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 미풍 베트남

[글로벌 리포트 | 베트남] 정민승 한국일보 호찌민특파원

정민승 한국일보 호찌민특파원.

▲정민승 한국일보 호찌민특파원.

베트남에도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바람이 불고 있다. 지목된 가해자 중에 유명인사나 거물급 인사가 없어 큰 반향을 일으키지는 못하고 있지만, 피해 여성들의 목소리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끊이지 않고 올라오고 있고, 이들을 격려하는 움직임이 있는 만큼 언젠가는 봇물 터지듯 할 가능성도 완전 배제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시작은 지난달 한 언론사에서 시작됐다. 호찌민시에 본사를 두고 있는 유력 미디어그룹 뚜이쩨의 한 인턴기자가 직장 상사로부터 강간을 당했으며, 이후 자살을 시도했고, 병원으로 후송됐다는 ‘소문’이 페이스북을 타고 돌면서였다. 여성들, 특히 전국의 많은 여기자들이 해시태그 #toasoansach(깨끗한 뉴스룸), #ngungimlang(침묵하지 말라)을 추가해 공유에 나섰다. 소문은 상당부분 사실로 확인돼 해당 간부는 즉각 직위 해제됐다. 뚜이쩨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신속하게 내부 조사를 진행해 가해자의 사직서를 수리하고 추가 수사를 위해 사건을 경찰로 넘겼다. 신문 판매부수에서는 물론, 영향력 면에서도 베트남 최대 언론인 뚜이쩨가 독자 사과문을 내고 사태 수습에 기민하게 움직인 것은 그 만큼 사태를 심각하게 봤기 때문이다.


이 같은 이례적인 조치에 베트남 사람들은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본 것일까. 인턴여기자 사건은 빠르게 세상에서 지워졌다. ‘#toasoansach(깨끗한 뉴스룸)’로 구글에서 검색하면 표출되던 결과물이 지난주까지만 해도 수십개에 달했지만 21일 현재 8개를 기록하고 있다. 정확한 이유는 확인되지 않는다. 그런 사건이 입에 오르내리는 것을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만 들릴 뿐이다.


이대로 꺼지는가 싶던 베트남 ‘미투’ 는 유명 로커 팜 안 콰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는 여성들이 나타나면서 최근 다시 불 붙기 시작했다. 한 무용수가 “프로그램을 함께 하는 동안 콰가 내 몸을 더듬었다”고 폭로하면서였다. 그는 또 “밤에 홀로 있는 자신의 집으로 연습하러 오라고 수 차례 문자를 보냈다”며 메시지를 공개했다. 콰가 법정 대응 불사 방침을 밝히며 전면 부인하자 또 다른 여성 2명도 성희롱을 당했다며 반박, 콰를 압박했다. 더 나올 수도 있을 것 같은 폭로는, 하지만, 더 이어지지 않았다.


잠잠해지자 콰는 “업무 환경에서 가까운 사람끼리 엉덩이 치는 일이 무슨 대수냐. 인사나 다름 없는 행위였다”며 고개를 들었다 역풍을 맞았다. 지난주 예정됐던 공연을 취소해야 했고, 맡고 있던 유엔인구기금(UNFPA) 홍보대사 자리에서도 쫓겨났다. 그러나 이후 눈길을 끌만한 미투는 현재까지 추가로 나오지 않고 있다. 베트남 미투도 할리우드나 한국에서 일었던 미투 캠페인처럼 확산할 가능성은 충분했지만, 한국과 같은 파괴력과 생명력을 가지지는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곳 미투가 찻잔 속 폭풍으로 머물고 있는 배경으로 언론이 우선 거론된다. 100% 관영이다. 베트남 언론들은 적극적으로 미투 움직임을 보도하지 않았다. 온라인 매체 몇 군데서 “베트남에서도 미투 캠페인이 본격 시작될 조짐”이라는 식으로 간단하게 보도했다. 그 예상도 아직까지는 모두 빗나갔다. 해당 사건을 계기로 촉발된 직장 내 여성들의 정당한 권리 찾기 움직임도 잦아들었다. “기자들이 당하고, 문제제기 하는 상황에서도 사건이 축소되는 판에 일반 직장인 여성들은 오죽하겠느냐”는 회의론도 있다.


이 같은 베트남 여성들의 모습은 익히 알려진, 강인한 모습과 상반된다. 지난해 베트남 통계청과 딜로이트 자료 기준, 베트남 여성들은 남성(51.8%)과 대등한 비율(48.18%)로 경제활동에 참여하고, 여성 기업 임원 비율도 아시아 최고 수준인 17.6%를 기록하고 있다. 결혼하면 ‘호랑이’가 된다는 베트남 여성들이지만, 어디까지나 집안에서의 영향력이 그렇다는 것일 뿐, 직장에서는 여전히 약자라는 이야기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여성·인권단체들은 ‘성희롱’에 대한 기준 마련에 힘을 쏟고 있다. 성희롱이라는 개념과 단어는 2012년 노동법에 처음으로 포함, 일체의 성희롱 행위를 금지하고 있지만 ‘성희롱’의 명확한 개념과 범위가 정의되지 않아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성추행이라는 개념도 없는 곳에 미투가 너무 빨리 왔다’는 자조도 같은 맥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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