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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취재 내내 괴로웠고 늘 죄송스러웠다"

수습 때 세월호 참사 겪은 YTN 15기 기자들

김달아 기자2018.04.15 09:02:22

2014년 봄, 수습시간에 세월호 참사를 겪었던 YTN 15기 기자들. 4년이 흐른 지금 이들은 그때 보도 참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파업을 하고 있다. 사진은 앞쭉 왼쪽부터 반시계방향으로 김경수 기자, 임성호 기자, 이형원 기자, 우철희 기자, 최아영 기자. (김달아 기자)

▲2014년 봄, 수습시간에 세월호 참사를 겪었던 YTN 15기 기자들. 4년이 흐른 지금 이들은 그때 보도 참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파업을 하고 있다. 사진은 앞쭉 왼쪽부터 반시계방향으로 김경수 기자, 임성호 기자, 이형원 기자, 우철희 기자, 최아영 기자. (김달아 기자)


2014년 4월16일 아침, 사건팀 단톡방이 울렸다. ‘진도 해상에서 여객선 침몰. 오늘 예정 아이템 모두 킬.’ 수습 뗄 날을 한 달 앞둔 YTN 15기 기자들은 현장으로 향했다. 이들은 그렇게 세월호 보도참사의 목격자이자 장본인이 됐다.


‘전원 구조’ 오보와 정부 편향적 보도. 세월호 유가족들은 YTN 기자의 취재를 거부했다. 현장기자들에겐 본질과 동떨어진 취재 지시가 내려왔다. 15기 기자 5명은 지난달 낸 성명에서 당시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거듭되는 무리한 취재 지시에 못 이겨 유가족들의 대화를 몰래 녹음하다가 들켜 곤욕을 치르고 ‘기레기’ 취급을 받은 적도 있다. 우리 스스로도 인간의 도리가 아니라고 자조하며 취재를 거부하기도 했다.”


“류제웅 사회부장은 유가족들과 시민들이 여는 추모집회를 '돈'의 문제로 매도했고, 그들을 ‘법과 원칙'을 따르지 않는 폭도로 모는 듯한 말도 서슴지 않았다. 모 선배는 항의하는 현장기자에게, ‘윗선에서 경찰 취재를 꼼꼼히 하고 경찰 입장을 충분히 반영하라고 지시했다’는 말만 했다.”


15기들이 그해 봄 느꼈던 참담함과 자괴감은 5년 남짓한 기자생활 내내 계속됐다. 보도국은 무기력했고 불신이 쌓였다. 기자들은 자기검열에 익숙해졌다. 제대로 된 보도를 할 수 없었다. 세월호 참사와 이들의 파업이 맞닿아 있는 이유다. 또 다른 보도참사를 막기 위해, 더는 기레기로 불리지 않으려고 이들을 포함한 YTN 구성원들은 지난 2월부터 두 달 넘게 파업을 하고 있다.


기자협회보는 세월호 참사 4주기를 앞두고 YTN 15기 김경수 기자, 우철희 기자, 이형원 기자, 임성호 기자, 최아영 기자를 만나 이들이 기억하는 4년 전 봄, 지금의 파업과 그 이후에 대해 물었다.


▶2014년 봄 세월호 참사를 취재하던 중에 수습딱지를 뗐다. 당시 취재현장을 어떻게 기억하나.


우철희 기자 : 세월호가 침몰한 날 ‘오늘 예정 아이템 올킬’이란 캡의 카톡이 잊히지 않는다. 입사 6년차인 지금까지도 들어본 적 없을 만큼 당시 상황은 급박했다. 보도국은 말 그대로 아수라장이었다. 계속 전화벨 울리고 제보 들어오고. 다들 취재하느라 정신없었다. 처음부터 기레기로 불렸던 건 아니다. 첫 기자회견 때 유가족들이 YTN 로고 달린 마이크만 잡고 있기도 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YTN 기자들도 배척의 대상이 됐고 현장에 있던 스크린 속 뉴스채널은 JTBC로 돌아가서 끝까지 바뀌지 않았다. 취재하는 우리는 늘 죄송한 마음이었고 두렵기도 했다. 같이 취재하는 동기들이랑 웃지 않은 연습을 하곤 했다. 물론 웃을 상황은 아니었지만 혹시 찰나라도 웃는 모습이 유가족들에게 보일까봐 뒤돌고 입을 가렸다.


최아영 기자 : 참사 발생 2~3주 후에 진도 팽목항에 내려갔다. 그때 먼저 다녀온 선배들이 회사 로고 있는 옷은 절대 입지 말고 기자인 것도 티 내지 말라고 하셨다. ‘왜 안 되지?’라고 생각했는데 현장에 가보니 바로 알겠더라. 유가족들이 기자들을 적대적으로 대했다. 전원구조 오보, 기자들의 과잉 취재 때문이었다. 저희는 방송 시간을 채우기 위해 어떻게든 취재를 해야 했고 유가족들에게 부담을 줬다. 보도 방향도 유가족들이 보기엔 올바르지 않았던 거다.


이형원 기자 : 시신이 수습돼 육지로 올라오면 화이트보드에 인적사항이 쓰였다. ‘단원고 여학생 추정, 스펀지밥(캐릭터) 바지’라고 적히자마자 한 아버님이 주저앉으면서 대성통곡했다. 수학여행 가기 전날 딸에게 챙겨준 잠옷바지였다. 그 모습을 본 순간 ‘내가 여기서 뭐 하는 거지?’란 회의감이 들었다. 멀리서 보면 그저 ‘몇 번째 희생자’인데 가족들에겐 얼마나 큰 아픔이었을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당시 취재 방법과 원칙을 배운 적이 없어서 막연히 감정이입을 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다보니 오히려 더 중요한 걸 놓친 것 같다. 현장에 있는 내내 괴로웠고 유가족들에게 죄송했다.


김경수 기자 : 며칠 전에 제가 당시 팽목항에서 현장중계했던 영상을 보게 됐다. 마치 죄인 같은 모습이었다. 진도에선 항상 고개를 못 들고 다녔다. 유가족들이 마음 아파하는 걸 알면서도 계속 물어봐야 했다. 서울에서 지시가 내려오니까. 현장 상황을 정확하게 전해야 하는데 나도 모르게 위축되고 목소리가 작아졌다. 늘 죄스러운 마음이었다.


임성호 기자 : 참사 3일 뒤에 진도에 내려가서 2주 동안 현장에 있었다. 초반에는 기자들에게 적대적인 분위기가 아니었다. 팽목항 텐트 상황실 근처와 진도체육관에 설치돼 있던 대형스크린에선 YTN, KBS가 계속 나오고 있었다. 유가족들에게 취재 요청을 하면 잘 응해줬었다. 이후 정부 발표에만 의존한 보도가 나오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당시 이주영 해양수산부 장관이 진도에 온 날 이상호 고발뉴스 기자가 “‘지상 최대의 구조 작전’이라는 기사를 봤다. 네가 기자냐”고 격분한 사건을 기점으로 유가족들과 기자들의 심리적 거리가 멀어진 것 같다.

 

▶세월호 보도, 무엇이 문제였나.


임성호 기자
: 기자들은 정부 보도자료를 그대로 받아쓰기 바빴다. ‘사상 최대 규모 수색 총력’ 같은 정부발 보도가 나올 때 사고해역에 직접 다녀왔던 유가족들은 ‘정부 발표 사실 아니다, 극히 제한적으로 구조가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었다. 이 의견은 기사에 실리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유가족들 말이 맞았다. 정부는 연인원 기준으로 ‘지상 최대의 구조작전’이라고 홍보했는데 사실은 시간당 잠수부 2~3명만 구조 작업을 하고 있었다. 결국 해수부도 잘못을 시인했다. 그때 유가족들의 입장을 반영했다면 제대로 된 보도를 할 수 있었을 텐데. 멀어졌던 유가족들의 마음도 되돌릴 수 있지 않았을까. 지금도 자괴감과 죄책감이 든다.


최아영 기자 : YTN의 경우 데스크들과 현장 취재진의 생각이 너무나 달랐다. 여기 분위기는 이게 아닌데, 서울에 앉아있는 데스크들은 현장과 동떨어진 방향으로 몰아갔다. 팽목항에 비가 많이 왔던 날 유가족들이 신발이 젖어 발에 비닐을 씌우고 다닌다는 타사 보도가 나왔다. 취재지시가 내려와서 촬영기자랑 살펴보고 다녔는데 이미 슬리퍼가 보급된 상태라 비닐 씌운 모습을 찍지 못했다. 그런데도 위에선 절절한 사연으로 감동 포인트를 주려면 이 리포트를 꼭 해야 한다고 했다. 결국 핵심 장면은 빠진 채 억지로 제작된 리포트가 방송됐다. 세월호 본질과는 전혀 상관없는 취재지시는 계속됐다. 어느 순간부턴 사건팀의 취재 초점이 ‘유병연’으로 옮겨갔다. ‘유씨 장남 대균씨가 체포 직전 순살치킨을 먹었다’는 타사보도 내용을 실제로 확인해보라는 지시 때문에 하루종일 치킨집을 찾아 돌아다니기도 했다. 큰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수습기자 신분이기도 했지만 불합리한 지시와 그걸 따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 참담했다. 기자가 원래 이런 거였나? 기자가 된 걸 후회했다.


김경수 기자 : 현장에서 보고 들을 걸 그대로 보고해도 윗선에선 자신들이 원하는 부분만 봤다. 기레기라고 욕을 먹으면서도 유가족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게 뭔지, 왜 이런 목소리를 낼 수밖에 없는지 취재해 보고했지만 무시당했다. 현장에선 ‘방송에 내보내지도 않을 거면서 여기 왜 왔느냐’는 말을 들었다. 기자로서 자괴감이 컸다. 그때마다 내가 기자여서가 아니라 ‘YTN’이기 때문에 비난을 받는 거라고 자기합리화하며 상황을 회피했다.


이형원 기자 : 유가족들은 언론을 불신할 수밖에 없었다. 현장에서 일어나지 않은 일이 사실인 것처럼 보도되고, 실제 일어난 일은 보도되지 않기도 했다. YTN 보도로 좁혀보면 현장에서 정확한 보도 방향을 판단할 수 있는 간부급 기자들이 너무 적었다는 게 문제였다. 현장에 와보지도 않은 보도국 간부들이 정부 발표, 타사 보도를 기준으로 야마(주제)를 잡고 꼭지를 나눠 일방적으로 지시했다. 현장 의견은 제대로 반영되지 못했다.

 

우철희 기자 : YTN이 ‘전원 구조’ 오보를 냈을 때 보도국에 있었다. 결정라인에 있던 한 분이 ‘타사에서 전원 구조 속보 냈는데 우리도 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말을 꺼냈다. 당시 속보에 대한 우선순위가 큰 상황이어서 이걸 받을지 말지 급하게 이야기가 오갔다. 현장 기자는 아직 전원 구조는 확인되지 않았다고 전해왔다. 그런데도 타사 3~4군데서 떴으니 우리도 속보 내자고 지시하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 순간에는 이게 큰일이 될 것이고 우리가 평생 짊어질 십자가가 되리라 생각하지 못했다. 그때 작심하고 ‘이건 쓰면 안 됩니다’라고 말리기라도 했다면 이렇게 후회가 되진 않았을 것 같다. 결국 전원 구조 오보에 사과하지 않은 거로 기억한다. 타사도 다 그랬으니까. 이런 보도 기조가 세월호 이후에도 계속됐다.


15기는 지난달 발표한 성명에서 세월호 참사뿐 아니라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탄핵, 조기 대선 등 굵직한 사태를 제대로 보도하지 못했다고 고백했다. 입사 후 6년 동안 겪은 YTN 보도국은 어떤 분위기였나.


임성호 기자 : 2016년 8~9월 한겨레에서 최순실 국정농단, 미르재단 보도가 나오기 시작했다. 당시 정치부여서 이 내용이 국정감사에서 제기된 걸 알고 있었다. 굉장히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그땐 이게 얼마나 파괴력이 있을지 예상하지 못했다. 국정농단 사건은 박근혜 7시간 행적으로 세월호 참사와 연결돼 있다. 그래서인지 보도국에선 취재 의지가 크지 않았다. 사실상 없었다. 그해 10월 JTBC가 태블릿PC 보도로 결정타를 날린 뒤에야 부랴부랴 특별취재팀을 꾸렸다. 뒤늦게 뛰어든 거라 거의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초반 한겨레 보도 직후 상임위 위원들 통해서 자료 받고 취재에 나섰다면 바로 따라붙을 여지가 있었을 텐데, 우리는 그러지 못했다.


최아영 기자 : 야간당직 때 광화문광장에서 세월호 800일 추모제, 같은 시간 서울광장에선 동춘서커스 공연이 예정돼 있던 날이 있었다. 부장은 세월호 추모제는 단신처리하고 동춘서커스는 현장 스케치를 하라고 지시했다. 저와 촬영기자 선배는 세월호 추모제를 취재하고 싶었다. 다행히 우리와 뜻이 같았던 야근 일진 선배가 부장이랑 언쟁을 벌여 세월호 800일 추모제 리포트를 낼 수 있었다. 현장에서 세월호와 서커스의 보도 가치를 고민해야 한다는 게 슬펐다. 이런 모습이 보도국의 전반적인 분위기다.


이형원 기자 : 간부들은 현장기자들의 말을 믿지 않는다. 세월호 유가족들의 집회 현장에서 보고 들은 걸 그대로 기사화했는데도, 데스크는 ‘유가족들에게 치우쳤다, 아직 뭘 몰라서 그런다’면서 취재기자의 균형감각을 문제 삼았다. ‘현장에 와보시면 그런 말씀 못 하실 거다’라고 반박하며 기사를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 저뿐 아니라 동기들, 많은 선배들이 내부에서 계속 싸워왔다. 이런 과정이 계속되면서 젊은 기자들도 간부들을 믿지 못하는 악순환이 생겼다.


우철희 기자 : 우리 뉴스를 보면서 놀랐던 아이템이 2개 있다. 먼저 뉴스타파의 ‘이건희 동영상’ 보도를 단신으로 받아쓴 것. ‘당연히 보도해야지’가 아니라 ‘우리가 이런 것도 보도 하네?’라는 생각부터 들었다. 그만큼 자기검열이 심하다. JTBC의 태블릿PC 보도도 그랬다. 인용보도 형식이라도 나갔다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당시 야근했던 선배들 중에 이걸 반드시 보도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분들이 있었고 윗선과 마찰을 겪은 끝에 보도하게 된 거다. 보도를 보면서 ‘선배들 정말 고생하셨겠구나’라고 생각했다. 중요한 사안마다 우린 보도하지 못할 거라는 무기력함이 가득하다.


김경수 기자 : 파업 전까지 밤 뉴스 PD를 맡았다. 그날 하루 동안 나왔던 뉴스를 종합정리하는 일이어서 자연스럽게 타사 보도와 비교할 때가 많았다. YTN 뉴스엔 우리만의 보도가 없다. 그저 시간 때우고 구색 맞추는 것뿐이다. 너무 안전하게만 하려다 보니 딴 데서 나온 것만 따라가고 특색도 재미도 우리만의 시각도 없다. 취재와 제작, 편집의 판단 기준이 타사 보도다. 매일 실망만 커졌다. 이대로 가면 YTN이 망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바뀌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절박함 때문에 파업에 나섰다.

 

▶최남수 사장 사퇴와 적폐 청산을 요구하며 파업에 들어간 지 이달 15일로 74일째다. 파업 기간 평창동계올림픽, 이명박 전 대통령 구속, 남측예술단 평양공연 등 굵직한 이슈들을 취재하지 못했다. 오는 27일 남북정상회담과 다음달 북미정상회담도 예정돼 있다. 빨리 취재현장에 복귀하고 싶지 않나. 어떤 마음으로 파업 대오를 지키고 있는지, 파업 이후 어떤 보도를 하고 싶은지 말해 달라.


임성호 기자 : 평창동계올림픽부터 남북정상회담, 북미정상회담 모두 기자들에겐 흔치 않은 취재기회다. 현장에 못 가고 기사를 쓸 수 없는 상황에 아쉬움과 박탈감이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파업을 접을 순 없다. 결정권자들의 부당한 관행과 관습, 적폐가 유지되는 상황에서 우리가 취재하고 보도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나. 언 발에 오줌 누기일 뿐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지금의 파업은 취재 여건과 토대 자체를 바꾸려는 것이다. YTN이 새로 시작할 수 있는 전환점이다. 파업 마치고 돌아가면 부조리한 권력을 사정없이 비판하고 보도의 표준이 되는 방송을 하고 싶다.


김경수 기자 : 중요한 이벤트라도 지금까지 해온 방식으로 보도한다면 안 하느니만 못하다. 지금 바뀌지 않으면 더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위기감이 크다. 해야 할 일이 많다. 우리가 어떤 길을 가야 하는지, 우리가 생각하는 공정방송이란 무엇인지 정의하고 그 개념을 공유해야 한다. 무엇보다 우리만의 보도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YTN에서만 볼 수 있는 뉴스를 만들고 싶다.


최아영 기자 : 우리의 파업은 더 좋은 보도를 위해 감내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파업이 끝난 뒤에 다시 ‘이건희 동영상’ 제보가 온다면, 태블릿PC를 쥐게 된다면 끝까지 물어뜯으며 취재할 수 있는 YTN이 돼야 한다.


우철희 기자 : 세월호 참사 같은 일이 또 발생한다면 그때와 다른 보도를 해야 하는데, 지금 시스템에서 그렇게 할 수 있을까? YTN의 철학을 담은 뉴스, 시청자들이 바라는 뉴스를 흔들림 없이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동안 언론의 본령인 권력 감시·비판을 하지 못했고 약자들을 보듬어주지 못했다. 이제 우리가 해왔던 고민들을 실질적이고 올바른 방향으로 끌고 나가야 할 때다. 그러려면 파업에서 꼭 이겨야 한다.


이형원 기자 : 스포츠부여서 오래 기다려온 평창동계올림픽을 취재하지 못해 마음 아팠다. 그런데도 파업을 하는 이유는 부적격자 최남수 사장뿐 아니라 거기에 부역하는 적폐인사들까지 물러나야 하기 때문이다. 기계적 중립을 가장한 편향 보도로 진실을 가려온 간부들이 아직도 보도국에 남아있다. 후배들에게 기레기라는 오명을 안기고 반성은커녕 부끄러움도 느끼지 못하는 이들이 있는 한 공정방송은 어렵다. 현장에서 보고 들은 내용이 그대로 반영된, 내 바이라인이 달리는 게 부끄럽지 않은 리포트를 하고 싶어서 파업을 한다. 기자로서 열심히 취재한 기사로 사회에 기여하는 뿌듯함을 느끼고 싶다.


김달아 기자 bliss@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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