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파는 SBS, '삼성 성역'에 균열 생기나

한 달간 메인 뉴스로 '삼성 의혹' 보도… 경쟁사 기자들도 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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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개. SBS가 지난 한 달간 내보낸 삼성 관련 리포트 개수다. SBS 탐사보도부는 지난달 19일부터 사흘에 걸쳐 삼성 경영권 승계 작업의 주요 길목에서 용인 에버랜드 땅값이 요동쳤던 정황을 집중보도했다. 지난 9일부터는 정치부가 사흘간 삼성이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과정에서 IOC 위원들을 상대로 불법·편법 로비에 나섰고 이것이 이건희 회장의 특별사면과 관련이 있다는 보도를 내놨다. 삼성의 노조 와해 의혹, 삼성증권 배당 오류 사태까지 더하면 최근 SBS ‘8뉴스’에선 매일같이 삼성 리포트가 보도됐다.




언론계 안팎에선 SBS의 삼성 보도에 큰 관심을 나타냈다. 일부 언론을 제외하고 그동안 성역으로 여겨졌던 삼성을 SBS가 정 조준했을 뿐만 아니라 메인 뉴스 시간의 절반을 할애해 집중보도했기 때문이다. 지상파 방송사 한 기자는 “연결고리가 확실하지 않다는 점에서 아쉬움은 남지만 간만에 지상파 방송사가 삼성에 대한 의혹을 전면적으로 보도했다는 점에서 임팩트가 강했다”며 “경쟁자로서 관심을 갖고 지켜볼 수밖에 없는 보도였다”고 평했다.


무엇보다 가장 큰 관심은 광고였다. 삼성의 광고·협찬이 수입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업계 특성상 삼성 비판 보도를 대대적으로 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어서다. 일각에선 ‘아예 삼성 광고를 안 받겠다는 것’인지 의아해하는 시선도 있었다.


심석태 SBS 보도본부장은 이와 관련 “이미 2016년 말 삼성 로비를 보도하면서부터 삼성 광고가 안 들어오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심 본부장은 “삼성이 아예 광고를 안 하는 건 아니었지만 당시 파업 중이었던 MBC보다 적게 줄 정도로 비중을 상당히 줄였다”며 “그런 지가 1년 반이 다 됐는데 이제 와서 일부러 삼성 광고를 안 받으려 하거나 삼성 광고를 받기 위해 의도적으로 보도를 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 본부장 입장에서는 오히려 경영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를 생각하지 말고 두려움 없이 보도하라고 국·부장에게 주문하고 있다”고 말했다.



SBS의 삼성 보도 배경에는 오히려 내·외부 환경의 변화가 많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9월 구성원들의 싸움으로 윤세영 사주 일가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SBS는 이후 사장을 포함한 주요 경영진이 사원들의 임명동의를 받아 선임되면서 방송 자율성과 독립성을 확보했다. 양만희 SBS 탐사보도부장은 “대주주가 기업에 관해 갖고 있는 인식이 있고, 오너 회사에선 그런 인식이 알게 모르게 작동한다”며 “그에 비해 SBS에선 지난해 노사가 합의해 시스템이 바뀐 이후로 내부에서 변화에 맞는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다들 애를 쓰고 있다. 우리 보도도 그 일환”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분위기에서 삼성 보도를 내보내기 전까지 수차례 토론도 이어졌다. 최원석 SBS 보도국장은 “팩트체크팀을 포함해 취재기자, 데스크, 저, 본부장까지 참여해 사안을 어떻게 볼 것인지, 어떤 점을 지적해야 하는지 여러 차례 토론을 했다”며 “예전에는 후배 기자들이 윗선의 지시와 결정에 따랐다면 지금은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는 분위기다. 편집회의에 참여하지 못하는 기자들이 내부 게시판에 의견을 개진하는 ‘편집회의 플러스’도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주목을 끌었던 집중·심층 보도도 내부 환경의 변화로 만들어졌다. 심석태 본부장이 취임하며 백화점식 보도에서 탈피해 이슈 집중·심층 보도를 주문했기 때문이다. 정명원 SBS 기자는 “사안 자체를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선 최소 하루 20분 정도 보도하는 것이 필요했다”며 “보도국 리더십이 용인을 해줬기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말했다. 이병희 SBS 기자는 “입사 때부터 약 16년간 선택과 집중을 통해 임팩트 있는 뉴스를 해야 한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이제는 정말 그런 보도를 해야 하는 때가 왔다”며 “시청자들의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이슈가 어떻게 변화해 나가는지 주의 깊게 살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에선 치열해진 8시 뉴스 경쟁이 최근 SBS의 보도에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도 있다. JTBC, MBC와 함께 시간대는 다르지만 KBS까지 정상화되며 잠재적 경쟁자가 많아져서다. 양만희 부장은 “정확한 분석이라고 생각한다”며 “MBC가 정상화되면서 탐사보도부를 만들었고 저희도 최근 삼성 건을 보도하며 기획취재부에서 탐사보도부로 이름을 바꿨다. KBS의 탐사보도부 신설, 한겨레의 탐사보도 강조를 보며 선택받는 콘텐츠가 되기 위해선 탐사 역량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강아영 기자 sbsm@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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