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더감수성을 클릭수와 바꾼 언론

[우리의 주장] 편집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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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게는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가까이는 올해 초 터져나온 ‘미투 운동’ 이후 한국 사회의 가장 뜨거운 이슈 가운데 하나는 페미니즘이다. ‘젠더감수성’은 새로이 탑재해야 할 사회적 능력이 되고 있으며, 이는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다. 그런데도 대중의 인식을 반영해야 할 방송 및 언론은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젠더감수성이 결여된 성차별적 내용, 여성을 성적으로 대상화하거나 비하하는 내용이 여과없이 방송되는 일이 잦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지난 2월부터 8월까지 심의한 안건을 조사한 결과, 양성평등 제재건수는 32건으로 2016년 11건, 2017년 0건에 비해 크게 증가했다. 이는 대중들의 젠더감수성이 높아짐에 따라 ‘성차별성 여부’가 주요한 심의 기준으로 작용했고, 관련한 제보가 증가한 것으로도 판단할 수 있다. 하지만 제재 대상이 된 방송 내용을 보면 아직도 제작과정에서 ‘젠더감수성’이란 필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일례로 YTN 라디오 방송에선 모델 출신 여성과 결혼한 스포츠 스타를 언급하면서 “슈퍼모델 출신을 아내로 맞아들이고, 돈을 따라간 거에요? 남자의 능력을 따라간 거에요?” “훌륭한 현모양처가 되길 바라면서…미녀라고 그럴까요? 얼굴만 예쁘면 뭐해요 마음이 예뻐야지”라며 성차별적 발언을 해 주의 조치를 받았다. 여성의 외모를 부각시켰으며, 슈퍼모델이라는 자기 분야에 커리어를 갖춘 전문가임에도 불구하고 ‘현모양처’라는 전통적 성역할을 강조했다.  


이뿐 아니다. 올림픽 등 스포츠경기가 있을 때마다 반복됐던 성차별적 발언도 여전하다. 채널A는 여성 쇼트트랙 선수 소식을 다룬 뉴스에서 “여성은 있죠. 공부 잘하는 거, 운동 잘 하는 거 아무 소용 없습니다”라는 진행자의 발언을 여과 없이 내보냈다. ‘고조선급’ 발언이다.


성폭력이나 불법촬영 등을 보도하면서 범죄 사실을 구체적으로 언급하거나 선정적 화면을 여과없이 내보내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미투’ 운동의 시발점이 됐던 서지현 검사의 성추행 피해, 연출가 이윤택의 성폭력을 보도하며 선정적으로 상황을 묘사한 보도도 방송 심의 대상이 됐다.


젠더감수성이 결여된 보도 태도는 비단 방송뿐만 아니다. 신문 및 인터넷 언론 등도 클릭수를 노린 자극적 제목 달기, 피해사실의 선정적 보도 등은 여전하다. 지난달 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성폭력 재판에 대한 보도는 언론의 젠더의식 결여, 언론 보도가 행하는 2차 가해의 교본과 같았다. 재판과정에서 가해자 측의 주장을 여과 없이 보도했으며, 인터넷의 클릭수를 노린 듯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제목을 달았다. 재판의 프레임이 ‘피해자의 피해자다움에 대한 재판’으로 짜여진 것엔 이러한 언론의 보도태도도 한 몫했다.


미투 운동 이후 불고 있는 페미니즘 열풍은 성별에 관계없이 평등한 사회, 차별과 폭력 없는 사회를 만들자는 움직임에 다름 아니다. 높아진 대중들의 젠더감수성과 사회변화의 흐름에 맞춰 언론 내부에서도 젠더감수성을 높이기 위한 의식적·제도적 노력이 필요하다. 아이템 선정부터 제작 과정 전반에 성차별적 요소가 없는지 모니터링하는 제도적 장치와 외부의 비판을 수용하는 열린 태도가 필요하다. 방송과 신문 등 ‘레거시 미디어’가 성평등한 사회로 나아가는 변화에 걸림돌이 되어선 안 된다. 사회적 변화와 흐름을 쫓아가지 못하는 미디어는 대중에게 외면당할 수 있다. 레거시 미디어가 도태되어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를 스스로 추가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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