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지 아닌데도 200만부… 일본 지역여론 꽉 움켜쥔 '블록지'

기자들의 삶 / 세계 언론인과의 대화 ④ 일본 (2) 블록지 기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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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주니치신문 나고야본사 1층 로비에서 타테이시 토모야스 기자(2008년 입사), 나카무라 키요시 부장(1984년 입사), 오사다 히로미 기자(1999년 입사). 기자들 뒤로 1955~1977년 주니치신문 취재용 헬기로 쓰인 ‘니이타카 호’가 보인다.

▲일본 주니치신문 나고야본사 1층 로비에서 타테이시 토모야스 기자(2008년 입사), 나카무라 키요시 부장(1984년 입사), 오사다 히로미 기자(1999년 입사). 기자들 뒤로 1955~1977년 주니치신문 취재용 헬기로 쓰인 ‘니이타카 호’가 보인다.


일본 주니치신문 나고야본사 1층 로비에 들어서자 경비행기가 눈에 들어왔다. 주니치신문의 취재용 헬기였던 ‘니이타카 호’다. 1955년부터 1977년까지 21년여간 하늘을 날며 뉴스를 전했다. 헬기 옆 안내판에는 니이타카 호를 소개하는 문구가 다음과 같이 쓰여 있었다.


‘총 비행시간 5231시간, 거리 117만1744km, 지구를 29바퀴 이상 돈 것과 맞먹는다. 685ℓ의 가솔린을 넣으면 연속 9시간, 약 2000km(홋카이도 북단에서 규슈 남단)를 한 번에 날 수 있다. 취재 외에도 재해지역에 신문이나 구원물자를 보내거나 학술조사 등에도 협력했다.’


주니치신문은 일본 중부지방의 대표 도시 나고야에 본사를 둔 지역지다. 경비행기가 쓰일 만큼 취재 영역이 넓다. 주니치(中日, 중일)라는 제호처럼 중부지방과 그 아래쪽에 자리한 간토지방까지 10여개 도·현을 아우른다. 나고야를 비롯해 도쿄, 북쪽내륙, 동쪽해안 지역 등 모두 4곳에 본사가 있다.


주니치신문 사옥 내부 벽면에 걸려있는 보도사진들.

▲주니치신문 사옥 내부 벽면에 걸려있는 보도사진들.


일본에선 주니치신문 같은 대형 지방지를 ‘블록지’라고 부른다. 북부, 중부, 서부, 남부 등 광역별로 블록을 형성해 신문을 발행하고 있다. 신문을 전국지와 지역지로 구분하는 한국 언론계에선 생소한 개념이다. 한국에 적용하면 부산일보가 한반도 남쪽에 있는 경상도, 전라도, 제주도를 모두 커버하는 것이다.


주니치신문(중부)과 함께 홋카이도신문(최북단), 니시닛폰신문(서부)은 일본 3대 블록지로 꼽힌다. 이들 신문은 지방을 넘어 서울 등에 해외 특파원을 둘 정도로 큰 규모를 자랑한다. 이 가운데 주니치신문 나고야본사, 삿포로에 있는 홋카이도신문 본사를 지난 7월 말~8월 초 찾았다. 주니치신문의 나카무라 키요시, 오사다 히로미, 타테이시 토모야스, 홋카이도신문의 야마시타 고키, 혼조 아야카가 블록지 기자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려줬다.

◇전국지보다 영향력 큰 블록지
일본 블록지는 지방에 기반을 뒀지만 한국 지역지와 단순 비교하기엔 무리가 있다. 주니치신문과 홋카이도신문은 본지뿐 아니라 스포츠지, 소규모 지방지, 방송국 등 여러 계열사를 운영한다. 본지 발행부수만 살펴보면 주니치신문은 200만부 가량, 홋카이도신문은 98만부다. 인구 500만명인 홋카이도의 경우 5명 중 1명이 홋카이도신문을 보는 셈이다.


두 신문은 지역민의 지지를 바탕으로 성장해왔다. 해당 지역에서 발행부수, 영향력 모두 전국지를 크게 뛰어넘는다. 나카무라 키요시 주니치신문 부장은 “중부지방에서 발행부수 1위는 주니치신문(200만부)인데, 2위인 전국지는 50만부도 채 되지 않는다고 들었다”며 “그 정도로 우리 신문의 영향력이 상당하다. 많은 사람에게 뉴스를 전한다는 보람과 자부심이 있다”고 말했다.


야마시타 고키 홋카이도신문 기자(1993년 입사)는 홋카이도청 기자클럽 캡(기자단 간사)을 맡고 있다.

▲야마시타 고키 홋카이도신문 기자(1993년 입사)는 홋카이도청 기자클럽 캡(기자단 간사)을 맡고 있다.


야마시타 고키 홋카이도신문 기자도 “이 지역에선 가장 많은 인력을 투입해 빠르고 정확한 보도를 한다는 자부심이 있다”며 “다른 신문사보다 지역이 미치는 영향력이 크기 때문에 기사에 대한 반향이 즉각적으로 나온다”고 말했다.


지역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국제뉴스는 블록지의 또 다른 강점이다. 해외 특파원을 두고 국제뉴스도 직접 다룬다. 지역 독자들이 전국지를 보지 않아도 다양한 뉴스를 접하게 되는 것이다.


홋카이도신문은 서울, 베이징, 싱가포르, 모스크바, 유즈노사할리스크, 워싱턴, 런던, 카이로 등 8곳에 해외 지국이 있다. 주니치신문은 아시아(서울·베이징·상하이·방콕), 미국(워싱턴·뉴욕), 유럽(파리·런던·베를린·모스크바) 등 해외 10개 도시에 특파원이 상주한다.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파견국이 20여곳에 달했지만 점차 줄어들었다.


2007년 홋카이도신문에 입사한 혼조 아야카 기자는 7년 가까이 지국을 돌며 취재하다 2년 전 본사로 복귀해 경제부에서 일하고 있다.

▲2007년 홋카이도신문에 입사한 혼조 아야카 기자는 7년 가까이 지국을 돌며 취재하다 2년 전 본사로 복귀해 경제부에서 일하고 있다.


나카무라 부장은 서울 특파원을 2차례 지냈다. 오사다 히로미 주니치신문 기자도 뉴욕 특파원을 역임했다. 해외 특파원을 승진 코스로 여기는지 궁금했다. 오사다 기자는 “해외 특파원 경험자가 너무 많아서 승진이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 파견국을 잘 알거나 관심 있는 기자가 특파원으로 가는 것”이라며 “특파원 외에도 한국, 중국, 미국, 러시아 등 연수 기회가 있어서 해외에 다녀온 기자들이 많다”고 설명했다.

◇마와리·신입 지역근무, 전국지와 다르지 않은 삶
블록지 기자들의 일상은 도쿄 신문기자들과 다르지 않다. 블록지도 전국지처럼 조간과 석간을 함께 발행하고 한 달 구독료 역시 4만원(4037엔) 가량이다. 신입기자가 지역을 돌며 근무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혼조 아야카 홋카이도신문 기자는 2007년 입사한 뒤 삿포로본사에서 근무하다 3년 동안 홋카이도 동쪽 나카시베츠, 동쪽 하코다테에서 3년8개월간 일했다. 특히 나카시베츠지국에선 기자가 3명뿐이었지만, 다양한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


“작은 지역이다 보니 독자와의 거리가 매우 가까워요. 생선 남획을 비판하는 보도를 했는데 아침 7시부터 어부들이 찾아와 항의한 일도 있었어요. 기사를 쓸 때마다 당사자의 반응을 직접 접할 수 있어요. 기자로서 느끼는 것도 많았죠.”


혼조 기자는 2년 전 삿포로본사로 돌아와 경제부에서 일하고 있다. 일주일에 2번 이상, 오전 7시30분쯤 은행 간부 집 앞으로 출근하는 마와리를 한다. 이어 삿포로 시내 증권사, 기업을 취재하며 조·석간 기사를 마감한다. 오후 7시에 퇴근하는 날도 있지만 취재원과 저녁을 먹는 날이면 늦은 밤이 돼서야 하루를 마무리한다.


주니치신문 사회부 경찰담당인 타테이시 토모야스 기자는 매일 밤낮으로 ‘사쓰 마와리’를 한다. 이른 아침 경찰 간부 집을 찾아가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퇴근 시간은 보통 밤 11시30분. 물론 더 늦는 날도 많다. 삼형제 아빠인 그는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해 미안하고 아쉽다. 되도록이면 점심시간에 집에 가서 잠깐이라도 놀아주려고 노력한다. 타테이시 기자는 “사쓰 마와리 기자 특성상 당장 업무 패턴을 바꾸기는 어려울 것 같다”면서도 “일본 사회 전체의 과노동 문화가 변화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고 말했다.


야마시타 홋카이도신문 기자는 “일본사회에서도 기자는 업무량이 많은 편에 속한다”며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을 따라가다 보니 휴일에도 쉬지 못하고 휴가도 쉽게 쓰지 못한다”고 말했다.


지난 2016년 일본 최대 광고회사 덴쓰에서 과로에 시달리던 신입사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야마시타 기자는 “그 사건 이후 홋카이도신문에서도 기자들의 과로를 줄이고 효율적인 업무안을 논의하는 부서가 생겼다”며 “틀은 마련됐는데 구체적인 내용을 현실에 적용하기까진 시간이 걸릴 것 같다”고 내다봤다.


일본 삿포로에 있는 홋카이도신문 편집국 전경.

▲일본 삿포로에 있는 홋카이도신문 편집국 전경.


◇지역민의 신뢰와 기자들의 자부심
지역에서 블록지의 영향력은 굳건하지만 줄어드는 구독자는 어쩔 수 없는 고민거리다. 2~3년 전만해도 지하철에서 종이신문을 보는 이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나고야와 삿포로를 찾은 7월 말~8월 초 지하철을 타보니 대다수가 휴대폰을 보고 있었다. 책을 든 이들도 고작 몇 명 뿐이었다.


사회 변화에 따라 블록지도 디지털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다만 한국과 다른 상황은 디지털 기사 유통이 철저하게 자체 홈페이지(전자판)를 통해 이뤄진다는 점이다. 블록지 역시 신문 구독자만 홈페이지에서 기사 전문을 볼 수 있다.


홋카이도신문은 지난 7월 온·오프라인 통합뉴스룸을 도입했다. 속보나 디지털 전용 콘텐츠 제작에 신경 쓰고 있다. 혼조 홋카이도신문 기자는 “아침에 사건이 발생하거나 중요한 행사가 있으면 석간에 쓰곤 했는데 요즘엔 바로 전자판에 쓰자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오사다 주니치신문 기자는 “취재기자에게 현장에서 사진, 동영상을 찍도록 한다. 독자들을 상대로 웹페이지로 오면 다양한 사진과 영상을 볼 수 있다고 홍보하기도 한다”며 “최근 들어 속보를 올리라고 하는데, 제가 경제부라서 기사를 빨리 쓰려다가 숫자 하나라도 틀리게 될까봐 압박감이 들기도 한다”고 말했다.


언론 환경의 변화 속에서도 블록지 기자들을 지탱하는 힘은 지역민이 보내주는 신뢰다. 도쿄가 아닌 지역의 시각으로 뉴스를 분석하고 호응을 얻는다. 기자들도 지역민에게 지지를 받는다는 믿음이 있다. 오사다 주니치신문 기자는 “지역의 특색을 살린 기사, 지역민에 맞는 보도를 하는 것이 지역신문의 역할”이라며 “취재하며 지역이라는 한계를 느끼지 못한다. 디지털이 발달하면서 지역의 작은 뉴스도 더 멀리 퍼질 수 있지 않느냐”고 말했다.


홋카이도청 기자클럽 캡(기자단 간사)을 맡고 있는 야먀시타 홋카이도신문 기자는 “도쿄에서 세운 정책이 홋카이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전망과 분석을 중요하게 다룬다”며 “특히 홋카이도가 일본 최대 농업지역이기 때문에 도쿄와 입장이 다를 때가 많다. 지역민의 눈으로 사안을 바라본다”고 말했다.


나카무라 주니치신문 부장은 지방에 있어서 오히려 더 좋은 기사를 쓸 수 있다고 자부했다. 그는 “도쿄에선 각료들을 자주 만나기 때문에 그들의 생각에 동화되고, 결국 정치인 입장에서 기사를 쓸 수도 있지 않느냐”며 “우리는 정책을 적용받는 지역민들과 더 가까이 있다. 이들과 호흡하면서 피부에 와 닿는 기사를 쓸 수 있다”고 밝혔다.


타테이시 주니치신문 기자도 지방신문의 역할을 강조했다. 타테이시 기자는 “일본의 가장 큰 사회 문제인 고령화는 특히 지방에 집중돼있다”며 “결국 일본이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 극복해야 할 과제는 지방에 있다고 본다. 그러한 현장에 더 가까이 갈 수 있는 지방신문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도쿄에서 대학교를 졸업하고 고향 삿포로로 돌아온 혼조 홋카이도신문 기자는 그가 쓴 기사를 스크랩해 간직하고 있는 주민, 다음 기사가 기대된다며 응원해주는 독자들을 만날 때마다 지역신문 기자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최근에 정말 기쁜 일이 있었어요. 제가 25살 때 나카시베츠에서 취재했던 중학생이 어느덧 성인이 돼 홋카이도신문 기자로 입사했어요. 11년째 기자생활하며 퇴사하고 싶은 순간도 있었는데(웃음), 그만두지 않아 다행이에요. 보람도 느끼고요. 앞으로 이 친구와 함께 일하게 될 순간이 기대됩니다.” 

*후원:한국언론진흥재단

김달아 기자 bliss@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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