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스코이호와 함께 침몰한 언론의 게이트키핑

[스페셜리스트 | 금융] 유병연 한국경제신문 부장·신문방송학 박사

유병연 한국경제신문 부.

▲유병연 한국경제신문 부.

지난달 17일 11시45분 연합뉴스에 ‘113년 전 울릉 앞바다서 침몰한 러시아배 돈스코이호 발견’이란 제하의 기사가 떴다. “신일그룹은 지난 15일 오전 9시50분께 울릉군 울릉읍 저동리에서 1.3㎞ 떨어진 수심 434m 지점에서 돈스코이호 선체를 발견했다“는 내용이었다. 당일 하루 새 쏟아진 돈스코이호 관련 보도는 150여건. ‘150조 보물선 돈스코이호 발견, 113년 논란 종지부 찍다’, ‘울릉도 바다 속 돈스코이호 발견…10조원 가치 추정’ 등 대다수는 신일그룹 발표를 그대로, 혹은 자극적으로 전달하는 것들이었다. ‘돈스코이호, 신일그룹 ‘스캠코인’ 작전주 주의보’ 등 경고성 기사도 극소수 있었지만 황색저널리즘에 묻혀 버렸다.


돈스코이호가 주식시장에 등장한 건 처음이 아니다. 동아건설은 2000년 말 돈스코이호 인양권을 주장하며 ‘보물선 소동’을 일으켰다. 이 회사는 2000년 12월15일부터 2001년 1월4일까지 17일 연속 상한가 행진을 거듭하기도 했다. 이 기간 310원이었던 주가는 3265원으로 치솟았다. 곧이어 유동성 위기에 빠져 2001년 3월 상장 폐지됐다.


주가 흐름도 수상하기 짝이 없었다. 신일그룹 관계사로 지목된 상장사 제일제강 주가는 1년여 간 1000~1500원선에서 횡보하다가 7월3일부터 13일까지 10 거래일 새 1840원에서 3960원으로 두 배 이상 올랐다. 공교롭게도(?) 돈스코이호 발견 직전 신일그룹이 인수하겠다고 발표한 업체였다. 대대적인 돈스코이호 보도가 쏟아진 지난달 17일 제일제강은 상한가(30% 상승)를 찍으며 대미를 장식했다. 이후 꼬꾸라진 주가에 허황된 꿈을 좇던 개미 투자자들은 피눈물을 흘려야 했다.


신일그룹의 일방적인 발표를 여과 없이 전한 언론들은 이번 돈스코이호 사태를 조장 또는 방조했다는 책임을 피하기 어렵다. 언론의 게이트키핑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데 따른 참사로 기록될 전망이다.    


게이트키핑은 데스크 편집기자 등 뉴스 가치를 결정하는 사람들에 의해 뉴스가 취사선택되는 과정을 뜻한다. 미디어 환경이 디지털로 바뀌고 인터넷 매체가 급증하는 등 ‘온라인 저널리즘 시대’가 본격화되면서 언론의 게이트키핑 기능은 무력화되고 있다. 지면 제한을 받지 않는 데다 흥미성이 무한 강조되면서 인터넷을 통해 별다른 관문(게이트) 없이 기사가 대중에 전달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일부 인터넷 매체에서는 클릭수를 게이트키핑의 기준으로 삼을 정도다. 이처럼 내부 감시가 무너지면서 외부 수용자들이 뉴스를 감시하는 ‘게이트워칭(gate watching)’이 게이트키핑을 대체하는 추세다.   


기사가 범람할수록 역설적으로 언론의 게이트키핑 능력은 더욱 중요해진다. 언론의 생명인 신뢰를 지키기 위해선 가짜 뉴스의 홍수 속에 진짜 뉴스를 걸러내는 능력이 필요하다. 기자가 저널리스트가 아닌 단순 정보 전달자로 전락하고, 언론 내부의 게이트키핑이 외부의 게이트워칭에 자리를 넘겨주지 않으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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