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역기간 총합 384년… 비전향 장기수 19인 일생을 렌즈에 담다

정지윤 경향신문 기자 '비전향 장기수 19인의 초상' 사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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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녘 고향으로 돌아가길 희망하는 비전향 장기수 19인의 초상을 담은 사진전 ‘귀향’을 연 정지윤(가운데) 경향신문 기자. 전시회는 14일까지 서울 종로구 류가헌 갤러리에서 열린다.

▲북녘 고향으로 돌아가길 희망하는 비전향 장기수 19인의 초상을 담은 사진전 ‘귀향’을 연 정지윤(가운데) 경향신문 기자. 전시회는 14일까지 서울 종로구 류가헌 갤러리에서 열린다.


비전향 장기수. 우리 사회에서 잊힌 이름이다. 남파공작원, 인민군 포로 등으로 체포됐던 이들은 모진 고문과 수십 년의 수감생활을 견디며 정치적 신념을 지켰다. 그러나 ‘전향하지 않은’ 대가는 컸다. 복역을 마치고도 빨갱이라는 낙인 탓에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웠다. 감옥에서 얻은 지병들로 온몸이 망가졌다. 사회의 무관심 속에 궁핍한 삶을 사는 이들은 여전히 내 고향, 북으로 돌아갈 날을 기다리고 있다.


정지윤 경향신문 사진기자는 북송을 요구하는 비전향 장기수 19인의 얼굴을 사진에 담았다. 평균 나이 87세, 복역기간을 모두 합하면 384년에 이른다. 비전향 장기수들을 찾아 전국을 다닌 정 기자는 이들의 초상과 일생을 사진과 글로 기록했다. 이 작업을 바탕으로 지난 2일부터 오는 14일까지 <비전향 장기수 19인의 초상-귀향(歸向)> 사진전을 열고 있다. 이들이 ‘가고자 하는 방향(사상적 고향)’으로 갈 수 있도록 ‘시골 향(鄕)’ 대신 ‘향할 향(向)’을 썼다.


전시회가 한창이던 지난 7일 서울 종로구 류가헌 갤러리에서 정 기자를 만났다. 비전향 장기수 19인의 초상이 나란히 벽면을 채우고 있었다. “선생님들의 눈빛 정말 초롱초롱하지 않나요? 사진 찍을 때도 느꼈지만 이렇게 걸어두니 더 와 닿습니다. 이룬 것 하나 없는 이 사회에서 지금껏 버텨온 힘은 마지막까지 바꿀 수 없었던 신념 아니었을까요.”


정 기자가 비전향 장기수 사진 작업에 나선 계기는 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윤구병 보리출판사 대표가 그에게 책 한 권을 선물했다. 비전향 장기수 고 허영철 선생의 일생을 다룬 <어느 혁명가의 삶>이었다. 책에 큰 인상을 받은 정 기자는 비전향 장기수 취재를 계획했다. 그러다 지난 7월 본격적인 작업을 시작했다. 남북 평화의 바람이 부는 지금이라면 이 얘기를 꺼내도 부자연스럽지 않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지난여름 한 달간 서울, 대전, 광주, 부산, 청주, 전주, 나주, 파주 등을 다니며 비전향 장기수들을 만났다. 2000년 6·15남북공동선언으로 비전향 장기수 63명이 북으로 돌아갈 때 함께 하지 못한 19명이었다. 이들의 집에서, 요양원에서, 때론 지하철역에서 검은 천을 배경에 두고 사진을 찍었다. 검정 배경은 인물을 향한 주목도를 높이기 위해서였다.


“처음엔 조심스러웠는데 막상 찾아뵈니 다들 반가워해 주셨어요. 짧은 만남이었지만 헤어질 때는 아쉬워하시더라고요. 19분 가운데 김동수 선생님이 지난 8월 돌아가셨어요. 남은 분들이라도 고향 땅을 밟게 될 날이 빨리 와야죠.”


정 기자는 비전향 장기수 문제를 이념이 아닌 인도주의적 관점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했다. 사진전 개최와 함께 이들의 증언을 담은 책 <바꿀 수 없는>을 펴낸 이유이기도 하다. 기자로서, 분단의 아픔을 짊어지고 살아온 이들의 인생을 오롯이 기록해야 한다는 의무감도 들었다.


“내가 살던 고향, 가족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건데. 참 안타깝습니다. 사실 비전향 장기수의 존재를 모르는 분이 많아요. 전시회와 책을 통해 조금이라도 알려지면 좋겠어요. 연말에 서울에서 남북정상회담이 열리면 두 정상께 이 책을 꼭 전하고 싶습니다. 두 분만이 이 문제를 매듭지을 수 있을 테니까요.”


김달아 기자 bliss@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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