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52시간 근무, 고심 깊은 언론사… '주5일제' 수면 위로

근로시간 단축, 언론계 영향은 / ② '발등의 불' 어떻게 꺼야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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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사는 주당 근로시간을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줄이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준수할 수 있을까. 주당 16시간 근무시간 축소는 기자들의 일상이 달라진다는 의미다. 언론사로선 기존 근무형태나 업무패턴의 대대적인 변화가 필요한, 간단치 않은 문제다. 출발선은 업무 특수성을 이유로 ‘68시간 이상 근무’를 당연시하고, 기존 근기법 위반을 용인해 온 언론 현실이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언론계의 고심이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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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xabay

◇근기법 개정안에 언론계 분주

“단순히 근무시간을 줄이는 게 아니라 근무패턴을 바꾸는 것도 고민해야 되더라. 생각보다  큰 문제라 자문 노무사를 통해 알아보며 사측 안을 기다리고 있다.”


종합일간지 노조 관계자가 근기법 개정안에 대비한 자사 대응 상황에 대해 한 말이다. 기자협회보가 지난 16일부터 20일까지 주요 일간지와 지상파, 통신사 15개사(경향, 국민, 동아, 서울, 세계, 조선, 중앙, 한겨레, 한국, 매경, 한경, 연합, KBS, MBC, SBS)를 취재한 결과 대다수 매체의 상황은 대동소이했다. 아직 구체적인 안을 마련한 곳은 희소하다. 사측은 고심 중이고, 노측은 고민하며 제안을 기다린다. 당장 올해 7월부터 대상이 되는 신문·통신사 쪽이 내년 7월부터 법 적용을 받는 방송사보다 마음이 급하다는 정도의 차이다.


개정안에 따라 언론사는 기자 근무시간을 줄일 수밖에 없다. 기존 법안은 평일 5일 동안 52시간 근무(주말 16시간 별도)를 맞추면 됐는데, 바뀐 법은 주말을 포함 7일 동안 52시간을 허용한다. 한 기자가 오전 9시부터 밤 9시까지 근무해 1일 평균 10시간(휴게시간 제외)을 일한다면 평일근무만으로 50시간이 찬다. 주 평균 5.5일이나 6일을 일하고 주당 70시간 일한다는 자료, 기자들 평을 고려하면 준수는 쉽지 않다.


근로시간 단축은 언론사에게 기자 1인의 근무시간을 줄인다는 의미 이상이다. 68시간 체제로 돌아가던 업무 전체를 52시간으로 조정해야 한다. 주말뉴스는 어떻게 커버할지, 이를 위한 인력배분은 어쩔지, 줄어든 근무시간으로 기사 품질 유지와 디지털 대응은 가능한지, 인력충원은 필요한지 고민이 따른다. 윤창현 SBS 노조위원장은 “초대형 폭탄이다. 지금 제작관행과 시스템을 유지한다면 회사가 망할 것”이라면서도 “방향에는 동의한다. 이렇게라도 안하면 못 바꾼다. 현실적인 대안을 찾기 위해 노사가 답을 짜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근기법 무법지대 언론사

각 언론사 노사는 차기 임·단협 등에서 근로시간 단축과 관련해 새로운 협상을 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근무시간’이 메인이 된 언론사 노사 간 논의는 매우 취약한 토양에 기반해 있다. 과한 ‘근무시간’은 직군과 업무 특수성을 이유로 당사자인 기자들조차 당연시 하고, 도외시 해 온 영역이었기 때문이다.


이는 ‘재량근로’를 두고 언론계 내에서 명확한 합의내용이나 인식이 없다는 데서도 드러난다. 재량근로는 업무성격상 사용자가 시간배분이나 업무수행을 지시하기 어려울 때 사용자가 근로자대표와 서면합의로 정한 시간을 근무시간으로 간주하는 것을 뜻한다. 근기법 제58조 근로시간계산의 특례조항에 따라 기자 업무가 여기 해당된다. 장영석 언론노조 노무사는 “근로자대표를 과반수 노조 또는 그 노조가 없을 때 전체 과반수를 대표하는 자"로 전제한 뒤, "근기법 구조상 재량근로 서면합의는 전체에 적용될 것을 의미하므로 노조 조합원에게만 적용되는 단협과 별개의 서면합의로 보는 게 타당하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기자협회보 취재결과 그러나 앞선 주요 매체 중 단 한 곳도 재량근로에 대한 ‘서면합의’를 따로 두고 있지 않았다. 반면 주중 52시간, 주말 16시간을 초과하는 ‘제멋대로 재량근로’는 대부분의 언론사에서 실시되고 있었다. 정치·사회부서 등 업무량이 많은 부서 기자들이 하루 3시간 초과 근무를 가정으로 임금을 일괄 지급받거나 주중 52시간을 넘기는 걸 알면서도 연장·야간수당 지급으로 눈을 감는 사례가 부지기수였다.


박준동 조선일보 노조위원장은 “언론사들의 경우 재량근로를 이유로 노동시간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마음대로 일을 시켜왔다”며 “방지하는 장치가 있든, 재량근로를 완벽히 하든 해야 한다. 재량근로라는 일종의 특수성이 보편적 원칙을 지키는 안에서 적용돼야지 그걸 빌미로 보편적 원칙을 무너뜨리는 쪽으로 가면 안 된다”고 말했다.


◇주5일제, 당번제·유연근무제 대안

이 같은 상황에서 근무시간과 관련한 제도 정비는 필연적이다. 대부분의 언론사에서 노사 간 제도 정비에 인식을 같이 하고 협의를 준비 중이거나 협의에 앞서 관련 상황을 점검하는 중이지만 슬슬 여러 대안이 나오고 있다.


동아일보와 중앙일보에선 근무시간 단축을 위해 지난주부터 주5일제를 시작했다. 중앙일보의 경우 중앙선데이를 토요일자로 내면서 중앙일보 기자들의 금요일 근무를 최소화할 방침이다.


중앙일보 관계자는 “토요일자는 중앙선데이가 만들고 편집국에선 인력 조정을 해 휴일 근무를 진행할 것”이라며 “휴일이라 하더라도 디지털 기사 작성이나 스트레이트 기사는 편집국에서 협조해야 할 부분이 있다. 부서별로 제출한 휴일근무 계획서에 따라 주5일제 실험을 해보고 조율해나가면서 정착시킬 예정”이라고 말했다. 동아일보도 주5일 근무를 시범적으로 실시해 그 결과를 검토한 후 정착화에 나설 계획이다.


한편에선 주5일제 시행 외에도 유연근무제, 당번제 등 다양한 대안이 제시되고 있다. 유연근무제를 언급한 지정구 한겨레 노조위원장은 “근무시간 축소를 위한 현실적인 방법은 유연근무제인 것 같다”며 “그동안은 야근했든 안 했든 일률적으로 출근하지 않았나. 그것보다 전날 늦게 퇴근하면 출근을 늦게 하는 등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출퇴근을 조정하는 방법이 나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5일 노보를 통해 당번제 등 편집국 근무 시스템 혁신을 주장했던 박준동 위원장은 “가판을 만들던 과거엔 밤에 일하는 건 특별한 노동이었다. 절반 이상이 가판이 나오면 퇴근하고 나머지는 오후 10시, 11시까지, 또 그 중 소수만 밤을 새우는 등 업무가 3원화 돼 있었다”며 “IMF 이후 구조조정을 하면서 가판을 없애고 오후 10시까지 남아 신문을 만들면서 노동시간이 급격하게 늘어났다. 노조 입장은 어떻게 보면 과거로 돌아가 당번들만 남아 밤 근무를 하자는 얘기”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근본적인 해결방안은 적정한 인력 충원이다. 종합일간지 한 기자는 “개정안의 취지이기도 하고 법을 준수하려면 사람을 늘려야 한다”며 “인력 교대 등 여러 얘기가 나오고 있지만 정작 사람을 늘린다는 말은 어디에서도 들리지 않는다. 갑갑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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