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자 4살과 11개월. 한국 사건사고 기사를 접하고는 마음이 덜컥 무너졌다. 이제 막 엄마 아빠를 알아보고 떠들기도 시작했을 아이. 한 아이는 폭염 속 차량에서 빠져나오지 못했고, 다른 아이는 보육교사가 올라탄 이불 밑에서 나오지 못했다. 2016년 7월 통학차량 방치 사고로 의식을 잃은 어린이 김 모 군 어머니의 말대로 “어린이집 관계자들이 아이들을 제 자식처럼 여겼다면” 일어났을 일일까. 몇몇 뉴스는 무더위를, 또 누군가는 제도 핑계를 대지만, 결국 모두 어른들의 실수로 보였다.
핀란드에 견줘본다고 도움이 될진 모르지만, 이곳 어린이집 모습은 이렇다. 많은 부모가 오전 7시50분쯤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긴다. 보통 자전거나 승용차로 아이를 데리고 간 뒤, 건물에 들어가자마자 손을 씻긴다. 오전 8시부터 8시30분까지 바로 아침 식사시간이다. 어린이집 아침 식사는 정말 온 가족의 큰 수고를 덜어준다. 든든히 먹은 아이들은 오전 11시까지 논다. 점심 식사 뒤 12시쯤부터는 한두 시간 낮잠 시간이다. 잠 안 자는 아이는 선생님이 따로 모아 책을 읽어 준다. 잠에서 깬 뒤 오후 2시엔 간단한 빵이나 요구르트를 간식으로 먹는다. 어린이집 대부분에 조리시설과 아이들 식당을 갖췄다. 우유 소화를 못 하거나 알레르기 있는 아이는 미리 부모에게 물어보고 준비한다. 함께 먹는 식사는 어린이집 단계부터 핀란드 교육 정책의 중요한 축이다.
부모들은 오후 서너 시쯤 아이를 데리러 간다. 선생님은 아이가 이날 뭘 하고 누구와 놀았는지, 소변과 대변은 몇 번이나 봤는지를 부모에게 말해준다. 내가 사는 도시 로바니에미(Rovaniemi)의 경우, 모든 어린이집 원장 연락처를 시청 홈페이지에서 찾을 수 있다. 언제든 연락하고 상담받을 수 있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머무는 시간은 부모의 근무나 학업 시간과 연결되어 있다. 이 때문인지 어린이집 신청은 국공립이든 사립이든 시청 홈페이지를 통한다. 부모나 보호자 정보와 함께 아이 정보를 넣을 때 몇 시간 어린이집 이용할지를 선택한다. 어린이집을 옮길 때도 시청 담당 부서를 거친다.
시내 식당 어디에든 어린이 의자가 있다. 휴게소나 공공시설 화장실 가운데 한 곳엔 기저귀 교환대를 설치하고, 슈퍼마켓 입구 바로 앞에는 어린이용 카트를 놓는다. 음식 기다리는 동안 아이에게 크레파스를 내주는 식당도 있다. 메뉴 종이 뒷면으로 그림 놀이를 할 수 있는 작은 아이디어였다. 적어도 지금껏 아이를 데리고 갈 수 없도록 막는 곳은 한 곳도 없었다. 처음에는 의심스럽기까지 했던 육아 환경이었지만, 점차 어린이도 엄연히 사회 일원이라는 핀란드 사회의 사고방식에서 비롯된 결과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결국은 가정이 잘 돌아가도록 하는 게 모든 육아와 복지 정책의 핵심이다. 시댁이나 친정이 없이도 아이를 맡길 수 있도록 부모의 노동 시간을 줄이는 일, 아이들이 가는 시설은 더 엄격하게 검증하고 관리하는 일, 아이가 자라면서 온전히 한 사람 역할을 해낼 수 있도록 모두가 손을 모으는 일 하나하나 중요하지 않은 게 없다. “아이 잘 기르는 데 필요한 건 할아버지의 재력과 엄마의 정보력, 그리고 아빠의 무관심”이라는 한국의 우스갯소리는 핀란드에서 문득 생각해보니 섬뜩한 말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아이들을 더 세심하게 생각하는 마음, 그것 하나뿐이다. 더위 탓, 제도 탓이 아니라 아이들을 생각하는 아주 기본적인 사랑 말이다.
최원석 핀란드 라플란드 대학교 미디어교육 석사과정의 전체기사 보기Copyright @2004 한국기자협회.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