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서 수업 중에 300명 정도 되는 학생들에게 물었다. 만약 네이버에서 뉴스가 빠지고 어떤 방식으로든 포털 밖에서 뉴스를 소비해야 하는 환경이 되면 어떻게 할 것인가. 언론사 홈페이지에 직접 접속해서 뉴스를 보겠다는 학생은 1명도 없었다. 언론사가 공동의 플랫폼을 만들면 이용할 생각이 있다는 학생이 5~6명 정도. 많은 학생들은 네이버가 뉴스 제공을 안 하면 카카오로 가거나 큐레이션 서비스를 이용하겠다고 답했다. 이용자들이 언론을 바라보는 인식이 바로 그 수준 아닐까.” (박영흠 서강대 언론문화연구소 선임연구원)
언론사와 네이버 간의 전면전이 한창이다. 정확히 말하면, 이미 네이버로 힘의 균형 추가 한참 기운 상황에서, 주요 언론사들은 아웃링크 전환을 요구하며 저항하고 있다. 드루킹 댓글 조작 사건에서 시작된 포털의 책임 논란은 나비 효과를 일으키며 저널리즘의 존재론적 물음으로까지 이어졌다. 17일 전국언론노조와 전국신문통신노조협의회 공동 주최로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포털과 저널리즘 연속 토론회’도 나비의 날갯짓이 일으킨 파장의 하나였다. 40여석 규모의 좌석이 꽉 차고, 사진 기자들까지 여럿 취재 경쟁을 벌인 이날 토론회의 풍경은 포털과 언론의 관계에 대한 뜨거운 관심을 웅변했다.
기자 입장에서 발제를 맡은 이봉현 한겨레신문 경제사회연구원 저널리즘센터장은 “언론사가 포털에 뉴스라는 PB상품(유통업체에서 직접 만든 자체 브랜드 상품)을 납품하는 업자로 전락했다”고 자조 섞인 분석을 내놨다. 이 센터장은 “포털에서 어떤 기준으로 뉴스를 선택하는지 그에 맞춰 속보나 흥미 위주의 기사를 많이 쓰게 된다”며 “CMS를 체크하며 유통사가 원하는 기사를 써야 한다는 게 일선 기자의 강박이 되어버렸다”고 말했다.
이어 “의미 있고 공 들인 기사는 공유가 안 되며 무의미하다는 분위기가 강하다. 꼭 필요하고 의미 있는 뉴스는 사장되고, 의제설정과 공론장의 왜곡이 발생한다”며 작금의 상황을 “저널리즘의 위기이자 민주주의의 위기“라고 진단했다.
박영흠 서강대학교 언론문화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이용자 입장에서도 포털이 결코 유익한 플랫폼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박 선임연구원은 “포털이 생산품인 뉴스와 생산자를 분리시키고, 그 결과로 생산자와 이용자를 분리시켰다”면서 “생산자와 이용자 간의 단절 이후 발생한 가장 큰 변화는 뉴스의 품질이 급격히 하락했다는 것이며, 포털 공간에서 뉴스는 ‘탈가치화’되었다”고 말했다.
그는 뉴스 이용자의 개념을 “민주주의 정치 체계 속에서 활동하는 시민의 관점”에서 정의한 뒤, “다양한 질 낮은 상품을 편리하게 소비하는 것이 이용자에게 유익한 것인가”라고 물으며 “시민의 관점에서 포털 뉴스를 본다면 포털이 ‘이용자 친화적’이라는 것은 허구에 가깝다”고 꼬집었다.
그렇다면 ‘포털 밖’에 해답이 있을까. 많은 언론사들이 찾고자 하는 대답은 결국 이거다. 두 발제자의 시선은 엇갈렸다. 이봉현 센터장은 “아웃링크가 만병통치약은 아니지만, 그렇게 가야 한다”면서 “아웃링크를 통한 뉴스의 ‘지산지소(地産地消·지역에서 생산한 농산물을 지역에서 소비하는 운동)’”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또한 “고품질의 뉴스를 모아서 제공하는 언론사 공동의 플랫폼이나 포털도 생각해봐야 한다”며 “정부가 신문유통원을 설립했던 경험을 살려 디지털콘텐츠유통원 같은 언론사 공통의 플랫폼 창설을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박영흠 연구원은 “장기적으로 아웃링크로 가는 게 필요하다”면서도 “지금 단계에서 현실적으로 가능할 지, 그리고 언론과 이용자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저널리즘 질적 악화의 1차 책임이 포털에 있지만, 언론은 피해자인 동시에 공범이었다”면서 “지금의 언론을 그대로 둔 상태에서 ‘탈 포털’이 이뤄졌을 때 언론과 시민에게 긍정적일까? 그렇지 않다”고 단언했다. 2009년 네이버의 뉴스캐스트 서비스 시행 직후 선정적 뉴스로 도배됐던 경험 등으로부터 회의적 결말은 충분히 유추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는 “포털의 인터페이스에 익숙한 이용자들은 아웃링크를 토해 광고가 덕지덕지 붙은 언론사 홈페이지에서 레거시 미디어의 뉴스를 이용하기보다 인링크를 통해 검증되지 않은 신생 미디어의 뉴스를 이용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할 수도 있다”며 “지금 상황대로라면 포털이 물러난 공간에서도 언론사들이 발붙일 자리는 없을지도 모른다”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그는 “언론사의 치열한 성찰과 변화”를 요구하며 “언론사들의 해법이 고작 복고적 시각에 바탕을 둔 ‘포털 때리기’라면 해결은 요원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한대광 전국신문통신노조협의회 의장(언론노조 경향신문지부장)도 언론사 사주 대표 단체인 신문협회가 포털의 일방적 책임을 물으며 전재료를 포함한 아웃링크를 요구하는 입장을 내는 방식에 대해 강한 불만을 제기했다. 한 의장은 “내가 봐도 창피하고 국민적 설득력을 얻을 수 없는 접근 방식”이라며 “언론사 사주들이 주도했던 방식에 대해 언론 노동자들이 함께 의견을 모아서 따끔하게 지적하고 문제제기를 하겠다”고 말했다.
한국일보 멀티미디어부의 김주성 기자도 “회사가 한국일보닷컴의 ‘클린 전략’을 버리고 클릭 수 위주로 어뷰징 기사를 쓰려고 하면 노조에서 그러면 안 된다고 얘기한다. 그래서 우리 디지털국에는 어뷰징 기사를 쓰는 인턴 기자도 없다”며 “경영자를 견제하는 노동조합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윤여진 언론인권센터 상임이사는 “언론 스스로 변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진지한 고민의 출발점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 상임이사는 “언론사들이 포털에 들어가서 기사 메인에 배치되려 애쓰고 기득권을 유지하려고 하면서 ‘우리가 얼마나 힘든지 알아?’ 이런 얘기만 하고 네이버만 욕한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다”며 “생존 때문에 나락으로 떨어져 영혼 없는 언론으로 전락하지 않길 바란다. 익숙한 방법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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