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카메라 뒤에 있는 '사람'들도 보일까

지상파 비정규직 처우개선안 마련… MBC, 232명 전문직 통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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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4월 tvN 드라마 ‘혼술남녀’의 신입 조연출이었던 고 이한빛씨의 사망 사건은 열악한 방송계 노동의 현실을 극명하게 보여줬다. 사진은 그해 5월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공원에서 ‘비정규직철폐공동행동’ 주최로 열린 청년노동자 공동기자회견에서 한 회원이 ‘카메라 뒤에도 사람이 있다’는 내용이 적힌 피켓을 들고 카메라 기자들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 /뉴시스

▲지난해 4월 tvN 드라마 ‘혼술남녀’의 신입 조연출이었던 고 이한빛씨의 사망 사건은 열악한 방송계 노동의 현실을 극명하게 보여줬다. 사진은 그해 5월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공원에서 ‘비정규직철폐공동행동’ 주최로 열린 청년노동자 공동기자회견에서 한 회원이 ‘카메라 뒤에도 사람이 있다’는 내용이 적힌 피켓을 들고 카메라 기자들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 /뉴시스


지상파 방송사가 사내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을 해소하고 처우 개선을 위한 대안 마련에 나섰다.


지상파 3사의 정규직 직원은 MBC 1611명, KBS 4874명, SBS 982명. 기간제를 포함한 비정규직은 MBC 688명, KBS 786명, SBS 205명(고용노동부 2018년 3월 공시 기준)이다.


MBC는 지난달 13일 최승호 사장과 김환균 전국언론노조위원장이 ‘업무직 처우개선’ 합의문에 서명하고, 총 232명의 업무직과 무기계약직 직원을 모두 전문직으로 통합했다. 이들 전문직군은 기자나 제작PD 등을 제외하고 거의 전 분야에 거쳐 일하고 있다. MBC 관계자는 “부장, 차장, 사원 등 일반직과 같은 직급체제를 주고 승진제도를 도입해 5년 단위의 연차휴가 적립제도 일반직과 동일하게 적용했다”고 설명했다.


조능희 MBC 기획편성본부장은 지난달 28일 방송문화진흥회에서 “이들 대부분은 나이가 60이 다돼도 주임으로만 불렸다. 사내 차별이 심하다”며 “근로의욕 고취를 위해서는 최소한 직급은 줘야 한다고 판단해 인사규정과 취업규정, 보수규정 모두 바꿨다”고 말했다.


2020년까지 단계적으로 임금을 인상하고 평가에 따라 35명 이상을 일반직으로 전환하는 계획도 포함됐다. MBC 취재 결과 현재 이들 전문직군은 같은 경력인 정규직의 절반도 안 되는 급여를 받고 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 본부장은 “(정규직의) 68% 수준까지 노사 합의해 올리기로 했다. 25억 정도의 비용이 들어갈 계획”이라며 “회사 사정이 어렵지만 힘을 모아서 난국을 타개하자는 의미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KBS 노사도 무기연봉직, 자원관리원, 음향디자인실 단원, 관현악단 단원 등 총 256명의 비정규직에 대한 처우 개선을 논의하고 내년 1월1일부터 이들을 모두 일반직으로 전환하는데 합의했다. 기존 경력을 인정하고 KBS 인사규정에 따라 직급과 호봉을 부여해 상대적으로 열악했던 처우를 끌어올리겠다는 방침이다. KBS 관계자는 “현재 TF를 구성해 노사가 논의 중이다. 임금을 어느 정도 올릴지 구체적인 방안에 대해서는 이달 내 합의를 끝내고, 11월 말까지 개별 합의를 마무리해 사내 규정에 반영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KBS와 MBC에 비해 상대적으로 비정규직 처우가 일찌감치 개선돼온 SBS의 경우에는 최근 산별교섭 합의에 따라 비정규직 근로자들도 예외 없이 52시간 근로제에 맞춰 근무하도록 했다. SBS 관계자는 “산별교섭 합의안에 ‘노동조건을 같이한다’는 조항이 들어있다. 52시간 근무제로 남은 업무를 비정규직에게 전가시키지 말라는 의미”라며 “작가나 외부 스텝 등에게 같은 노동시간을 부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SBS는 이미 15년 전에 고용불안에 시달릴 수 있는 업무직 계약직 근로자들을 모두 일반직으로 전환시켰다. 현재 이들의 임금은 정규직의 75%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지상파 방송사의 이러한 움직임에 대해 비정규직의 일부 직군만 해당된다는 반발도 나온다. 파견직과 도급직 등의 비정규직들은 논의 대상에서 아예 제외됐다는 지적이다. MBC의 한 파견직 근로자 A씨는 “업무직은 200여명밖에 되지 않는 걸로 알고 있다. 파견직이 배 이상으로 훨씬 많은데도 이번 합의에서 완전히 배제됐다”며 “정규직 못지않게 일하고 있지만 대우는 여전히 아르바이트생 수준”이라고 꼬집었다.


물론 지상파 방송사의 수익이 매해 쪼그라드는 상황에서 마냥 처우를 개선해줄 수는 없다는 현실론도 적지 않다. 한 지상파 방송사의 노조 관계자는 “방송의 특성상 대부분 협업이기 때문에 비정규직 직원들의 처우 개선도 중요한 과제긴 하지만, 현실적으로 적자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요구조건을 다 받아들일 순 없는 상황”이라며 “52시간 근로제까지 도입되면 더 상황은 악화될 것이다. 노사가 서로 신중하게 조율해야하는 사안”이라고 설명했다.

이진우 기자 jw85@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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