이다.


한 투자회사 대표는 최근 중국기업의 초청으로 베이징을 다녀왔다. 중국은 기술력이 높은 한국 반도체 장비·부품업체 인수에 큰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중국은 반도체 굴기를 선언하며 대규모 투자에 나섰지만, 미국과의 ‘경제전쟁’으로 비상이 걸렸다. 미국 등 선진국이 반도체 핵심장비 공급을 장악하고 있어 차질이 예상된다. 한국 기업의 인수나 제휴는 이에 대한 비상대책인 셈이다.


기술력을 인정받는 국내 반도체 장비업체가 얼마 전 중국으로부터 인수제안을 받았다. 제시된 가격이 당시 시가총액의 3배를 넘는 파격적 조건이었다. 중소기업 대표는 1조원을 쥘 수 있는 기회였지만, 거절했다. 세계적 강소기업으로 키우기 위해 십수년간 수천억원을 기술개발에 쏟아 부은 ‘고집’의 연장선이었다.


하지만 주변에선 어차피 삼성 밑에서는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하는 게 어려운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는 우려가 많았다. 사모펀드회사 대표는 “삼성이 글로벌 IT업체로 성장해 수십조의 이익을 내지만, 협력사가 세계적 기업으로 동반성장한 사례가 있는지 의문”이라면서 “기술력 있는 협력사가 팔려 가면 삼성도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상생은 뒷전인 채 자기 이익만 챙겨온 국내 대기업이 ‘부메랑’을 맞는 것은 이미 자동차산업에서 현실화하고 있다. 최근 현대기아차의 협력사들이 잇따라 워크아웃, 법정관리를 신청하며 무너지고 있다. 부품업체가 붕괴하면 완성차업체도 무사할 수 없다. 현대기아차의 성장 둔화와 영세 부품업체의 난립이 원인으로 꼽힌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예고된 재앙’이라고 강조한다. 국책연구소 박사는 “위기의 핵심에는 납품가 후려치기, 하나의 대기업하고만 거래하도록 강요하는 전속거래제와 같은 불공정 하도급거래가 놓여있다”면서 “중소 부품업체들은 이 때문에 저임금·저생산성의 늪에 빠졌다”고 진단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달 초 2022년까지 미래차, 반도체, 에너지신산업 등 5대 분야에서 대기업과 손잡고 125조원을 투자해 10만7000여개의 일자리를 만드는 계획을 발표했다. 일자리의 중요성을 부인하는 국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대기업을 앞세운 투자·고용 확대정책은 실패로 끝난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와 닮은꼴이다. 이런 논란은 제쳐 두더라도 상생의 생태계를 만들지 않으면 대통령이 공약한 중소기업 살리기와 한국경제의 체질개선은 ‘공염불’에 그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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