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사는 나라

[글로벌 리포트 | 핀란드] 최원석 핀란드 라플란드 대학교 미디어교육 석사과정

최원석 핀란드 라플란드대학교 미디어교육 석사과정.

▲최원석 핀란드 라플란드대학교 미디어교육 석사과정.

지난주 아이가 처음으로 어린이집에 가기 시작했다. 첫 이틀은 별말 없이 선생님 손에 이끌려 일과를 시작했다. 아이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핀란드식 아침밥 뿌로(puuro: 귀리죽)를 먹기 시작하면, 나와 아내는 조용히 빠져 나왔다. 어쩐지 홀가분해서 아내와 어린이집 앞에서 하이파이브를 했다. 웬걸. 아이는 이날 집에 돌아와 엄마 아빠 어디 숨어 있었냐고 물었다. 다음 사흘은 “빠이바 꼬띠(어린이집) 가기 시져!”라고 통곡하며 또박또박 말했다. 몸을 비틀며 우는 아이를 어린이집 선생님이 받아줬다.


사망자 4살과 11개월. 한국 사건사고 기사를 접하고는 마음이 덜컥 무너졌다. 이제 막 엄마 아빠를 알아보고 떠들기도 시작했을 아이. 한 아이는 폭염 속 차량에서 빠져나오지 못했고, 다른 아이는 보육교사가 올라탄 이불 밑에서 나오지 못했다. 2016년 7월 통학차량 방치 사고로 의식을 잃은 어린이 김 모 군 어머니의 말대로 “어린이집 관계자들이 아이들을 제 자식처럼 여겼다면” 일어났을 일일까. 몇몇 뉴스는 무더위를, 또 누군가는 제도 핑계를 대지만, 결국 모두 어른들의 실수로 보였다.


핀란드에 견줘본다고 도움이 될진 모르지만, 이곳 어린이집 모습은 이렇다. 많은 부모가 오전 7시50분쯤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긴다. 보통 자전거나 승용차로 아이를 데리고 간 뒤, 건물에 들어가자마자 손을 씻긴다. 오전 8시부터 8시30분까지 바로 아침 식사시간이다. 어린이집 아침 식사는 정말 온 가족의 큰 수고를 덜어준다. 든든히 먹은 아이들은 오전 11시까지 논다. 점심 식사 뒤 12시쯤부터는 한두 시간 낮잠 시간이다. 잠 안 자는 아이는 선생님이 따로 모아 책을 읽어 준다. 잠에서 깬 뒤 오후 2시엔 간단한 빵이나 요구르트를 간식으로 먹는다. 어린이집 대부분에 조리시설과 아이들 식당을 갖췄다. 우유 소화를 못 하거나 알레르기 있는 아이는 미리 부모에게 물어보고 준비한다. 함께 먹는 식사는 어린이집 단계부터 핀란드 교육 정책의 중요한 축이다.


부모들은 오후 서너 시쯤 아이를 데리러 간다. 선생님은 아이가 이날 뭘 하고 누구와 놀았는지, 소변과 대변은 몇 번이나 봤는지를 부모에게 말해준다. 내가 사는 도시 로바니에미(Rovaniemi)의 경우, 모든 어린이집 원장 연락처를 시청 홈페이지에서 찾을 수 있다. 언제든 연락하고 상담받을 수 있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머무는 시간은 부모의 근무나 학업 시간과 연결되어 있다. 이 때문인지 어린이집 신청은 국공립이든 사립이든 시청 홈페이지를 통한다. 부모나 보호자 정보와 함께 아이 정보를 넣을 때 몇 시간 어린이집 이용할지를 선택한다. 어린이집을 옮길 때도 시청 담당 부서를 거친다.


시내 식당 어디에든 어린이 의자가 있다. 휴게소나 공공시설 화장실 가운데 한 곳엔 기저귀 교환대를 설치하고, 슈퍼마켓 입구 바로 앞에는 어린이용 카트를 놓는다. 음식 기다리는 동안 아이에게 크레파스를 내주는 식당도 있다. 메뉴 종이 뒷면으로 그림 놀이를 할 수 있는 작은 아이디어였다. 적어도 지금껏 아이를 데리고 갈 수 없도록 막는 곳은 한 곳도 없었다. 처음에는 의심스럽기까지 했던 육아 환경이었지만, 점차 어린이도 엄연히 사회 일원이라는 핀란드 사회의 사고방식에서 비롯된 결과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결국은 가정이 잘 돌아가도록 하는 게 모든 육아와 복지 정책의 핵심이다. 시댁이나 친정이 없이도 아이를 맡길 수 있도록 부모의 노동 시간을 줄이는 일, 아이들이 가는 시설은 더 엄격하게 검증하고 관리하는 일, 아이가 자라면서 온전히 한 사람 역할을 해낼 수 있도록 모두가 손을 모으는 일 하나하나 중요하지 않은 게 없다. “아이 잘 기르는 데 필요한 건 할아버지의 재력과 엄마의 정보력, 그리고 아빠의 무관심”이라는 한국의 우스갯소리는 핀란드에서 문득 생각해보니 섬뜩한 말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아이들을 더 세심하게 생각하는 마음, 그것 하나뿐이다. 더위 탓, 제도 탓이 아니라 아이들을 생각하는 아주 기본적인 사랑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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