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휴직 쓰라고 등 떠밀어도… 자기 발목 자기가 잡는 속사정

보이지 않는 압박… 주요 업무 배제될까, 승진 누락될까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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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휴직은 조금씩 존중받는 분위기로 바뀌고 있어요. 전보다 많이 쓰고 있고 사내에서도 눈치가 줄었고요. 물론 당사자가 체감하는 건 다를 수 있더라고요. 동기들 보면 보이지 않는 압박이 아직도 여전하다고 해요.” (통신사 기자)


“법적으로 다 사용이 가능한 건데도 스스로 불편한거죠. 기자라는 직업 특성상 바쁜데 대체할 사람이 없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미안한 마음도 있고 복귀하면 다시 적응해서 잘할 수 있을지 두려움도 있고요.” (일간지 기자)


언론계에서 육아휴직은 자유로운 주제가 아니다. 각 사마다 사규나 단체협약을 통해 육아휴직제를 명시하고 있고 조직 문화도 나아지고 있지만, 보이지 않는 불편함이 존재한다.



한 일간지 A 기자는 “출산휴가를 포함해 1년간의 육아휴직을 어렵게 썼다고 해도 복귀 후가 걱정이다. 눈에 띄는 눈치를 준 건 아니지만, ‘적응 기간’이라며 내근 부서에 배치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A 기자는 “국제부 등 내근 부서가 육아휴직 후 복직 부서라는 낙인이 찍힐 정도다. 선배들은 ‘애 키우려면 바쁘겠다’며 배려 차원이라고 하지만, 내가 먼저 원한 게 아니기 때문에 서운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고 했다.


또 다른 방송사 B 기자도 “경력으로 들어온 한 선배가 육아휴직을 썼는데, 부장이 ‘이직하자마자 육아휴직이 말이 되냐’며 뒤에서 험담한 것을 목격했다. 앞으로 나도 결혼해서 육아휴직을 쓰면 저런 비난을 뒤에서 듣게 될 거란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B 기자는 “첫째는 용인돼도 둘째, 셋째까지 육아휴직을 쓰면 사내에서 ‘여기자는 저래서 안 된다’는 얘기가 오간다. 대놓고 ‘쓰지 말라’고는 못해도 그런 얘기 듣기 싫어서 못 쓰는 경우도 있다”라고 전했다.


남성의 경우에는 육아휴직이 남의 얘기나 다름없다. 기자협회보가 종합일간지 9곳과 경제지 2곳을 조사한 결과 매일경제, 한국경제는 남성 기자가 육아휴직을 쓴 적이 없다. 중앙일보의 경우에는 최근 남성 기자가 이례적으로 육아휴직을 사용할 계획이고, 세계일보는 지난 2011년 이후 사례가 없다. 대다수 주요 일간지의 남성 육아휴직자는 언론사당 다섯 손가락에 꼽힐 정도다. 회사에서는 육아휴직을 신청하면 모두 승인하고 있음에도, 편집국 내부 문화가 따라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한 경제지 C 기자는 “전례가 없어서 어려운 것”이라며 “누군가 총대를 메고 분위기를 바꿀 필요가 있다”고 했다. 또 다른 경제지 D 기자는 “병가조차 남은 연차를 소진해서 쓰라고 하는 분위기인데 어떻게 육아휴직제가 제대로 정착이 되겠나”라며 “남성 육아휴직은 사례가 없었고 출산휴가는 하루정도만 쓸 수 있다”고 했다. 통신사 E 기자도 “지금까지 2명의 남성이 육아휴직을 쓴 걸로 알고 있다”며 “법적으로 다 사용 가능한데도 남성이 육아휴직을 하면 곧 일을 관둘 생각이라는 인식이 팽배하다”고 전했다.


복직 후 현업에서 업무를 제대로 소화할지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도 육아휴직의 발목을 잡는다. 주변에서 눈치를 주는 게 아닌데도 내근부서를 자처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주요 부서에서 활발히 활동하다 육아휴직 후 스스로 못 견뎌 관두는 경우도 있다. 한 일간지 온라인 부서 F 기자는 “내근 부서임에도 한 선배가 둘째 아이를 낳고 결국 일을 관뒀다”며 “주요 업무에서 배제되고 승진 기회에서 멀어지며 마음을 접은 것 같다. 내부에서도 적극적으로 잡지 않더라”고 했다.


기자들은 육아휴직 기간을 확대하고 자유롭게 쓸 수 있도록 하는 문화를 갖춰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아울러 인력 충원이나 휴직 중 임금 지원 등 실질적인 대책의 필요성도 제기된다. 오전이나 오후 반차를 쓰고 일정 급여를 받는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제’도 한 방법이다. 최근 MBC는 남녀 기자의 1년 육아휴직 기간을 2년으로 늘리고, 자유롭게 분할 사용하게 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남기자의 출산휴가를 기존 3일+2일(신청시, 무급)에서 7일로 확대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조효정 전국언론노조 MBC본부 성평등위원장은 “내부 의견을 수렴해 육아휴직 개편안을 포함한 노조안을 사측에 전달한 상태다. 회사와 협의를 통해 단협에 넣을 생각”이라며 “내부 기자들의 반응도 좋다. 받아들여질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지만, 근로 환경이 나아질 거라는 기대가 크다”고 설명했다.


이진우 기자 jw85@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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